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구멍은 어디에
"아이고, 형님! 이렇게 와 주셔서 영광입니다."
인상이 강렬한 사장이 무안해할 정도로 이벌건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입구를 통과해 업소로 들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마치 자신의 무대에 오르는 듯 당당했다. 화려한 카펫이 깔린 복도를 지나, 밀폐된 VIP룸으로 이어지는 길은 세상의 현실과 단절된 비밀스러운 통로 같았다.
업소의 규모와 호화로운 인테리어는 백동수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각오는 했지만, 아무리 회사 돈이라도 뒷일이 영 찜찜했다. 이곳에서 이벌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그는 마치 거대한 도박판에 홀로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이벌건이 술에 약하다는 미약한 희망은, 그가 찾는 그 무언가가 이곳에서 혹시라도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앞에서 흔들렸다. 그는 분위기를 봐가며 적당히 술을 마시고, 앞으로 이어질 상황을 치밀하게 계산할 것이다. 이벌건은 이 분야의 노련한 감독이었다.
오늘은 감독이 추천한 곳이라 수준에 대한 걱정은 덜었지만, 백동수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경험상, 감독은 가장 먼저 들어서는 여주인공의 '이미지'로 오늘 밤의 대본을 결정할 터였다. 얼마나 많은 예산을 쓸지, 어떤 분위기로 극을 이끌어갈지, 노심초사하는 백동수와 달리 이벌건은 특유의 침착함으로 모든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오늘은 감독이 추천한 곳이라 수준에 대한 걱정은 덜었지만, 백동수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경험상, 감독은 가장 먼저 들어서는 여주인공의 '이미지'로 오늘 밤의 대본을 결정할 터였다. 얼마나 많은 예산을 쓸지, 어떤 분위기로 극을 이끌어갈지, 노심초사하는 백동수와 달리 이벌건은 특유의 침착함으로 모든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이벌건은 백동수가 그녀를 바라보는 모습을 확인한 후, 천천히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얼굴에는 감탄이나 호기심 대신, 퍼즐이 모두 맞춰진 듯한 기묘한 만족감이 감돌았다. 첫사랑을 닮은 그녀, 삶의 모든 근심과 불안을 녹여주었던 그 추억 속의 그녀 앞에서 이벌건은 얼굴이 하얗게 빛났다. 그는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술잔에 담긴 얼음을 흔들었다. 그의 탐욕은 단순하지 않았다. 돈이나 향락이 아닌,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채우고 싶은 맹목적인 욕망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 갈망의 끝을 본 듯했다.
백동수는 강렬한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 머리는 깨질 듯 아팠고, 속은 쓰리며 어젯밤의 역한 술냄새와 쓴맛이 맴돌았다. 후텁지근한 기운과 습기로 가득한 새벽 거리를 비틀거리며 걸어 다니다가 현장 사무실에서 잠들었다는 사실을 힘겹게 깨달았다. 김 반장이 사 온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으며 쓰린 속을 달랬다.
어젯밤의 화려한 술자리는 아득한 꿈처럼 사라지고, 그를 짓누르는 숙취와 함께 현장사무실의 더럽고 눅눅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그의 뇌리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잔영은 감독의 첫사랑을 닮은 그녀의 청순한 얼굴이 아니라, 어젯밤 술자리에서 목격한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를 괴롭힌 것은 어제 이벌건이 계산서와 함께 내밀며 지은, 모든 것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고 있다는 듯한 그 싸늘한 웃음이었다.
김 반장은 가슴장화를 착용하고 사라진 맨홀에서 가장 가까운 하수도 맨홀 뚜껑을 열고 들어갔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하수관은 입구부터 무릎까지 악취를 풍기는 하수가 차 있었고 들어갈수록 깊어졌다. 그는 늪에 빠진 설치류처럼 간신히 고개만 위로 든 채 필사적으로 기어들어갔다. 하지만 십여 미터쯤 들어가자 오래된 침전물이 쌓여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하수관 어딘가가 막힌 것이 분명했다. 심각한 상태를 확인한 김 반장은 포기하고 뒤로 기어서 하수관에서 빠져나왔다.
김 반장은 근처 맨홀 간격과 백동수가 말한 위치를 어림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쯤, 드릴로 뚫어봐. 뭔가 부딪히면 바로 세워."
아파트 입구 도로의 한 차선을 막고 있자니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점점 밀리는 차량들이 아우성을 쳐댔다. 그는 태연한 척 일에 몰입하려 했지만, 신고 없이 진행하는 공사라 적잖이 신경이 쓰였다.
