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어려운 사제(師弟)

마융(馬融)과 정현(鄭玄)

by 김희곤

후한(後漢) 말의 대학자 마융(馬融)은 당대 경학(經學)을 대표한 거유(巨儒)였고, 정현(鄭玄)은 그 문하에서 수학한 뒤 스승의 학문을 집대성하여 후세의 표준으로 세운 제자였다.


마융(馬融)과 정현(鄭玄)의 관계는 흔히 상상하는 다정한 사제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살갗을 맞대고 손을 잡아 이끄는 관계가 아니라, 문턱과 거리, 인내와 승인으로 빚어진 관계였다. 정현은 이미 산동(山東)에서 이름난 학자들에게 수학한 뒤에도 학문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관중(關中)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마융의 문하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하에 들었다는 사실이 곧 친밀함을 뜻하지는 않았다. 마융은 문도(門徒)가 사백여 명에 달하는 대유(大儒)였고, 당(堂)에 올라 직접 수업에 참여하는 자만도 오십여 명이었다. 더구나 그는 본래 자존심과 위의(威儀)가 강한 인물이어서, 정현은 문하에 있으면서도 삼 년 동안 직접 만나지 못하고 고제자(高弟子)를 통해 간접으로 배워야 했다. 사제의 연(緣)은 이미 맺어졌으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아직 허락되지 않은 상태였다. 가까이 있으나 쉽게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 같은 학문의 집 안에 있으나 같은 방 안으로는 곧장 들어갈 수 없는 관계, 바로 그것이 두 사람의 출발점이었다.


정현의 위대함은 그 거리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스승의 총애를 기다리며 멈춰 선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스승이 보지 않는 시간 동안 더 집요하게 자신을 닦았다. 『후한서(後漢書)』가 전하듯 그는 밤낮으로 익히고 외우며 한 번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마융과 정현의 관계를 이해하는 핵심은 따라서 정서적 친밀감이 아니라 학문적 긴장이다.


마융은 쉽게 문을 열어 주지 않았고, 정현은 그 닫힌 문 앞에서 주저앉지 않았다. 이 관계의 밀도는 다정함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거절당하지도 않았으나 완전히 받아들여지지도 않은 상태를 오래 견뎌 낸 데서 생겼다. 좋은 스승은 언제나 따뜻하다는 통념도, 좋은 제자는 언제나 사랑받는다는 통념도 이 두 사람 앞에서는 수정되어야 한다. 때로 사제 관계의 진실은 애정보다 먼저 시험의 형태로 온다.


그러던 관계가 마침내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 온다. 마융이 여러 학생을 모아 도위(圖緯)를 논하던 자리에서 정현의 산술(算術) 능력이 드러났고, 그제야 그는 누상(樓上)으로 불려 올라가 스승과 직접 대면하게 된다. 이 장면은 중요하다. 마융이 비로소 정현을 ‘본’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정현은 문하의 한 사람에 불과했으나, 이 순간부터 그는 스승이 주목하는 제자가 된다. 그 대면 뒤에 남은 것은 일회적 칭찬이 아니라, 자기 학문의 장래가 동방(東方)으로 옮겨 간다는 마융의 깊은 탄식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감탄이 아니다. 스승이 제자의 재능을 인정한 수준을 넘어, 자신의 이후(以後)를 제자에게서 본 순간이다. 마융과 정현의 관계가 이때 비로소 따뜻해졌다고 말하기보다, 서로의 무게를 알아본 관계가 되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사랑의 언어보다 승인(承認)의 언어가 이 관계에는 더 잘 어울린다.


그러나 이 사제 관계를 감동적인 승인으로만 끝내면 절반만 읽은 셈이다. 정현은 마융의 훌륭한 제자였지만, 스승의 언어를 공손히 받아 적는 데 그친 인물이 아니었다. 귀향한 뒤 빈궁 속에서도 수백 수천의 제자를 모았고, 경전(經典)에 대한 방대한 주석과 논저를 남겼으며, 하휴(何休)와 같은 당대의 강적과 맞서 자기 해석의 권위를 세웠다. 『후한서』는 후대 학자들이 여러 설 사이에서 어디에 의지해야 할지 알게 된 것도 정현이 여러 학설을 망라하고 정리했기 때문이라고 평한다.


마융이 거대한 강학(講學)의 장을 만든 스승이었다면, 정현은 그 장에서 배운 것을 후세가 읽고 따를 수 있는 질서로 굳힌 제자였다. 스승은 권위를 만들었고, 제자는 체계를 만들었다. 스승은 무게를 주었고, 제자는 형태를 주었다. 사제 관계가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면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에 남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학문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몸을 마련해 준다. 정현이 바로 그러한 제자였다.


마융과 정현의 관계는 결국 “가깝고도 어려운 관계”라는 말로 정리된다. 가깝다는 것은 같은 도(道)를 향했다는 뜻이고, 어렵다는 것은 그 도가 사람 사이의 온기만으로 전수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마융은 제자를 오래 문밖에 세워 둔 스승이었고, 정현은 그 문밖의 시간을 원망 대신 축적으로 바꾼 제자였다.


스승은 제자를 늦게 알아보았으나, 한번 알아본 뒤에는 자기 도의 향방을 그에게서 보았다. 제자는 스승에게서 배웠으나, 배운 것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데 머물지 않고 후한(後漢) 경학(經學)의 표준을 다시 세웠다. 이 관계의 본질은 정다운 동행이 아니라, 냉엄한 거리 속에서 이루어진 깊은 계승이다. 가장 멀리 있었기에 가장 깊이 이어질 수 있었던 사제, 그것이 마융과 정현의 관계였다.


아래 사진은 정현 위사진 마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