적과 흑 독후감상문

스탕달의 장편소설

by 신현호

개요

나는 프랑스 문학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근현대 프랑스 문학 전체를 아우르는 정열적인 활기와 사회와 개인을 분석적으로 바라보는 문인들의 냉정한 시선을 좋아한다. 생각해보면, 프랑스의 엄격함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내게 스탕달의 <적과 흑>은 반드시 읽어볼 소설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요사이 독서 습관에 따라, 꾸준히 프랑스 소설을 읽어왔기 때문에, <적과 흑> 또한 금방 마주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고전문학들을 재미있게 읽어왔으면서도 <적과 흑>을 읽어보기엔 살짝 머뭇거렸다.


다름이 아니라, <적과 흑>은 계급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 신분이나 세상이 돌아가는 방에 어두운 내가 읽기엔 이해를 못할 구석이 꽤 많을 거라고 지레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겪어보지도 않고 궁금한 작품을 그냥 미뤄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기 때문에, 6월달 내내 <적과 흑>을 읽어나갔다.


예상치 못하게 <적과 흑>은 내 기대와 걱정을 전부 적중시켰다. 주인공의 비대한 자의식을 그리는 방식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정말 세상 물정을 이해하는 경험이 부족한 나머지 사회 생활의 맥락에서 감을 못 잡아 집중을 잃은 구석도 많았던 것이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단점에서 비롯된 몰이해를 배제하더라도, <적과 흑>은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프랑스 소설 중에 가장 중요하고 흥미진진한 작품이었다고 느낀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읽었을 때처럼, <적과 흑>은 한 국가의 가장 핵심적이었던 시대와 정체성을 녹여낸 이야기라는 감상이 떠올랐다.


1830년대 파리와 근대

우선, 근대란 무엇인지부터 설명해야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짧게나마 근대의 특성과 19세기 프랑스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지금부터 설명할 정보는 내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이지, 객관적인 역사적 관점이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에, 정보의 습득에 유의할 것을 미리 당부한다.


인류의 역사는 크게 고대, 중세, 근대로 나뉘어진다. 유럽의 기준에서는 그리스 문명과 로마 제국의 시대를 보편적인 고대로 볼 수 있다. 게르만의 이주와 기독교의 전래, 서로마의 멸망으로 유럽의 판도는 크게 변해, 중세 시대를 맞는다.


중세 시대 동안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역시 종교의 영향력으로, 막대한 세속 권력을 가졌던 교황은 수 세기에 걸쳐 십자군이 불러온 혼란, 흑사병의 도래로 권위를 잃어간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서 왕이 교황의 권력을 압도하고, 유럽은 점차 신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속적인 시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유럽의 역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근대를 향해 나아가는 유럽은 종교 개혁과 과학의 발달, 이성의 중시와 계몽주의를 통해 점차 중세적인 지배의 규칙을 밀어내고 국민의 중요성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해 근대를 가속시킨 이가 나폴레옹이라고 볼 수 있다. 귀족 정부에 대항하는 프랑스 대혁명 속에서 부상한 나폴레옹은 쿠데타를 통해 프랑스의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올랐다.

스스로를 황제로 칭한 나폴레옹은 각 유럽 국가에 자신의 정치적 노선인 '프랑스의 혁명 정신'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가 유럽에 군사적으로 강요한 혁명 정신이란, 법 앞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행정 체계, 국민 국가라는 개념이었다. 나폴레옹이 실천한 이러한 국가 개념은 중세를 넘어선 근대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엄연히 우리는 아직도 근대에 살고 있다. 아직까지 나폴레옹이 제시한 개념인 평등, 법치, 국민 국가의 개념에 근원을 둔 민족주의는 현대를 이루는 근간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추진한 항구적인 변화가 일시적으로 저지당한 1830년대를 배경으로, 작가 스탕달은 아직 혁명의 여파가 잠들지 않은 혼란한 근대성을 풍운아 '쥘리앵'의 인생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줄거리

아름다운 시골 베리에르, 목수의 아들 쥘리앵은 출신답지 않게 독서와 라틴어 공부에 집중하는 집안의 이단아였다. 집안에서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쥘리앵은 라틴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을 높게 산 레날 시장이 가정교사 자리를 제안하면서 사회에 진출한다.


젊고, 잘 생기고, 똑똑한 쥘리앵에게는 목표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나폴레옹처럼 출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쥘리앵은 출신이 미천한 평민이었고, 시대는 나폴레옹 같은 혁신가의 재림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 경직된 상황이었다. 아쉽게 시대를 놓친 쥘리앵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오늘날의 지배자인 종교인이 되길 선택했고, 지성을 앞세운 계략과 미모, 왕성한 혈기를 앞세워 출세하고자 한다.


쥘리앵은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꾸준히 신분을 상승시킨다. 쥘리앵이 가정교사로 일하며 레날 부인과의 사랑을 겪는 고향 베리에르, 수완을 인정받고 수학하던 브장송, 그리고 능력을 인정받고 파리로 옮겨가는 작품의 배경은 꾸준히 상승적인 구도를 그려낸다.


