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시간까지 근무시간이 연장되었다. 구내식당에서 외부 손님도 받기로 결정하면서 일이 많아졌다.
그날 퇴근길, 24시간 해장국집에 들렀다. 혹시라도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국밥집을 나와 한참을 서 있었다. 전철역으로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힐끗힐끗 살폈다.
구내식당에서 시간제가 아닌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의 실력이 입소문 나면서 손님도 늘었다. 재료를 손질하고 육수를 끓이고 밥을 짓는 모든 과정에 신경을 집중했다. 밥이 완성될 때마다 김이 피어올랐고, 그는 평화로운 거리를 생각했다. 이제 집회 현장이 아닌 거리에서 그녀와 마주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대통령이 파면되고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었다. 서로를 향한 비난과 혐오가 난무하는 거친 언어로 날이 갈수록 잔인하게 상대를 공격했다.
정치인들의 날 선 언쟁이 도를 넘을 때마다 그는 답답함을 느꼈다. 좁은 땅에 모여 사는 우리 민족이 왜 이토록 서로를 혐오하며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주말, 그가 차린 저녁상에서 아버지의 한숨이 이어졌다.
"세상은 하나도 바뀐 게 없다."
아버지가 술잔을 기울이며 읊조린 한 마디였다. 그는 아버지의 구부정한 어깨를 바라보았다.
"더 힘들어졌다. 요샌 그나마 띄엄띄엄 있던 허드렛일도 없다."
일흔을 훌쩍 넘긴 아버지가 하는 일 걱정에 그의 어깨는 천근만근이 되었다. 아버지의 짐을 덜어주기는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그는 일에 집중했다.
구내식당 가성비 위주의 재료를 보며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들고 온 못난이 식재료로 저녁상을 차리는 그날들이 선명히 기억났다. 자신이 만든 음식에 미소 짓는 아버지의 얼굴이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그동안 쌓아온 레시피를 펼치기 시작했다. 가성비 위주의 식재료가 그의 손길이 닿자 진정한 요리가 되었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요리는 그대로 실현되었다. 손님들의 지친 표정에 작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일요일 오후, 집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그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때 네 식당에서 먹었던, 추어탕...."
"아! 아버지, 추어탕리소토요."
"그래, 그게 가끔 생각나는구나."
단 한 번도 뭘 먹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는 아버지였다. 그는 아버지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시장으로 갔다.
그는 사들고 온 미꾸라지를 손질하며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가 말한 그 상식에 대해 그는 요즘 들어 더 깊이 고민하고 있다. 그는 그 순간 다짐했다. 나이 든 부모님이 여전히 감당하려는 삶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 지금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상식적인 일이라고.
그리고 하나 더, 언젠가 그녀 앞에 내어줄 그 밥을 완성하기 위해 분주한 주방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