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의 고구마.

이전을 지나 호전으로 가는 길목에서.

by 구현

1805년 가을, 전라도 강진. 정약용은 유배 5년째를 맞고 있었다. 작은 초가집 책상 위에는 붓과 종이가 놓여 있었고, 그는 목민심서 제5부 이전(吏典)의 마지막 글자를 막 쓰고 있었다.


"아전의 간사함이 백성을 죽인다."


붓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았다. 가을 하늘이 높고 쓸쓸했다.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정약용이 문을 열자, 마른 농부 한 명이 서 있었다. 40대쯤 되어 보였지만 60대처럼 늙어 있었다. 농부는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


"일어나시오. 무슨 일인지 말해보시오."


농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환곡입니다."


정약용의 눈빛이 변했다. 환곡(還穀).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이자와 함께 받는 제도. 원래는 백성을 구휼하기 위한 것이었다.


"말해보시오."


"저는... 쌀을 빌린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관아의 장부에는 제 이름이 있습니다. '미납(未納)'이라고 찍혀 있습니다."


"얼마나?"


"처음엔 쌀 3섬이었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늘어나 이제 10 섬이 됐습니다."


농부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아내가... 먼저 갔습니다. 큰아들도... 작은딸도... 모두 빚 때문에..."


농부가 울기 시작했다.


"저는 쌀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단 한 톨도. 하지만 장부에는 제 이름이 있고, 빚은 늘어나고, 제 가족은 죽었습니다."


정약용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 관아의 아전들이 장부를 조작했습니다. 백성들 이름을 마음대로 적어 넣고, 쌀을 나눠줬다고 기록하고, 실제로는 자기들이 빼돌렸습니다."


"증거가 있소?"


"장부가 증거입니다. 하지만 관아는 그 장부를 절대 보여주지 않습니다. 저희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농부는 울면서 물러갔다.


정약용은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책상 위에 이전(吏典) 원고가 놓여 있었다. 직인, 공고, 찰물, 용인, 병제, 수문. 아전을 다스리는 법, 간사함을 막는 법, 부정을 차단하는 법. 모두 썼다.


하지만 정약용은 깨달았다. 아전의 간사함은 수단일 뿐이다. 목표는 백성의 살림이다. 아전이 장부를 조작하는 이유는 쌀을 훔치기 위해서고, 쌀을 훔치면 백성이 굶어 죽는다. 이전(吏典)은 아전을 다스리는 법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백성의 살림을 직접 지켜야 했다.


정약용은 새 종이를 펼쳤다. 제6부. 호전(戶典). 戶. 집. 살림. 백성들의 생계, 그들의 먹고사는 문제.

정약용은 붓을 들고 썼다.


"지방 수령의 직책은 사악한 아전들을 벌하는 것 이전에, 백성들의 살림을 넉넉하게 하고 굶주린 생명을 구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는 울면서 썼다. 환곡, 세금, 부역. 모두 원래는 백성을 위한 제도였다. 하지만 아전의 손을 거치면서 백성을 죽이는 칼이 됐다.


정약용은 결심했다. 호전에서는 제도 자체를 다룰 것이다. 아전을 단속하는 것을 넘어, 제도가 어떻게 작동해야 백성이 살 수 있는지 근본부터 다시 쓸 것이다.


새벽이 밝았다.

정약용은 첫 문장을 완성했다.


"목민관의 직책은 백성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그날 오후, 농부가 다시 찾아왔다.


"선생님, 제가 드릴 것은 없지만..."


손에 작은 보따리가 있었다. 고구마 몇 개였다.


"받을 수 없소."


"선생님께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농부는 절하고 돌아갔다. 정약용은 고구마를 내려다봤다. 이것이 백성의 살림이다. 고구마 몇 개. 그것이 생명이고, 그것이 없으면 죽는다.


정약용은 다짐했다.

호전(戶典)은 이 고구마를 지키는 법이 될 것이다. 아전이 훔치지 못하게, 제도가 빼앗지 못하게, 관리가 착취하지 못하게. 백성의 고구마, 백성의 살림, 백성의 생명. 그것을 지키는 법.


정약용은 호전의 첫 장을 시작했다.


"나의 직책은 백성들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내일 계속]

목민심서 제6부. 호전(戶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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