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로젝트 A

오징어의 꿈

by 구현

경기도 부천역 부근 4층짜리 상가 건물 1층에 자리한 '양산불고기'. 지글거리는 불고기 냄새가 서서히 흩어져갈 무렵, 분주했던 주말 장사를 마친 중년의 남자는 그날의 매출을 확인하며 조용한 만족감에 젖어들었다.


반평생 계산기를 두드리던 그의 손가락은 이제 태블릿 PC의 매끄러운 화면을 터치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화면 속 숫자들이 말해주는 것은 단순한 수익이 아니었다. 그것은 삼십 년간 쌓아 올린 신뢰와 땀의 결실이었다.


"사장님, 먼저 가보겠습니다!"


주방에서 마지막 설거지를 마친 직원들의 인사에 그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고생 많았어, 내일 봐!"


발걸음 소리가 저녁거리 속으로 멀어져 갔다. 그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하루를 마무리하는 고요함이 식당을 감쌌다.



이 4층짜리 상가건물은 그의 삶을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이었다. 1층은 식당을 직접 운영하고, 2층과 3층은 원룸으로 단 한 번도 공실이 생긴 적이 없었다.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젊은 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도 한때 그런 청년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는 시세보다 저렴한 월세를 받았다. 식당에 내려와 밥을 먹는 세입자들에게는 찌개와 불고기 한 접시를 저렴한 메뉴로 제공하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한 사업이 아니라, 자신이 받았던 작은 친절을 되돌려주는 일이었다.


덕분에 건물은 늘 생기가 넘쳤고, 삼십 년 넘게 해 온 불고기집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맛집이 되어 있었다.


그때 유리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들과 딸이 밝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저녁 공기를 함께 데려온 그들의 모습에서, 그는 문득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흘렀는지를 깨달았다.


"아빠, 아직 정리할게 남았어요?"

"아냐, 다 끝났다."


대학생인 아들은 습관처럼 의자를 가지런히 정리했고, 증권회사 인턴을 마치고 정직원으로 채용된 딸은 그에게 다가와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빠, 주말이라 단체 손님이 많았나 봐요."

"평소랑 비슷해. 그런데 너희 저녁은 먹었니?"

"우리는 엄마랑 김치찌개 끓여 먹었어요."


아들이 식당 벽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끄려고 리모컨에 손을 뻗을 때였다.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광고 영상이 흘러나왔다. 아들은 아버지가 좋아하는 성룡 영화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세 사람의 이목이 화면으로 향하며 시간이 멈춘 듯 모두가 숨을 죽였다.


[성룡 프로젝트 A, 30년 만에 재개봉.]


매출을 정리하던 분주한 그의 손이 멈춰 섰다. 광고 속 젊은 성룡의 얼굴이 시간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를 30년 전 그 시절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성룡을 보는 순간, 그의 기억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갔다. 홍콩 영화의 비공식 수입이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그 시절 영화를 볼 때마다 시끌벅적한 부산 남포동 극장가에서 시작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당시 국내 배급사들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대작으로 불리는 영화들에만 집중했고, 성룡 같은 홍콩 배우의 영화들은 '저급한 무술 영화'라는 편견 때문에 정식 수입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폴리스 스토리'나 '취권' 같은 그의 영화들이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입소문을 타며 밤샘 상영을 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프로젝트 A>는 성룡이 시계탑에서 몸을 던지는 스턴트로 '대역 없는 배우'라는 명성을 전 세계에 알린, 그의 영화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작품이었다.


그 아슬아슬하고도 유쾌한 액션은 당시 젊은 세대에게 현실의 답답함을 잊게 해주는 해방감을 선사했다. 그때의 그도 그랬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던 사회초년생인 그에게, 성룡 영화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다. 그것은 꿈을 향한 도약이었다.


"아빠, 성룡 영화 완전 좋아하잖아요. '프로젝트 A' 재개봉하는 거 엄마랑 둘이 보러 가세요. 지금 핸드폰으로 예약할게요, 어때?"


딸의 말에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그 미소 뒤로는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하고 있었다.


"우리 딸이 최고다."


아들이 흥미진진하게 말을 이었다.


"아빠, 주말인데 우리 '오징어 게임' 같이 볼래요? 정말 재밌다고 하던데."


그는 아이들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집으로 가자."


아들이 TV를 끄자, 그들은 정리가 말끔히 끝난 1층 식당 문을 닫고 계단을 통해 4층 집으로 향했다.

넓고 아늑한 거실에서는 아내가 따뜻한 미소로 그들을 맞았다. 아들이 신이 나서 "엄마도 오징어 게임 같이 봐요!" 하고 외치자, 아내는 분주한 걸음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드라마가 시작될 무렵, 거실 탁자에는 노릇하게 구워진 오징어와 팝콘, 그리고 시원한 음료가 차려졌다.


86인치 TV에서 딱지치기 소리가 울려 퍼지자, 가족들은 숨을 죽인 채 화면에 몰입했다. 남루한 차림의 주인공이 지하철역에서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와 딱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딱지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뺨을 맞는 소리. 돈을 걸고 하는 음습하고 위험해 보이는 게임.


단순한 규칙, 하지만 잔혹한 결과. 그는 아이들 곁에서 드라마를 보며 문득 가슴 한편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456억이라는 거액의 상금, 그리고 그 돈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 속에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잊고 지냈던 어떤 감정들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화면 속에서는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어린 시절의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시선이 탁자 위의 오징어로 향했다. TV 화면과 탁자를 번갈아 보던 그의 눈동자에서 무언가 흔들리는 것이 스쳤다.


거실에는 드라마의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의 머릿속은 1990년 부산 남포동 극장가의 그 시절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 시절 품었던 간절함들, 그리고 지금 이 안락한 거실에서 잊고 살던 돈에 대한 욕망과 생존의 공포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화면 속 오징어 게임이 진행될수록,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또 다른 게임의 기억이 깨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