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전을 지나 예전으로 가는 길목에서.
1797년 가을, 곡성.
정약용이 현감으로 부임한 지 몇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아침, 관아 앞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정약용은 즉시 나가보라 했다.
마당에 한 과부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30대쯤 되어 보였지만 고된 삶에 지쳐 훨씬 늙어 보였다. 그녀 옆에는 어린 아들 둘이 떨며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아전 하나가 돼지 한 마리를 끌고 있었다.
정약용이 물었다.
"무슨 일인가?"
과부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대감님, 살려주십시오. 저 돼지는 저희가 가진 전부입니다."
아전이 끼어들었다.
"사또, 이 여자는 세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미납 세금이 쌀 5 섬에 달합니다. 그래서 돼지를 압류하려는 것입니다."
정약용은 과부를 보았다.
"그대가 낼 세금이 5 섬이나 되는가?"
과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대감님. 저는 남편이 죽고 난 뒤 논 한 마지기를 물려받았습니다. 거기서 나는 세금은 쌀 1 섬입니다. 그것도 이미 냈습니다."
아전이 반박했다.
"그것 외에 운영비, 수수료, 미납 벌금이 있습니다."
"무슨 운영비인가?"
"관아를 운영하려면 비용이 듭니다. 그것을 백성들이 나눠 내는 것입니다."
"얼마나 되는가?"
"쌀 2 섬입니다. 그리고 수수료가 1 섬, 작년에 늦게 낸 벌금이 1 섬..."
정약용은 손을 들어 아전을 멈췄다.
"장부를 가져오라."
아전이 장부를 가져왔다. 정약용은 한 줄 한 줄 살펴보았다. 과부의 이름 옆에는 여러 명목의 금액이 적혀 있었다. 정세(正稅) 1 섬, 운영비 2 섬, 수수료 1 섬, 벌금 1 섬. 총 5 섬.
정약용은 물었다.
"이 운영비와 수수료는 법전 어디에 규정되어 있는가?"
아전이 당황했다.
"그것은... 예부터 내려오는 관례이옵니다, 사또."
"관례? 법에 없는 것을 관례라 하여 백성에게 거두는가?"
"예전부터 그렇게 해왔습니다..."
정약용은 장부를 덮었다.
"이것은 액외과렴(額外科斂)이다. 정해진 세금 밖에서 가혹하게 거두는 것이다. 법에 없는 명목으로 백성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아전이 변명했다.
"하지만 사또, 관아를 운영하려면..."
"관아 운영비는 정당한 세금에서 나와야 한다. 백성에게 별도로 거둘 수 없다. 이 과부가 낸 세금 1 섬은 정당하다. 나머지 4 섬은 근거가 없다."
정약용은 과부를 보았다.
"그대는 이미 낼 것을 냈다. 돼지를 돌려받아라."
과부가 눈물을 흘리며 절을 했다.
"대감님의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아전은 어쩔 수 없이 돼지 줄을 놓았다. 과부는 두 아들과 함께 돼지를 끌고 돌아갔다.
정약용은 아전을 불렀다.
"오늘부터 법에 없는 명목으로 세금을 거두는 것을 금한다. 모든 세금 항목은 명확히 규정하고, 백성들에게 공시하라. 수수료나 운영비 같은 이름으로 임의로 돈을 요구하면 엄하게 벌할 것이다."
아전들은 불만스러웠지만 감히 반발하지 못했다. 정약용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그는 곡성현의 모든 세금 항목을 투명하게 정리한 규정을 만들었다. 어떤 땅에 얼마의 세금이 붙는지, 어떤 명목으로 얼마를 거둘 수 있는지 모두 명확히 적었다. 그리고 이것을 관아 앞에 게시하여 백성들이 볼 수 있게 했다.
한 달 후,
정약용은 관아 밖을 지나고 있었다. 한 농부가 그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나리, 저는 글을 읽지 못합니다. 하지만 관아 앞에 붙은 종이 때문에 아전이 함부로 돈을 요구하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정말입니까?"
정약용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제 법에 없는 것은 내지 않아도 되오."
농부는 기뻐하며 돌아갔다. 정약용은 농부의 뒷모습에서 돼지 한 마리를 떠올렸다. 그것이 그 과부와 두 아들에게는 전부였다. 만약 자신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마지막 희망마저 잃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정약용은 유배지 강진에서 목민심서를 쓰고 있었다. 그는 호전(戶典)의 부세(賦稅) 편을 쓰며 그날을 기억해 냈다. 아전이 법에 없는 명목으로 과부를 괴롭혔던 일. 장부에는 5 섬이라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1 섬만 내면 되는 것이었다. 나머지 4 섬은 아전의 탐욕이었다.
정약용은 붓을 들고 썼다.
治賦稅之法 務在平允 毋致有額外科斂之弊
"부세를 다스리는 법은 반드시 공평함에 힘써야 하며, 정해진 세금 외에 추가로 가혹하게 거두는 폐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정약용은 붓끝을 멈추며 생각했다.
‘언젠가 사람 대신 어떤 기계가 아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계산이라는 이름으로 백성의 삶을 저울질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구나.’
오늘날 우리가 AI라 부르는 그것처럼.
그러나 그는 알았다.
아무리 정교한 계산도, 그 뒤에 숨어 있는 부당함을 먼저 알아채고 바로잡는 일은 사람의 몫임을.
그 책무를 잊지 않는 이만이 목민관이라 불릴 수 있음을.
[내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