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궁전 독후감상문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

by 신현호

개요, 카다레와 나

개인적으로 저개발국, 인지도가 낮은 국가의 소설들을 좋아한다. 어느 점을 좋아하느냐면, 역시 서구화로 정제되지 않은 국가들의 원시적인 개성을 좋아하는 편이다. 알바니아 작가인 이스마일 카다레를 좋아하는 까닭 역시, 상술한 이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나, 발칸 반도 지역은 내가 20살부터 오스만 제국의 역사에 관심을 두면서 더욱 관심을 두는 지역이다. 문학이라는 장르에서도 가짓수가 얼마 없는 발칸 반도의 문화와 성격을 그린 이야기들을 알고 싶어서 종종 이스마일 카다레나 이보 안드리치 같은 발칸 소국 작가들의 소설을 찾아보곤 했다.

화자 수가 넉넉지 않은 발칸 반도라는 배경 특성상 전공자에 의해 번역된 작품이 얼마 없고, 그 중에서 유일하게 많이 번역된 축이 프랑스어로도 글을 쓴 이스마일 카다레이다.


이스마일 카다레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19년도, <죽은 군대의 장군>이었다. 발칸 반도의 요충지 알바니아를 정복하기 위해 각기 다른 종교, 문화, 언어를 가진 여러 민족 군인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내게 생각보다 큰 흥미를 끌지 못했다. 아무래도 기대를 너무 품은 모양이었다.

지금 다시 읽는다면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법한 이야기였지만, 그 당시 내 독서 경력으로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소설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이스마일 카다레를 한참 잊고 지내는데, 작년 7월 이스마일 카다레가 타계하면서, 다시금 그의 소설을 읽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치밀었다. 내가 호기심을 품었던 작가가 더 작품을 낳지 못하고 타계했다는 소식이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간 그렇게까진 내 취향에 맞지 않은 작가라고 속단했는데,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내가 카다레의 소설에 여전한 호기심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밝혀진 셈이었다.

이렇게 마주한 알바니아의 신화적이고 비정한 복수의 세계를 그린 <부서진 사월>은 흥미를 가지고 하루만에 읽어버렸다. 복수라는 거대한 문화적 틀 안에 갇혀 미워하지도 않는 서로를 명예 때문에 죽이고 죽어나가는 무시무시한 세상의 묘사에 흥미를 느끼는 나를 보면서, 이젠 나도 카다레의 소설에 흥미를 느낄만한 수준이 되었다고도 느껴졌다.

나름의 거점을 마련한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은 올해에도 그리워져서 나는 어떤 책을 읽을지 도서관 서가 사이에 앉아서 한참을 고심했다. 처음에는 역시 격전지 알바니아의 투쟁사를 그리는 <돌의 연대기>를 읽어볼 작정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누군가 빌려간 <꿈의 궁전>에 흥미가 생겼고, 알라딘에서 간략한 줄거리를 읽어보니 내가 흥미로워하던 디스토피아 소재와 몽환적인 분위기에 매료된 나는 도서에 즉시 예약을 걸었다.


그렇게 <꿈의 궁전>을 마주했는데, 상당히 상징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암시가 어려운 것과 별개로, 작품의 시각적 묘사를 음미하는 재미가 컸다. 작품 특유의 악몽과도 같은 이미지, 꿈의 순수하고 강렬한 색채, 섬뜩하고 진상을 알아볼 수 없는 암투에 매료되어 읽을 때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아름답고도 섬뜩한 이 소설에 푹 빠졌다.


공산 알바니아와 카다레의 작품 세계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또한 알바니아라는 발칸 반도의 작은 소국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거의 없을 것이다. 발칸 반도의 소국 알바니아는 인구수 270만, 한국의 1개 도에 불과한 영토를 지닌 나라이다.

발칸 반도 지도를 보면, 알바니아가 이탈리아와 지중해, 중부 유럽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길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발칸 반도에서도 제국들의 주요 거점인 알바니아는 거대 제국들의 중추로서 기능했다. 로마 제국, 오스만 제국같은 거대 제국들은 알바니아를 점령하여 군사적 팽창을 도모했다.

