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뚝방꽃길, 산책이야기
집에서 불과 15분. 이 짧은 시간이 전혀 다른 세상으로의 통로가 되는 곳, 하남시의 미사뚝방꽃길이다. 당정그린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기록적 무더위가 아스팔트를 달구고 있었다. 몇 대의 차량이 뜨거운 볕 아래 익어가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잠시 사막의 한복판을 경험했다.
최고의 산책길로 기억하는 이곳은 작년 봄 다산으로 이사하고 세 번째 방문이다. 이 길의 진가는 세월이 흘러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이 만든 자연의 터널에 있다. 쭉 뻗은 미사뚝방꽃길은 무더운 오늘에도 우리에게 명품 그늘막을 선사했다. 주차장에서 사막을 맛봤다면, 여기는 오아시스 그 자체였다.
간혹 찐득한 습기를 머금은 더운 바람이 지나가지만, 부드럽게 다져진 산책로는 발바닥을 부드럽게 받아주었다. 올여름의 무더위가 만든 고요한 산책로를 우리 집 마당처럼 편안하게 거닐었다.
땀은 흘러내렸지만 한강의 드넓은 물줄기와 건너편 남양주의 병풍처럼 펼쳐진 예봉산이 푸르른 위로를 건넸다. 뚝방꽃길이라는 이름처럼 한강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게 뻗은 이 길은, 미지의 세계로 가는 길목처럼 걷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편안한 제방길을 걸으며 문득 생각했다. 한강의 범람에서 삶의 터전을 지키려 했던 수많은 이들의 간절함이 여기 쌓여있다는 것을. 오랜 세월 거센 강물을 막아선 흙과 돌의 역사 위를, 나는 그저 편안히 걷고 있다. 한강이 저 아래 유유히 흐르고, 아파트가 촘촘히 들어선 도시가 평온해 보이는 이 순간이 감사했다.
과거 제방에 코스모스를 비롯한 아름다운 꽃을 심어 붙여진 이름이 뚝방꽃길이다. 강변에 도시가 들어서기 전, 이곳은 '아름다운 물결과 모래로 이루어진 섬'이라는 뜻의 미사리였다.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되기 전까지는 상습침수지역이었다. 생존을 위해 쌓은 거대한 제방이 이제 아름다운 꽃과 푸른 나무로 사람들의 마음까지 치유하는 공간이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 만든 제방은 시간이 흘러 시민들의 여가와 휴식을 위한 아름다운 산책로로 거듭났다. 과거 근로자들의 고된 노동이, 또 한 때는 낭만을 쫓던 이들의 활기가 넘쳤을 이곳. 이 모든 것이 겹쳐지는 묘한 기분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산책로를 걸었다.
무릎이 신호를 보낼 때쯤, 걸음을 돌렸다. 끝 모를 길은 다음을 기약하는 표지로 남기고 뒤돌아 걸었다.
팔당대교를 넘어 집으로 가는 길에 건너편 뚝방길이 무성한 숲으로 눈에 들어왔다. 한때 생존을 위해 쌓은 저 제방은 오늘 내게 위로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