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11시의 의미
신호음만 울리는 전화기를 내려놓은 백동수 과장은 담배를 꺼내 물고, 폐기물과 온갖 토목 자재가 쌓여 있는 야적장을 노려봤다. 푹푹 찌는 여름 습기 속에서 시멘트와 흙먼지, 그리고 매캐한 담배 연기가 뒤섞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 냄새는 백동수에게 익숙하면서도 지긋지긋한, 자신의 삶 그 자체였다.
"젠장, 그 자식. 별것도 아닌 걸로 또 건수 잡으려는 거 아냐. 심각! 웃기고 자빠졌네."
그는 담배 연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이며 11시의 의미를 곱씹었다. 구청 주차장에 11시까지 도착해 감독을 기다리면 10분은 그냥 흘러간다. 노란 아파트까지는 20분, 민원거리를 확인하는 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면 곧 점심시간이다. 그에게 11시라는 시간은, '심각하다'는 거짓을 드러내는 맹수의 이빨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진짜 '심각한' 것은 백동수의 짜증으로 가득 찬 머릿속이었다. 공사현장은 털어서 먼지 안 날 정도가 아니라, 눈 닿는 곳마다 지적할 건수들이 무궁무진한 법이었다. 이벌건은 민원의 잘잘못에 따라 점심 메뉴의 질을 결정하는 인간이었다.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사소한 문제라도 '시설물 관리 소홀'이라는 서류 한 장이면 모든 공사가 중단시킬 수 있었다.
백동수는 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이벌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마침, 노란 아파트 주변 도로공사 현장에서 쓰고 남은 보도블록을 실은 낡은 포터가 야적장으로 들어섰다. 김경수 작업반장이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백동수는 성큼성큼 다가갔다.
"김 반장님. 노란 아파트에서 민원이 접수됐다는데."
백동수의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신경질이 묻어 있었다. 환갑을 앞둔 김 반장은 서른 중반 백동수의 짜증에 찌든 눈빛을 조심스레 살폈다. 도로공사 생활만 삼십 년이다. 감독 공무원의 전화 한 통에 안절부절못하는 젊은 현장소장을 수도 없이 봐왔기에 대충 눈치를 챘다.
"여태껏 둘러보고 왔는데, 별다른 문제는 없었어." 김 반장은 느릿하게 대답했다.
"아스팔트 포장 상태 확인해 봤어요?" 백동수가 다그쳤다.
"조인트가 조금씩 떨어져 나가. 어제 무슨 날벼락 치듯, 하루에 4군데 현장을 한방에 몰아붙였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지."
김 반장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서려 있었다.
입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늘 최저가에 맞춰 견적을 낸다. 거기다 하도급을 받았으니 공사 기간을 무리하게 줄이거나 인건비 따먹기 방식으로 마진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 먹이 사슬, 제일 아래에 놓인 자신들의 처지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참 나, 그럼 돈도 안 되는 아스팔트 포장 작업을 하루에 한 군데씩 해요?" 백동수가 쏘아붙였다. "그렇게 하면 적자 나, 적자!"
"그래도 정도껏 해야지. 아스팔트 작업반들도 엄청 짜증을 내. 우리 현장에만 오면 허리 아파서 다음 날 일도 못 잡는다고."
김 반장은 동료 작업자들을 대변하듯 말했다. 백동수는 그들의 불만이 이해되면서도, 자신이 처한 현실이 더 답답했다.
"그 자식들, 일 없을 때는 애걸하면서."
백동수는 그렇게 말하며 담배꽁초를 땅에 짓이겨 껐다. 김 반장은 분위기를 바꾸려 애써 걱정스러운 관심을 보였다.
"무슨 민원이래?"
"나야말로 열받아 미치겠어. 구멍이 없어졌대요."
"구멍?"
"어떤 사람이 도로에 있던 구멍이 없어졌다고 민원을 넣었답니다."
김 반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도로에 구멍이라면, 하수도 맨홀 뚜껑의 배수 구멍을 말하는 거 아냐."
김 반장은 자신의 풍부한 경험으로 단번에 맥을 짚어냈지만, 백동수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손에 들린 핸드폰 마저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는 급체한 아이처럼 몸을 한 번 틀고는 경기하듯 고함을 질러댔다.
"젠장, 아스팔트 포장하다가 맨홀을 덮은 거 아냐! 어제 포장할 때 맨홀 표시 안 했어요?"
김 반장은 여기서 물러서면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 같은 위기감에 휩싸였다.
"어제 노란 아파트 앞 도로 포장할 때 우리 직영 반들은 다른 현장에 있었잖아. 그리고 아스팔트 포장할 때 맨홀은 포장하는 애들이 기본적으로 챙겨야지, 왜 나한테 책임을 떠넘겨."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백동수는 현장 사무실로 달려가 공사 전 사진을 확인했다. 수십 장의 사진을 넘겼지만, 전체적으로 찍은 사진들 속에서 노면의 맨홀을 구별하기는 어려웠다. 간신히 한 장을 발견했지만, 새로 포장한 완료사진에는 맨홀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설마'를 넘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다시 담배를 입에 물고 11시 10분 전의 시계를 확인한 후, 야적장 입구에 주차된 차를 몰고 구청으로 향했다. 심장이 발밑에 있는 것처럼 쿵쿵거렸다. 젠장, 이제 이벌건에게 잡힐 건수가 생긴 것이다.
<다음 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