이러한 절묘한 위치와 입지 때문에, 알바니아인들은 로마나 오스만의 고위 관료직에도 자주 진출했다.

하지만, 이러한 입지는 후견인인 오스만이 쇠퇴하고 민족주의의 시대인 근대와 독립이 도래하면서, 위협받기 시작한다. 근대화된 이탈리아의 팽창 앞에서 항전에도 불구하고 점령 당한다. 파시스트 세력에 직접 점령된 알바니아에서는 공산주의자 엔베르 호자가 빨치산 활동으로 나치즘에 대항한다.

왼쪽부터, 알바니아의 정체성을 정립한 조구 1세, 알바니아를 침공한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무솔리니. 그리고, 희대의 쇄국 정책을 고수하는 공산 독재자 엔베르 호자이다.

1944년 독일은 알바니아의 반격과 불리한 전황으로 후퇴하고, 엔베르 호자는 서방 세력의 공산화 저지 시도에도 불구하고 알바니아 전역을 해방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공산 알바니아가 수립되고, 엔베르 호자는 당대 공산권의 맹주 소련 그 자체나 다르지 않은 스탈린의 노선을 지지한다. 하지만, 소련의 절대 권력자 스탈린이 죽고, 공산권에도 자유와 개방의 시대인 흐루쇼프 시대가 도래한다. 구 체제의 지지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도 엔베르 호자는 여전히 자신의 노선을 고수하면서 고립되어 가고, 공산권 내에서도 따돌림 받는 신세가 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항하는 엔베르 호자는 철저한 고립주의 노선으로 일관하여 전 세계와의 교류를 끊고 알바니아 전역을 요새화시키는 기행을 저지른다.


이렇게 엔베르 호자만이 독주하는 알바니아는 전례 없는 철권 통치로 신음한다. 인권을 무시하는 정부와 비밀경찰의 도청과 납치, 고문, 공포 조성, 출국 금지, 종교의 자유 박탈, 엔베르를 향한 숭배 강요, 외교적 고립이 판치는 극악무도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었다. 자유가 몰살당한 알바니아는 공산권이 붕괴하기 시작하는 90년대까지 침묵을 강요받았다.


2019년 박경리문학상 수상으로 한국을 찾아 간담회를 펼치는 이스마일 카다레

이스마일 카다레 또한 엔베르 호자와 동향 출신으로써, 전례 없는 독재 시대를 살아온 세대이다. 고등학생 시절에 이미 등단한 시인이었던 카다레는 모스크바 유학 이후로 소설에 뛰어들어, <죽은 군대의 장군>으로 데뷔했다. 당대 알바니아는 정부에 대한 비판이 공식적으로 금지돼 있었기 때문에, 카다레는 검열에 대항하여 조국 알바니아의 독재와 현실을 환상적이거나 우화적인 방식으로 비판하는 이야기를 여럿 남겼다.


이스마일 카다레가 그리는 세계는 직설적이면서도 환상적이고, 명료하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모호한 상황을 그린다. 그의 이야기는 기괴하고도 우스꽝스럽거나, 무서울 정도로 비장하게 보이기도 한다. 카다레의 작품 세계는 단단하게 응축되어 건조한 문체를 넘어서서 여러 색깔과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 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테마 중 하나가, 시대, 문화적 부조리와 현실성을 상실한 환상적인 상황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다레의 이야기들은 때로는 지나치게 부당하거나, 진지한 나머지 몽환적인 성격을 띄기도 하는데, 시대적 부조리가 너무나도 강력한 나머지 엽기적으로 변모하는 상황들을 그려왔다.