각 장소에서 이 시대의 나폴레옹인 쥘리앵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출세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의 출세는 명문가인 라 몰 일가의 영애 마틸드를 유혹해 결혼을 약속받으면서 확정된 것처럼 보였다.


감상문

일단, 상술했듯이 <적과 흑>은 근대성을 논하는 이야기이지만, 오늘날도 엄연히 근대에 속한 시기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대단히 현대적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가장 많이 조명받는 중세적인 질서가 이미 나폴레옹의 독재로 찢겨나갔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폴레옹이 근대적인 질서를 강요했듯이, 복권된 왕정 또한 중세적인 질서를 강요하면서, 시대는 다시 혁신이 아니라 순종을 요구한다. 그러한 순종에는, '자의식을 가지지 말 것'이라는 조건이 기본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왜냐하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중세적이지 못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책임지는 태도는 신분과 종교의 권위를 엄연히 무시하는 것에 직결된다.


쥘리앵의 고통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쥘리앵은 나폴레옹과 마찬가지로 자주적인 근대 인물이고, 시대 또한 이미 시들해진 르네상스의 중세 질서에서 벗어났다. 시대는 근대인데, 여전히 중세적인 귀족과 성직자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행동을 선점하다보니, 쥘리앵은 능력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


근대적인 인물인 쥘리앵은 중세적인 질서를 요하는 왕정에서도 자신을 숨긴 채 신분을 상승시켜 간다. 이전 시대였다면 군인이 되어 출세했을 쥘리앵은 어쩔 수 없이 30년대 권력의 핵심인 종교계에 진출하기 위해 라틴어를 공부했다. 출세주의자인 그에게 직업은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적과 흑>이 순전히 피도 눈물도 없는 영웅의 출세가도와 몰락을 그리는 소설이 아닌 이유도 여기에 있다. 쥘리앵이 출세를 위해 마주하는 인물들과의 관계는 일정 수준이나마 진실됐기 때문이다. 쥘리앵은 오만하고 자존심이 강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사소한 실수를 용인하지 못하고 쉽게 기가 죽는 성격이다. 이러한 애매한 성격의 쥘리앵은 나폴레옹처럼 철저히 출세하거나 세상을 바꾸는 대신에, 주변 사람들과 진실한 사랑이나 우애를 나누면서 점진적인 상승 가도를 달린다.


이러한 쥘리앵의 성격을 보여주는 장면은 레날 부인과 나눈 사랑이 가장 대표적인 대목이다. 그는 봉건적인 귀족들을 증오하나, 레날 부인의 호의와 미모가 선사하는 사랑에 호응하여 레날 부인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사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경이로운 사랑을 정작 쥘리앵 자신은 출세라는 태생적인 갈망 때문에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지나치게 근대적인 속물이었기 때문에, 미래가 아닌 지금에 집중하질 못한다. 따지고 보면, 그는 언제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살았다.


그러한 출세욕은 쥘리앵의 장기인 사랑을 꾸준히 망가트려 왔다. 푸케, 레날 부인 등의 고향 지인들, 셸랑 신부와 피라르 신부와 같은 스승들, 라 몰 후작과 영애 마틸드같은 귀족들 모두 그의 매력에 이끌려 정과 사랑을 내어주지만, 쥘리앵의 목적은 언제나 출세가 우선이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가진 행운에서 온전한 행복에 만족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은 진짜 삶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영웅적인 삶'의 공허함을 보여주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쥘리앵은 작중에서 사다리로 비유되는 출세욕에 눈 먼 인물이 아니라, 미천한 자기 신분을 향한 증오와 함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열정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쥘리앵은 자신의 모든 재능을 성급함 때문에 꾸준히 망쳐오는데, 쥘리앵의 출세는 결국 레날 부인의 폭로에 모든 명예를 잃으면서 파국을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나는 역시 작가는 쥘리앵을 엄연히 비판받아야 할 인물로 설정했으니, 파국을 맞는 것이 '고전적' 이라고 생각했는데, 결말은 아주 의외였고, 충격적이기도 했다. 나는 소설을 여기까지 읽으면서 작가가 출세를 향한 집착 때문에 신세를 망치는 쥘리앵을 통해, 중세적 질서에 희생당한 근대성에 대한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이 아랍인에게 이유 없이 총을 쏘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처럼, 마틸드와의 결혼으로 완성될 신분 상승을 목전에서 저지당한 쥘리앵이 명예의 회복을 위해서 자신과의 밀애를 폭로한 레날 부인에게 총격을 가하자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이러한 대목은 쥘리앵이 자의식을 각성하는 줄거리로 나아간다. 전개 속에서 쥘리앵은 처음으로 자신의 진심을 드러낸다. 평생동안 대결해온 사회에게 쥘리앵은 자신이 신분과 권위에 대항하는 근대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선언해, 사형을 선고 받는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이 레날 부인을 사살했다고 속단해서 벌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를 향한 전면적인 도전은 작품 구조상 상승 가도를 달리던 쥘리앵이 몰락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쥘리앵의 출세와 성장은 꾸준히 이어져 마침내 자신의 출세욕과 치졸한 사회의 구조에 회의를 품을 만큼 성숙해진 것이다.


