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프 왈도 에머슨, 「War」
전쟁에서 인간이 사라지는 방식
“War educates the senses, calls into action the will, perfects the physical constitution, brings men into such swift and close collision in critical moments”
“전쟁은 감각을 단련하고, 의지를 행동으로 불러내며, 육체를 연마하고, 사람들을 위급한 순간의 치열한 충돌 속에 밀어 넣어, 결국 사람이 사람을 가늠하게 만든다.”
랠프 왈도 에머슨, 「War」
에머슨의 이 문장은 한때 전쟁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처럼 읽혔을 것이다. 총검과 대포, 행군과 돌격이 전쟁의 얼굴이던 시대에는 실제로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병사는 자신의 감각으로 적을 식별하고, 의지로 공포를 누르며, 육체로 진창과 추위와 피로를 견뎌야 했다. 전쟁은 인간을 극한으로 몰아붙였고, 그 극한 속에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용기와 비겁함, 침착함과 공포를 맨몸으로 측정하게 했다. 에머슨의 문장은 그런 시대의 진실을 압축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문장은 현대전에 이르면 거의 헛소리에 가까워진다. 오늘의 전쟁은 감각의 전쟁이 아니라 센서의 전쟁이고, 의지의 전쟁이 아니라 체계의 전쟁이며, 육체의 전쟁이 아니라 플랫폼의 전쟁이 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보다 열화상 장비가 먼저 보고, 인간의 귀보다 레이더와 탐지망이 먼저 듣는다. 병사의 팔다리보다 미사일의 사거리와 드론의 체공 시간이 더 많은 것을 결정한다. 이제 사람은 사람을 가늠하기 전에, 화면 속 점과 좌표와 신호를 먼저 판독한다.
이 변화가 뜻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다. 전쟁이 더 인간적이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전쟁의 중심에서 비켜났다는 뜻에 가깝다. 과거의 전쟁은 잔인했지만 적어도 싸우는 자와 죽는 자 사이의 거리가 짧았다. 죽이는 손과 죽는 몸이 거의 같은 공간에 있었다. 그러나 현대전은 그 거리를 끝없이 늘려 놓았다. 버튼 하나, 좌표 하나, 승인 하나가 수십 킬로미터 밖의 생사를 가른다. 이때 전쟁은 더 이상 “사람이 사람을 가늠하는” 행위가 아니다. 시스템이 표적을 식별하고, 기계가 타격하며, 인간은 그 과정을 정당화하거나 승인하는 존재로 축소된다.
물론 인간의 의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여전히 결정을 내리고, 누군가는 여전히 죽음을 감수한다. 그러나 전쟁의 중심 장면은 더 이상 에머슨이 상상했던 육박의 순간이 아니다. 현대전의 핵심은 용맹보다 정보 우세, 체격보다 네트워크, 담력보다 계산 속도에 있다. 영웅의 얼굴은 흐려지고, 대신 조준 알고리즘과 공급망과 전자전 체계가 전장의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에머슨의 오류는 단지 전쟁을 미화했다는 데 있지 않다. 더 근본적으로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전쟁 경험을 인간 본성의 보편 법칙처럼 말한 데 있다. 인간의 사유는 언제나 시대의 장비를 통해 세계를 본다. 에머슨은 머스킷과 행군의 시대를 살았고, 그 시대의 전쟁을 인간 형성의 학교처럼 보았다. 그러나 드론과 장거리 정밀타격의 시대에 전쟁은 인간을 단련하기보다 인간을 기계 체계의 부속으로 재배치한다. 감각은 교육되지 않고 대체되며, 의지는 고양되지 않고 분산되며, 육체는 연마되지 않고 후방으로 밀려난다.
결국 에머슨의 문장은 위대한 문장이 아니라, 시대에 갇힌 문장이다. 그것은 19세기적 전쟁의 낭만을 말할 뿐, 21세기 전장의 실상을 말하지 못한다. 전쟁이 인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지워 가는 시대,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에머슨을 인용할 것이 아니라 그 인용문이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