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과 다녀온 삼패 한강공원의 가을 산책
추석 다음 날, 코스모스를 좋아하시는 장모님을 모시고 남양주 삼패 한강공원을 찾았다. 한강변을 따라 펼쳐진 백일홍 꽃밭은 어느덧 가을의 깊어진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울긋불긋 물든 꽃길을 다정하게 걷는 아내와 장모님의 모습을 보며 오래된 기억의 수문이 열렸다.
오래전,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장모님은 말없이 손을 내밀어주셨다. 부모님의 빈자리를 묵묵히 채워주신 버팀목이었다.
막내딸인 아내를 향한 애틋함 때문일까. 장모님은 언제나 오시는 길에 김치 한 통, 반찬 하나라도 더 챙겨 오신다.
멀리서도 보이는 코스모스 들판으로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길로 접어들었다. 흰 줄기들이 아담한 길을 내어주고 있었다.
길가의 작은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자작자작' 불에 타는 소리가 이름이 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존재가 소멸하는 순간의 소리가 그 존재의 이름이 되었다는 것. 고개를 들어 길을 만든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흰 나무들 사이로 아내와 장모님이 나란히 섰다. 사진을 찍으며 문득 깨달았다.
자작나무의 '자작자작' 소리는 단순히 소멸의 신음만은 아니었다. 그 소리와 함께 나무는 열기를 내뿜으며 긴 겨울을 견뎌야 할 다음 세대를 지켜냈을 것이다.
차가운 밤, 타오르는 자작나무 앞에서 아이들은 손을 녹이고, 어른들은 그 불에 음식을 만들어 생명을 이어갔을 것이다. 소멸은 곧 온기였고, 그 온기는 또 다른 생명을 살렸다.
버팀목처럼 서 있는 장모님의 모습이 문득 그 하얀 나무들과 겹쳐 보였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존재들. 그들은 자신이 사라지는 순간에도 온기를 남긴다.
다리가 불편한 장모님의 손을 살짝 잡았다. 따뜻했지만 메말랐다.
자작나무길이, 더 이상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자신의 온기로 다음 세대를 살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넉넉한 강물을 바라보며, 우리는 코스모스를 향해 천천히 함께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