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그늘 아래 쓸쓸한 미소

남양주 덕혜옹주 묘소 가는 길의 산책이야기.

by 구현

홍유릉 둘레길을 찾았다. 홍유릉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둘레길만으로도 충분했고, 둘레길이 목적지였다.


주차장에서 얼마 걷지 않아 안내판이 보였다. 둘레길이 덕혜옹주 묘소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소설로 영화로 유명해진 이름이었지만, 여기서 그 이름을 마주할 줄은 몰랐다.


둘레길은 나무 그늘이 짙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고, 길바닥은 모래가 비에 쓸려 굵은 자갈이 드러나 있었다. 걸음이 불편한 사람은 조심해야 할 길이었다.


홍유릉을 가로막은 높은 담장이 둘레길을 따라 을씨년스럽게 이어졌다. 나무 그늘 짙은 숲길에 색 바랜 담장이 어울리지 않았지만, 담장 위로 작은 풀들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있었다.


담장을 지나자 여러 역사적 인물들의 묘소가 이어졌다. 무료관람이란 팻말이 눈에 띄었다. 굳이 들어갈 생각도 없었지만, 유료인 홍유릉과 비교되는 글귀였다.


둘레길의 끝자락에 덕혜옹주가 잠들어 있었다. 안내판에 덕혜옹주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의 딸. 일본으로 끌려가 불행한 삶을 산 여인.


짙은 나무 그늘 아래, 덕혜옹주의 어린 시절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앳된 얼굴에 작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그 미소가 쓸쓸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미소.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알지 못하던 때의 미소. 사진 속 아이는 그저 웃고 있을 뿐인데, 그 뒤에 올 삶을 생각하니 그 미소가 더 애잔해 보였다.


나무 그늘이 깊었다. 새소리만 들렸다. 역사는 이렇게 숲 속에 조용히 묻혀 있었다.


유료와 무료를 나누는 경계를 걸어 둘레길을 내려왔다.


덕혜옹주의 작은 미소가 자꾸 떠올랐다. 나무 그늘 아래 그 쓸쓸한 미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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