이와 같은 구도는 쥘리앵이 계급을 향한 집착을 넘어서서 온전히 현대적인 개인으로서 각성하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순교자가 된 쥘리앵은 계급을 넘어서 사회의 규범과 맞서고, 사형선고 덕분에 자신이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죽음을 앞두고 살아가는 방법을 재고하기 시작한 쥘리앵은 사회의 모든 것이 진절머리 나도록 음모와 간계에 얽혀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고립되길 선택한다. 자신이 신분 상승을 위해서 사랑하길 선택한 마틸드가 아니라, 자신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레날 부인에게서 안도를 찾는 장면들은 쥘리앵이 이제 사회라는 규칙에서 벗어나 진실에 도달한다는 묘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죽음을 앞둔 쥘리앵은 나중에 죽거든 베리에르의 전경이 보이는 동굴에 머무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다. 이러한 쥘리앵의 죽음은, <적과 흑>이 단순히 신분과 계급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적과 흑>의 결말을 읽기 전에는 중세를 강요받는 시대의 혁신가 쥘리앵의 투쟁을 통해서 부자연스러운 1830년대를 비판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결말에 이르면 주제 의식은 자아의 성숙을 추구할 수 없는 사회 자체에 대한 비판이 된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1830년대를 넘어서 맹목적인 출세 외에 무엇을 추구할 수 있는 지를 가르쳐주지 않는 '근대' 자체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을 것도 같다.


개인적으로, 여러모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총격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인생과 개념으로 나아가는 주인공, 처형대 앞에서 진실에 도달하는 모습이 그러했다. 시기상 카뮈가 스탕달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으로는, 19세기라는 이른 시기에도 불구하고 근대라는 시대의 철저한 이해, 인간 심리와 사회의 복잡한 정치와 상호작용을 그리는 스탕달의 선구안에 충격 받았다.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왜 제목이 <적과 흑>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해석들은 보통 정치 노선의 색깔 내지는 성직자 계층의 사제복에서 <적과 흑>이라는 테마를 해석하려고 했다. 나는 처음에는 귀족의 붉은 기가 도는 하얀 살갗이 적이고, 농업에 종사하는 평민들의 검게 탄 피부에서 적과 흑인 걸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계급과 신분 뿐이 아니라 근대 사회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어쩌면 겉과 속, 혹은 사회와 개인을 위시한 작명일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재미삼아 나만의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줄거리 : 3.6 / 5.0 - 에피소드의 전환이 적절하고 배경이 꾸준히 바뀌어, 줄거리의 대부분이 귀족들의 사교장, 저택에서 진행되는데도 줄거리가 지루하지 않다.

심리 묘사 : 4.3 / 5.0 - 스탕달의 심리와 사회의 상호작용 묘사는 대단히 치밀하고, 속세에 대한 야무진 이해력이 도드라진다. 각 인물들의 갈망과 호소력 또한 충분하며, 인물들이 겪는 심리적인 고통을 극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심지어, 갈등이 심각해져 작가가 등장인물의 사연에 휘둘릴 수 있는데도 객관성과 냉정을 유지하는 대가다운 자제력이 독보적이다.

메세지 : 4.3 / 5.0 - 근대가 낳은 개인이라는 개념과, 개인의 완성을 방해하는 체제로서의 '근대성'의 한계를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또한 출세욕으로 가득 찬 세속의 저열함과, 개인이 행하는 사랑의 고결함을 그려낸 방대한 화폭은 톨스토이의 입체적인 스케일마저 떠올리게 한다. 19세기 작품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선구적이고 조숙하다.

취향반영 점수 총점 : 4.4 / 5.0 - 가히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를 처음 이해했을 때와 같은 충격에 빠져 있다. 여태껏 읽었던 프랑스 소설 중에서 최고로 평가한 <이방인>을 충분히 상회하는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적과 흑>은 내 서재에 보관해야 마땅한 소설이다. 원래 앞으로 두고두고 읽을 소설은 구비하는 편인데, <적과 흑>은 합격받고도 남을 만한 걸작이다.


나아가서, 그간 딱히 관심이 없었던 프랑스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생겨난다. 프랑스 사회 문화의 엄격함이 근대가 낳은 산물이라는 점이 느껴져서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어졌다. 앞으로 한동안 프랑스 소설을 읽으면서 이 정도의 충격과 감동을 주는 작품은 만나기 어려울 거 같아 아쉽기도 하다.


다음 프랑스 소설은 무엇을 읽을 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당장은 빌려온 책들이 쌓여 있기 때문에, 슬슬 감동에서 벗어나서 새 독서 생활을 이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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