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 만에 쓴 반성문

애민 제6조. 흥학(興學)

by 구현

"선생님, 반성문 다 작성했어요."



철수, 15세.

고등학교 1학년.


수업 시간에 떠들다 걸렸다.

선생님이 말했다.


"반성문 써서 내일까지 내."


철수는 집에 와서 휴대폰을 꺼냈다.


ChatGPT.


"고등학생이 수업 시간에 떠든 것에 대한

반성문 써줘. 500자."


10초.


화면에 글이 나타났다.


"저는 오늘 수업 시간에 친구들과 대화하여

선생님과 다른 학우들의 학습권을 침해했습니다.

깊이 반성하며, 앞으로는..."


완벽했다.

문법도, 논리도 흠잡을 데 없었다.



다음 날.

철수는 반성문을 제출했다.


선생님이 읽었다.


"음... 잘 썼네.

정말 네가 쓴 거니?"


"네."


선생님은 의심스러웠지만,

증거가 없었다.

내용은 완벽했으니까.


철수만이 아니었다.


전국의 학생들이 AI로 숙제를 했다.

독후감, 에세이, 자기소개서.


"요약해 줘."

"풀어 줘."

"써 줘."


10초면 충분했다.


생성형 AI는 교육의 구세주로 불렸다.


"모든 아이에게 개인 튜터를."


지식은 평등해졌다.

검색할 필요도, 외울 필요도 없어졌다.

질문만 입력하면 답이 나왔다.


하지만.

아이들은 '생각하는 법'을 잊어갔다.


명령어는 남았고,

사유(思惟)는 사라졌다.


어느 날.

선생님이 철수에게 물었다.


"네가 쓴 반성문에

'학습권 침해'라는 말이 있던데,

그게 무슨 뜻이니?"


철수는 멈칫했다.

"... 그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반성문을 쓴 건 AI였고,

철수는 그냥 복사했을 뿐이었다.



반성(反省).

돌이켜 살피는 것.

마음의 작용.


AI가 텍스트를 쓸 동안,

철수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반성문이 아니라,

데이터의 나열일 뿐이었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며,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는 시간.

그 속에서만 인간은 성장한다.


배움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생성 버튼'만 배웠다.


所貴乎學者 爲其能變氣質也

소귀호학자 위기능변기질야


"배움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것이 사람의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흥학(興學).

참된 배움을 일으키는 것.


교육의 목적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이 성숙해지는 변화에 있다.


AI는 지식을 줄 수 있어도,

기질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學者 爲己之學也

학자 위기지학야


"배움이란 자기 자신을 닦기 위한 것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과물은

AI가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나를 채우는 과정은

남이 대신할 수 없다.



오늘날 에듀테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점수를 잘 받게 하는 기술인가,

사람을 자라게 하는 기술인가?



답을 10초 만에 주는 AI는

친절한 스승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서

'고민할 권리'와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것일지 모른다.


철수는

완벽한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한 줄도 반성하지 않았다.


그의 기질은

변하지 않았다.


정약용은 AI 목민관에게 묻는다.


"당신의 교육 기술은

사람의 기질을 변화시키는가,

아니면 앵무새를 기르는가?"





[내일 계속]

측은지심. 애민을 마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