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내 덕송천 산책이야기.
여전히 일이 없는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가까운 산책로를 찾는 것은 여러모로 산책의 묘미를 즐기기 좋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아니 오히려 가까이 있기에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개미의 시선으로 주변을 더듬다 보면 삶의 이야기가 어느새 만들어지는 법이다. 그런 마음으로 발길을 향한 곳, 별내를 굽이굽이 흐르는 덕송천이다.
하천 옆 산책로는 세계 어디나 비슷하지 않을까. 물길을 따라 사람들이 오가며 자연스럽게 길이 생기고, 세월이 흘러 지금은 잘 정비된 평탄한 길이 되었다. 천천히 걸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생각도 따라서 깊어진다. 무더위에 잠긴 이 길도, 몇 달 전엔 벚꽃으로 환했으리라. 물가에서 먹이를 찾는 백로를 보니, 도심 속 하천도 여전히 생명력을 품고 있음을 느낀다.
5천 걸음쯤 걷다 보니 그늘진 벤치가 나타나고, 잠시 앉아 덕송천의 내력을 짚어본다. 모든 땅에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 뒤에는 반드시 이야기가 숨어 있다.
덕송이라는 지명은 예전의 덕릉리와 송산리라는 마을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합쳐진 이름이다. '덕릉'은 조선시대 선조와 관련된 설화로 유명한 덕릉고개에서 유래했고, '송산'은 소나무가 많아 불리던 이름이다.
덕릉고개, 당고개라고도 불리는 이곳에는 조선의 임금과 숯장수들이 엮어낸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선조는 돌아가신 아버지 덕흥대원군을 왕의 지위를 주고 싶어 했지만, 신하들은 법도에 어긋난다며 반대했다. 왕이 아닌 사람의 묘에는 '능(陵)'이라는 명칭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 선조가 택한 방법이 기발했다. 덕릉고개 일대 숯장수들에게 이렇게 지시했다고 한다.
"나무꾼들이 '덕릉에서 왔다'고 말하거든 후한 값을 쳐주고 음식과 술을 대접하고, '덕흥대원군묘에서 왔다'고 말하는 자는 거들떠보지도 말라."
이런 소문이 퍼지자 나무꾼들은 모두 "덕릉에서 왔습니다"고 대답했고, 자연스럽게 백성들 사이에서 덕흥대원군의 묘는 '덕릉'이라 불리게 되었다.
전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흥미롭게 다가왔다. 똑같은 고개를 넘으면서도, 그것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받는 대우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일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덕릉고개가 당고개였구나." 나는 핸드폰을 보며 무심코 말을 내뱉었다.
"당고개역은 정말 많이 들어봤는데, 4호선 종점 아니었나?" 아내가 말했다.
"그게, 지금은 불암산역이 되었네. 나도 당고개역은 많이 들어봤어. 금정역에서 말이야."
"맞아, 그 특유의 발음 있잖아. 당, 고개. 당고개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내의 넉살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어쩌면 덕릉고개가 잊히고 당고개가 더 유명해진 건, 성황당이 있어 사람들이 소원을 빌던 곳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덕릉고개가 왕에게 인정받는 이름이었다면, 당고개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이 깃든 이름이었다. 권력은 세월이 흐르며 흥망성쇠를 겪지만 서민의 삶은 끈질긴 들풀처럼 영원한 것이니, 어쩌면 이는 너무도 당연한 역사의 흐름일 것이다.
덕송천을 따라 걷는 이 소박한 오후도, 그저 '막막한 시간 달래기'라고 부를 수도 있고 '삶의 성찰'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선조의 숯장수들처럼, 나도 오늘부터는 내가 걷는 길을 더 특별한 이름으로 불러보려 한다. 그저 '산책'이 아닌 '삶의 순례'라고, 덕송천을 '평범한 하천'이 아닌 '역사와 전설이 흐르는 강'이라고 말이다.
불암산과 수락산의 맑은 기운을 받아 흐르는 덕송천은 별내 신도시를 가로질러 왕숙천과 한강으로 이어진다. 흐르는 물은 기억한다. 계곡의 기억을, 계절의 변화를, 그리고 그 옆을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지금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을까. 똑같은 길을 걷고, 똑같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어떤 마음을 담느냐에 따라 삶의 질은 확연히 달라진다. 우리는 모두 의미를 만드는 사람이다. 주어진 현실을 그저 받아들이는 존재가 아니라, 그 현실에 색을 입히고 의미를 더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덕송천은 여전히 흘러간다. 비가 오면 거세게, 마른 날에는 졸졸졸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저 하천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언제나 풍족하다면 이런 깊이의 의미를 알 수 있을까. 무거운 산책은 그렇게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