"이 미친놈들아. 공사한 지 사흘밖에 안 된 멀쩡한 도로를 또 파헤쳐? 하는 짓들이 왜 그래!"
지나가던 노신사의 고함에 젊은 인부가 대들었다.
“어르신,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미친놈이라고요!”
인부와 행인이 냉랭하게 대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래, 네 놈들이 뭘 알겠냐. 세금이 썩어 넘쳤지.”
노신사가 지나가자 김 반장은 젊은 인부에게 소리쳤다.
"야, 민원 들어가면 어쩌려고 그래! 그걸 못 참고는 길바닥에서 노가다 못한다!”
“반장님, 구멍 위치나 잘 잡아줘요. 이러다 도로만 엉망 되겠어요.”
스무 개 넘게 구멍을 뚫어봤지만 드릴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보기 흉한 구멍이 여기저기 늘어나며 엉뚱하게 일이 커지자, 김 반장은 작업을 중단시켰다. 인부들은 저마다의 경험을 토대로 김 반장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반장님, 금속 탐지기가 있으면 금방 찾을 수 있어요. 전에 다른 현장에서 그렇게 찾는 걸 봤어요.”
김 반장은 구멍투성이가 된 새 포장도로를 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고 백동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 과장, 맨홀 위치를 잡을 수가 없어. 하수관이 꽉 막혀서 들어갈 수가 없었어."
짜증 말고는 자신에게 남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 백동수는 말했다.
"그래서요?"
"금속 탐지기를 구할 길이 없을까?"
"뭐라고, 금속 탐지기! 짜증 나 죽겠네. 좀 알아서 해봐. 열받아 미치겠네."
김 반장은 심호흡을 했다.
"백 과장, 구멍 뚫어 찾다가는 도로가 엉망이 되고 말 거야. 진정하고 방법을 찾아보자고."
그때였다. 바로 옆에서 도면을 그리던 조 대리가 백동수에게 씁쓸한 미소를 선물했다.
"과장님. 도시가스 애들이 금속 탐지기 들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한 번 알아볼까요?"
"그래, 아는 곳 있으면 어서 알아봐."
조 대리는 도시가스업체에서 근무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의외로 일은 쉽사리 진행되었다.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산다는 제의와 한 시간 정도의 여유밖에 없다는 조건에, 백동수는 담배 연기 속에서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동의했다.
하지만 그것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만 드러낼 뿐이었다. 금속 탐지기가 찾아낸 버스 정류장 부근에 묻힌 맨홀은 모두 세 개였다. 세 곳 모두 파보니 전기와 수도 관련 맨홀이었고, 배수구멍이 뚫린 하수도 맨홀은 찾을 수 없었다. 약속한 한 시간을 10분 넘기자 금속 탐지기의 주인은 애걸하는 김 반장을 뒤로한 채 사라졌다
찾아낸 맨홀을 원상 복구하느라 그 다음날 굴삭기까지 투입되는 적지 않은 공사가 벌어졌다.
이래저래 현장사무실 분위기는 냉랭했지만, 김 반장은 백동수에게 하수관 상태를 자세히 설명했다.
“하수관이 꽉 막혔어. 준설 작업이 시급해. 자칫하면 큰일 날 수도 있을 것 같아.”
“우리 공사는 하수관하고 아무 상관없으니까, 반장님은 신경 쓰지 마세요. 내가 감독한테 이야기할 테니까.”
마침, 그때 이벌건의 전화가 왔다.
"노란 아파트 앞 민원은 해결됐지?"
"그, 그게, 아직 못 찾았습니다. 그런데 작업 중에 하수관이 꽉 막힌 걸 발견했습니다. 구청 준설팀에 협조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준설이라니, 준설팀 지금 바쁜 거 몰라? 장마철이잖아. 그리고 내가 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해. 내가 맨홀 덮었어. 백 과장이 그런 건 알아서 해야지."
이벌건은 준설팀을 언급하는 것조차 귀찮은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백동수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큰일 날 수도 있습니다. 준설 작업이 꼭 필요합니다."
"백 과장, 자꾸 그럴 거야? 그럼, 도로 다 걷어내고 다시 포장해.”
“감독님, 그게 아니라,”
“당장, 구멍 찾은 사진이 들어간 완료 서류 가지고 구청으로 와.”
전화가 끊겼다. 백동수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몸서리를 쳤다. 본사에 준설 작업을 요구했다가는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게 분명했다. 차라리 아스팔트를 다 걷어내고 다시 포장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