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2화

by 구현

어머니 옷에는 늘 희미한 락스 냄새가 났다. 이른 새벽 출근한 어머니는 오전 내내 빌딩 복도를 닦고 화장실을 청소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상가 건물 청소일까지 이어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요리에 소질을 보이고 스스로 조리고등학교를 알아본 것을 대견해했다. 아들만큼은 남 밑에서만 일하는 삶을 살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저녁까지 일하며 적금을 들었다.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그는 영등포역에서 대전행 열차에 올랐다. 훈련소를 거쳐 군단 취사장에 배치되었다.


취사장은 그가 알던 주방이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대형 솥의 증기, 지글거리는 기름 냄새, 수백 인분의 식재료를 손질하는 칼소리, 끼니때마다 몰려드는 군홧발 소리. 수백 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일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 막중한 임무였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압박감 속에서, 그는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미약했는지 깨달았다. 조리의 기본부터 다시 몸으로 배워나가야 했다.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기술이 몸에 배었다. 매일 새벽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쉬는 날 없이 돌아가는 취사장에서 그는 인내심과 책임감을 키워나갔다. 군대 식단은 단조로웠지만, 주어진 재료 안에서 맛을 끌어내는 일에 익숙했던 그는 점차 인정받는 조리병이 되었다. 아버지가 말했던 것처럼, 불필요한 말없이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임무에 충실했다.


전역 후, 그는 한식당을 중심으로 이력서를 돌렸지만 대부분 경력자를 원했다. 취사병 경력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며칠째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던 어느 날, 낯익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취사장 선임이었다. 그보다 일 년 먼저 전역한 선임은 홍대 근처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주방에서 근무 중이라고 했다. 일손이 부족하니 한번 와보지 않겠냐고 했다. 파스타를 만들어본 적 없다고 하자, 선임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요리사라면 한식만 고집할 게 아니라고.


선임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더 많은 걸 배워야 했다.


며칠 후, 그는 선임이 일하는 레스토랑 앞에 섰다. 창문 너머로 오픈 키친이 보였다. 손님들이 줄을 서는 곳이었다.


사장은 선임의 추천과 그의 눈빛에서 진심을 보고 그를 고용했다. 처음 몇 달은 홀 서빙과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주방 보조로 올라간 뒤에도 채소 손질과 재료 정리가 주된 일이었다.


파스타를 처음 삶았을 때, 그는 당황했다. 한식처럼 푹 익히면 안 됐다. 선임이 건네준 면을 씹었을 때, 중심에 남은 미세한 식감을 이해했다. 알덴테. 한식의 눈대중과 손맛이 통하지 않는 세계였다. 정확한 온도, 정확한 시간, 정확한 비율. 모든 것이 측정되고 기록되어야 했다.


그날 밤부터 그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 이탈리아 요리사들의 영상을 멈추고 되돌리며 손놀림을 익혔다. 주방에서는 선배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훔쳤다. 파스타 면의 탄력, 리소토의 농도, 소스의 유화. 낯선 언어를 배우듯 하나씩 몸에 새겨나갔다.


주방장이 그에게 애피타이저 스테이션을 맡긴 것은 2년 차였다. 그를 데려온 선임은 그즈음 다른 레스토랑의 수셰프 제안을 받고 떠났다. 떠나는 선임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잘하고 있어. 계속 배워야 해."


5년 차가 되자 그는 부주방장이 되었다. 주방장이 휴가를 갈 때면 주방 전체를 책임졌고, 후배들과 함께 스태프를 이끌었다. 8년 차에 메뉴 개발 회의에 참여했을 때, 그는 된장을 베이스로 한 리소토를 제안했다. 한식의 감칠맛과 이탈리안의 기법이 만난 그 메뉴는 레스토랑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10년 차, 그는 수셰프가 되어 있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하나둘 자리를 비웠다. 결혼을 앞둔 부주방장은 고향에 작은 식당을 차렸고, 파티시에를 꿈꾸던 후배는 프랑스로 떠났다. 주방장에게 인정받던 선배는 강남의 호텔 레스토랑으로 스카우트되었다. 더 좋은 조건의 제안이 그에게도 여러 번 왔지만, 그는 다른 계획을 품고 있었다.


틈만 나면 홍대 일대, 그가 10년을 보낸 마포구를 걸으며 상권을 살폈다. 어느 골목이 뜨고 있는지, 어떤 자리에 공실이 생기는지. 쉬는 날이면 다른 동네 맛집을 찾아다니며 맛을 연구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언제쯤 가게를 낼 수 있을지 가늠했다.


부모님은 그에게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니라고 했지만, 그는 내 가게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청춘은 오직 요리와 주방에만 머물렀다.


퇴근을 준비하던 어느 날, 주방장이 그를 불렀다. 레스토랑을 정리하고 강남에 자신의 가게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주방장은 잠시 눈빛을 마주치며 말했다.


"언제든지 마음 있으면 연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