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무더운 여름을 기억하며 그는 집에 에어컨을 달았다. 괜한데 돈 쓴다며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여름 내내 거실에서 지내셨다.
부모님은 일을 모두 그만두셨다. 일흔 중반의 나이에 맞이한 은퇴였다. 연금과 그가 드리는 용돈으로 두 분은 그렇게 결정을 하셨다.
자주 산책을 다니시는 부모님을 보며, 그는 광복 80주년 전야제를 예약했다. 운 좋게 당첨이 되었다.
그는 퇴근 후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광복 80주년 전야제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리는데. 같이 가실래요? "
아버지는 낯선 제안에 어색해했지만, 어머니의 "그래, 오랜만에 바람 좀 쐬러 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광복 80주년 전야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은 축제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무대에선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고,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를 보며 그의 부모님은 웃었다. 두 분의 얼굴에 어린아이 같은 미소가 피어나는 것을 보며, 그의 마음속 깊이 자리했던 무거운 돌덩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는 부모님의 밝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평화로운 일상.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껴졌다.
행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부모님을 모시고 행사장을 나가던 길이었다. 출구로 향하는 인파 속에서 누군가 그에게 다가왔다.
"어? 혹시..."
돌아보니 그녀였다.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맞죠? 셰프님."
그는 순간 멈칫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네, 맞습니다."
"세상 참 좁네요."
그녀는 그의 옆 부모님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 부모님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제가 아는 분이에요. 잠깐만 이야기하고 올게요."
부모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부모님이랑 오셨네요. 좋으시겠다."
"네. 오랜만에 모시고 나왔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 그때 하신 말씀 기억하세요?"
"뭐요?"
"제가 지은 밥... 먹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당연히 기억하죠."
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미소 지었다.
"그 약속, 아직 유효한가요?"
"물론입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냈다.
번호를 주고받는 짧은 순간, 국회의사당 위로 마지막 불꽃이 터졌다.
"셰프님, 기대할게요."
그녀는 그의 부모님께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 친구들에게로 돌아갔다. 작게 손을 흔들며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그의 팔을 가만히 잡으며 말했다.
"우리 아들, 이제야 마음 편하게 웃는구나."
그는 주머니 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말, 그녀에게 차려줄 밥상을 생각했다.
어떤 재료를 쓸지, 어떤 맛을 낼지. 그의 상식이 담긴, 정성이 담긴 한 끼.
작년 겨울 그녀를 만난 거리에서, 여름밤의 바람이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