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빌고 있을까?

남양주 봉선사, 산책이야기

by 구현

주말, 가족들이 좋아하는 돈가스집에서 점심을 먹고 길을 나섰다. 큰아들의 운전 연수를 겸한 나들이였다.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초보운전 마크를 붙인 차에 올랐다. 가족들끼리는 운전을 가르치면 안 된다는 말을 떠올리며 최대한 묵언 수행을 했다. 목적지는 남양주 봉선사였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연잎이 만발한 산책로로 접어들자 맑고 깨끗한 공기가 폐 깊숙이 스며들었다. 인근 국립수목원의 영향일까. 진한 숲내음이 오는 동안의 긴장을 스르르 풀어준다.


절을 향하는 연못 산책길은 내 키보다 큰 연잎들로 장관을 이룬다. 빗방울이 그대로 미끄러질 듯한 우산만 한 연잎들이 빛바랜 연등 아래서 가을을 맞으려는 듯 성숙한 빛깔로 접어들고 있었다.


물가에 우아하게 서 있는 백로 한 마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한데 모았다. 마침 백로가 물고기를 낚아채 날아오르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백로 부리 끝에서 번뜩이는 것은 단순하고 주저 없는 삶의 이치였다. 사람들은 그 생생한 섭리에 탄성을 질렀을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원자들이 모여서 물질이 되고 생명이 되었다가 다시 원자로 돌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연못에서는 거북이와 잉어들도 먹이 활동을 하느라 분주히 헤엄친다. 저마다의 속도로 움직이는 모든 생명 앞에 잠시 발걸음을 멈춰 선다. 여기 보이는 생명들의 움직임이 그 이치를 증명하듯 내 발걸음을 이끈다.


봉선사는 두어 달에 한 번은 꼭 찾게 되는 곳이다. 큰아들은 일상에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면 절에 가고 싶어 했다. 이번에는 서툰 운전 실력으로 직접 차를 몰고 온 아들이 큰법당으로 들어간다. 아내는 절을 하는 아들을 애틋하게 바라본다.


"우리 아들은 뭘 저렇게 간절히 빌까?"


법당 아래 마루에 앉아 아들을 기다리는 아내는 조용히 속삭였다. 아내의 눈가에 오후의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문득 애틋한 마음이 일렁인다. 그 마음을 달래듯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오묘한 박자로 공간을 가득 채워온다. 아들 덕에 찾게 되는 절이 주는 평안함이 나의 지친 가슴속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했다.


큰법당 마당에는 절절한 마음으로 공양하는 이들의 행렬이 보인다. 사람의 마음은 세월이 제아무리 흘러도 비슷한 것이리라. 가을을 기다리는 연잎, 먹이를 쫓는 백로, 바쁘게 헤엄치는 잉어와 거북이. 이 모든 것은 봉선사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왔다. 먼저 간 영혼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절이, 시간을 건너 살아있는 이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공간이 되었다.


은 공기 속에서 가족이 함께 걷는 이 시간이 삶의 본질적인 위로였다.


아들이 무엇을 그토록 간절히 빌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돌아가는 길 운전석에 앉은 아들의 모습은 오는 길보다 훨씬 편안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 또한 무언가를 빌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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