줄거리와 스타일

본론으로 돌아와서, <꿈의 궁전>은 한편의 잊을 수 없는 꿈의 형상처럼 맹렬하고도 기묘한 이야기이다. 몽환적인 우화와 디스토피아 사이에 놓인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 <꿈의 궁전>의 줄거리는 오스만 제국의 비밀 기관이라고 볼 수 있는 황실 점성부서인 '타비르 사라일'에 주인공 '마르크 알렘'이 취업하면서 시작한다.


비밀 속에 쌓인 부서에 세도가 외척의 도움으로 취직한 마르크 알렘은 제국 신민들의 꿈 속에서 불길한 미래를 예언하는 예지를 발견하기 위해 일한다는 타비르 사라일의 뜻을 따르고 적응하기 위해 애쓴다. 마르크 알렘은 기본적으로 '왜'를 따질 수 없는 꿈이라는 영역에서 일하며 의문을 띄면서도 꿈들의 아름다운 형상에 매료되어 간다.


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데도 마르크 알렘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꾸준히 승진하고, 마르크 알렘이 취업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와지르(재상) 외삼촌은 마르크 알렘에게 현실의 군사와 부를 쥐고 있는 마르크 알렘의 외가 쿠푸릴리 가문과 인간의 의식을 통제하고 소유하려는 숙적 타비르 사라일 사이의 기나긴 권력 다툼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마르크 알렘은 아무 것도 실체를 파악할 수 없기에 더욱 무서운 권력 투쟁의 장 한복판에 자신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권력 투쟁의 장은 타비르 사라일이 제국 신민들의 수 많은 꿈을 곡해함으로써 쿠프릴리 일가를 탄압하는 것으로 현실에 나타난다.


독후감

대략적인 관계도 마인드맵

개인적으로는, 나는 꿈이라는 소재를 매번 좋아한다. 모호하고,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현실적이라는 점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꿈을 주된 소재로 삼은 <꿈의 궁전>은 꿈의 환상적이고 암시적인 성격과 비현실적인 독재 상황을 작가는 하나의 우화로 엮어냈다.


이 이야기를 파악하는 데는 독재, 혹은 권력과 왜곡, 진실에 대해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황실 점성술 부처라고 볼 수 있는 타비르 사라일은 신민들이 꾸는 왜곡된 현실인 꿈을 또 한 번 왜곡되게 해석하여 정적을 탄압하는 데 이용한다. 이러한 구실을 뽑아내기 위해서 불길한 꿈을 꾸었을 뿐인 신민들이 무의미하게 취조당하거나, 심문 받는다. 심지어 고강도의 심문 끝에 죄 없는 신민들이 죽어나가기까지 하는 상황은, 망상에 지배당해 현실성을 잃어버린 세상을 그린다는 생각마저 든다.


<꿈의 궁전> 속 묘사들은 흐릿하며, 악몽처럼 무섭다.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려운 암투, 이유 없는 탄압 등등이 이러한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가중시킨다. 작품에서 꾸준히 지적되는 점이지만, 이러한 탄압에는 이유가 없다. 이유는 만들어 붙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타비르 사라일이 쿠프릴리 일가를 압박하는 무기는 누군가의 아무 맥락 없는 꿈일 뿐이다. 꿈이 전적으로 정치 상황에 이용당하는 왜곡된 상황을 통해서, 나는 한편으로는 작가가 독재의 끝은 인간 심리와 무의식을 비롯한 측정 불가능한 요소마저 정치에 동원시키는 것을 알리려고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카다레는 <꿈의 궁전>에서 꿈마저도 통제하는 독재의 광기와, 무뚝뚝한 공무원 사회를 통해서 현대의 지옥도를 그려보려 했다. 타비르 사라일의 야심은 개인적인 욕망이나 광기에 근원을 두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꿈의 궁전은 정적을 탄압하고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서 탄압의 명분을 발견하려 한다.

근대적인 타비르 사라일의 해몽 업무는 각 부서와 공무원들이 일하는 체계적인 형태이며, 거기에는 어떠한 감정도 없다. 무표정한 독재의 실현 또한, 감정적인 독재자 한 명이 수행하지도 않는다. 독재의 뜻을 수행하는 데에는 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기여하며, 사람들은 업무로써 독재를 무덤덤하게 수행할 뿐이다. 개인적으로, 타비르 사라일 직원들 사이의 평범하고 소소한 모습들이 이러한 성격을 더욱 부각시켰다고도 생각한다.


