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먹이사슬
아스팔트 포장회사의 최 부장은 컨테이너 사무실 문을 거칠게 열었다. 사장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봤지만, 최 부장은 사장 눈치 볼 겨를도 없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백 과장 그 자식, 나이도 어린놈이 함부로 막말을 하는 게 아닙니까!"
“백 과장이 왜?”
사장의 나직한 물음에 최 부장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어제 노란 아파트 앞 도로 포장하다가 하수도 맨홀 뚜껑을 덮어버렸답니다. 원상태로 하라고 하기에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거래를 끊자는 겁니다.”
“허, 그게 말이 돼?”
사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제 그 난리통에 이틀 해도 버거운 일을 하루에 쑤셔 넣으니 이런 사달이 났지 않습니까! 허가는 오후 5시까지인데, 아파트 입구에 아스콘을 몇 차나 쏟아놓고… 허겁지겁 늦게까지 포장을 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있습니까! 경찰차가 두 번이나 떴습니다."
최 부장의 격앙된 목소리와 달리, 사장의 표정은 짐짓 무거웠다.
"용역업체라도 보내서 맨홀을 찾아줘야 하나."
"사장님, 절대로 안 됩니다. 하도급에 하도급이라고 해도 이건 선을 넘은 겁니다. 하자 보수까지 떠넘기면 거래는 우리가 먼저 끊어야죠."
"최 부장 말도 틀린 건 아니야. 장비는 그렇다 쳐도, 인건비는 잔업까지 달아야 했으니… 정산해 보니 어제 우리도 손해 봤어."
일이 줄면서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졌다. 아스팔트 포장 단가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는 없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모든 것을 줄였다. 변변한 사무실조차 없이 남의 땅 한구석을 빌려 버티는 중이었다. 이런 형편에서 하자 보수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그도 생각했다. 사장은 복잡한 심경이었다. 유일한 정직원인 최 부장의 억울함과 분노를 이해하면서도, 백동수 과장의 처지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어차피 하도급에 하도급이란 이 구조에서는 누구나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한편, 노란 아파트 앞에 도착한 백동수 과장과 이벌건 주사보는 아무 말 없이 모래가루 흔적이 남아 있는 보도블록 위를 걷고 있었다. 3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백동수는 목이 바짝 말랐다. 이벌건은 새로 포장한 도로 가장자리를 반질발질하게 광을 낸 구두로 톡톡 찼다. 제대로 다짐이 되지 않은 골재들이 떨어져 나갔다.
"상태가 영 좋지 않아."
이벌건의 무심한 한마디에 백동수의 심장이 덜컹거렸다.
'감독님. 저희도 하도급을 받은 처지에 아스팔트 포장 단가가 얼마나 낮은지 잘 아시잖아요. 저도 월급 받는 주제에 악역을 도맡아 하는 처지를 이해해 주십시오. 제 사정을 아시는 감독님이 이러시면 저는 대체 어디에다 하소연합니까.'
하고 싶은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백동수는 그저 멋쩍은 미소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이벌건의 칼날 같은 시선 앞에서 변명은 소용없다는 것을 그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버스 정류소 대여섯 걸음 못 미쳐, 이벌건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이쯤에 구멍이 있었다는 거야."
"그게 말입니다. 아마도 하수도 맨홀 뚜껑의 배수구멍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백동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뭐야, 어제 아스팔트 포장하다가 덮었다는 거야."
이벌건은 턱을 문지르며 피식 웃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백동수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
단번에 해결되어 싱거워진 두 사람은 점심 메뉴를 논하며 백동수의 차로 향했다.
의외로 쉽게 넘어간 이벌건의 표정에 백동수는 감사의 표시로 점심치고는 좀 과한 일식집 주차장으로 차를 밀어 넣었다. 럭셔리한 인테리어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벌건은 구멍에 관련한 민원을 이야깃거리로 삼으며 분위기를 이끌어나갔다.
"그 사람은 어떻게, 도로에 있는 작은 구멍을 그렇게 유심히 보았을까."
이벌건은 젓가락으로 초밥 한 점을 집으며 흥미로운 듯 말했다.
백동수는 그 말에 멋쩍게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백동수의 굳은 표정을 살핀 이벌건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 갈수록 일 해 먹기 힘든 거야. 어제 노란 아파트 주변에서 민원 전화가 장난이 아니었어. 내가 업체들 처지를 이해하니까 망정이지, 공사 중단 시켰을 거야. 내가 막아줄 수 있는 건 막아준다 쳐도, 부실공사는 안 되지. 안 그래, 백 과장."
백동수는 감독이 현실을 이해해 주는 것 같아 다소 안도했다. 하지만 뻔한 실수를 해놓고도 당당하게 큰소리치는 포장회사 최부장을 속으로 욕했다.
"아침부터 말이야, 구멍 구멍 하니까, 괜히 기분이 그렇더구먼."
이벌건은 씨익 웃으며 성게알을 혀끝으로 뭉갰다. 백동수는 그 묘한 웃음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젓가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벌건은 잠시 백동수를 빤히 바라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이봐, 백 과장. 오늘 기분도 그런데 나랑 어디 좀 갈까. 우리도 우리만의 '구멍' 하나 찾으러 가볼까."
백동수는 감독의 노골적인 '구멍' 타령에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표정 관리만은 완벽했다. 그는 감독의 그다음 수순을 이미 꿰뚫고 있었다.
"노란 아파트 구멍, 다음 주 월요일까지 해결해. 넉넉하지!"
이벌건은 자신 앞에 놓인 계산서를 앞으로 밀었다.
현장 사무실로 복귀한 백동수는 본사에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내 돈 들여가며 그 인간 비위 맞출 이유는 없지. 그래, 본사 부장한테 더러운 소리 한 번 듣자. 매일 보는 감독한테 찍히는 것보다는….'
백동수는 본사 윤 부장과 무거운 통화를 마치고, 김 반장을 불렀다.
"김 반장님, 노란 아파트 앞에 묻힌 하수도 맨홀 내일까지 찾아서 원상 복구하세요.”
“위치는?”
“버스 정류장 근처랍니다.”
백동수의 목소리에는 낮게 깔린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찾아?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지."
"근처 하수도 맨홀 따고 들어가서 거리 재보면 되잖아요. 그런 것도 못 해가지고 무슨 노가다 반장 한다는 거야."
백동수는 머리끝까지 차오른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김 반장에게 쏟아냈다. 말문이 막힌 김 반장은 백동수를 조용히 노려보며 사무실을 나섰다.
담배에 불을 붙인 백동수는 점심때 괜히 비싼 일식집으로 간 것을 후회했다. 업소에 가서 바가지라도 썼다가는 노란 아파트 앞 도로 정비 공사는 말짱 헛일이 될 게 뻔했다. 씁쓸한 입맛을 다지면서도 그는 생각했다. 어찌 됐든 회사 돈으로 오래간만에 비싼 술이나 잔뜩 마시고 다 잊어버리자고. 그는 그렇게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일찌감치 일을 정리하고 이벌건이 말한 약속 장소로 향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