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러러봄

예전 제2조. 향사(鄕社).

by 구현

2025년 가을.

경상남도 어느 도시.


지역 출신 위인을 기리는

사당 입구.


키오스크가 설치됐다.

"AI 선생과 대화해보세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한 학생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AI가 답했다.

"근검절약하고

배움에 힘쓰라."


수백 권의 저서를 학습한 AI.

위인의 말투로

유창하게 답한다.


학생은 감탄했다.

"대박."

"진짜 선생님 같아."

셀카를 찍고

떠났다.


다음 사람.

"선생님, 부동산은

언제 사야 합니까?"


AI가 답했다.

"때를 기다리되

욕심을 부리지 마라."

사람들은 감탄하며

질문을 이어갔다.


정작

사당 안은

적막했다.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尊賢仰德 敎化之本

존현앙덕 교화지본


"어진 이를 존경하고

덕을 우러르는 것은

백성을 가르치고 화합하게 하는

근본이다."


향사(享祀).

지역의 성현을 기리는 제사.


제사(祭祀)가

떠나간 혈육에 대한

개인적인 슬픔과 도리라면,


향사는

우리 사회가 어떤 어른을 모시고 있는가에 대한

공동체의 자부심이다.


정약용은 말했다.

향사는

지식을 묻는 자리가 아니다.

한 시대의 등불이었던

성현의 삶을 마주하는 자리다.


그분이 걸어간 고단한 길을 우러르며,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공동체의 약속이다.


하지만

사당 입구의 사람들은

검색만 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성공합니까?"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검색이었다.


修其祠宇 謹其粢盛

수기사우 근기자성


"사당을 정갈히 수리하고,

올리는 곡식 하나에도

삼가 조심하라."


정약용은 강조했다.

사당을 수리하라.

먼지를 털어내라.

제물을 삼가 준비하라.


왜 그래야 하는가?


낡은 기와를 갈고

먼지를 털어내는

수고로움 속에서

비로소

스승의 정신이

내 몸에 스며들기 때문이다.


편리하게 정답만 출력해주는 AI는

이 '삼가는 마음'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사당 입구.

한 노인이 지나갔다.

키오스크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저게... 선생을 기리는 건가?"


노인은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위패를 바라보며

오랫동안 서 있었다.


선생의 삶을 생각했다.

청빈했던 일생을.

백성을 위한 헌신을.


노인은

마음속 이기심을 반성했다.

이것이

향사였다.


儒風夙夜 咸若一體

유풍숙야 함약일체


"선비의 기풍이

밤낮으로 이어져

공동체가 모두 한 몸처럼

화합해야 한다."


향사의 끝은

제사가 아니다.


사당 문을 나서는 사람들이

스승의 덕을 닮아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것.

그 정신적 연대감이

공동체를 지탱하는

진짜 힘이다.


정약용은 묻는다.

"우리는

선생을 만나는가,


아니면

선생의 데이터를 만나는가?


향사의 본질은

검색이 아니라

우러러봄에 있다."



[내일 계속]

예전 제3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