또한, 꿈을 이용한 묘사들이 상당히 독창적이고 그 색채가 강렬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지옥에서 다시 부활하기 위해 피로 목욕하는 멸망한 국가들, 불길하고 생생한 예지의 꿈들을 통해 카다레는 독창적이고 몽환적인 독재의 지옥을 그려냈다.


작중에서 쿠프릴리 일가는 '투르크인들에게 권력을 나눠받으면서 공범이 됐다.' 라며 독재에 일조하는 가신인 가문을 자조한다. 작품 중후반에 이르면, 절대 권력의 독재자인 술탄이 타비르 사라일의 예언에 호응하면서 쿠르트 외삼촌이 자기네 민족에 집착한다는 반국가혐의로 체포 당한다. 그저 꿈에 불과한 예언을 불길하게 해석하여 현실에 우겨 넣는 방식으로 정적을 탄압하는 상황이 닥치고 만다.


이에 가문의 수장인 와지르 외삼촌은 탄압에 대항하기 시작하고, 타비르 사라일 또한 간부들이 여럿 숙청당해 마르크 알렘은 국장대리직까지 승진한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서 무뚝뚝해진 마르크 알렘은 왜곡된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봄날, 마르크 알렘은 아름답게 핀 편도나무 꽃을 보고 감탄하며 눈을 떼지 못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데, 이 결말 부분이 다소 상징적이었고, 집중력도 다 떨어져서 해석이 어려웠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나는 결말부에서 별달리 떠올린 바가 없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 여러 해석들을 읽어보는 중인데, 여러 사이트의 독후감을 찾아본 결과, 대부분은 작가의 의도를 '왜곡되지 않은 현실을 향한 향수'로 파악하는 모양이다. 독재 없는 헐벗은 세상, 알바니아라는 출신에 얽매여도 되는 삶을 꿈꾸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전반적으로 소재와 스타일에 매료되어 읽었는데, 정작 결말 부분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바를 이해하지 못해서 다소 아쉽다. 꿈이라는 소재를 넘어서, 인간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디스토피아 소설로도 재미있게 읽었다.

일전에 리뷰했던 <사탄탱고>와 마찬가지로, 악몽과도 같은 강렬한 스타일이 인상 깊었다. 아무래도 나중에는 이런 스타일의 원류(?)라고도 할 수 있는 카프카의 소설에도 제대로 입문을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재미삼아 나만의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아이디어&소재 : 3.8 - 엄연히 디스토피아 내지는 환상 소설로 읽어야 했기 때문에, 소재 또한 평가하고자 한다. 주된 소재가 되는 꿈의 왜곡이라는 성격에서 독재라는 주제의식까지 자연스럽게 연계된 점에서 거장의 솜씨와 이력을 느낄 수 있었다.

줄거리 : 3.0 -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관계로, 우화적 요소가 커서 줄거리가 많이 중요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경 묘사 : 3.8 - 구체적이지 않은 현실의 흐릿한 배경 묘사와 형상이 선명한 꿈의 대조가 인상 깊었다.

메세지 : 3.4 - 독재의 왜곡이라는 속성을 우화의 양식으로 그려냈다.

취향반영점수 총점 : 3.5 - 꿈이라는 소재, 현대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요즘 시대에는 보기 힘든 디스토피아 소설을 간만에 읽으니, 감회가 새롭다. 나름대로 거점을 마련했다고 생각한 카다레의 소설에서 여전히 자신의 감상 수준에 부족한 점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기도 한다.


다음에는 아무래도 <돌의 연대기>를 읽을까 싶다. 아니면, 민족이나 독재같은 거창한 담론을 벗어나 카다레의 사적인 영역을 그리는 <인형>을 읽어보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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