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by 구현

1.


칼날이 도마를 두드릴 때, 세상이 제자리를 찾는다. 활활 타오르는 불 앞에서 칼은 현란하게 춤을 추고, 바다와 하늘과 땅의 재료들이 열기 속에서 새로운 맛으로 태어난다. 주방에서만큼은 마음이 평온했다. 칼날이 파를 썰어내는 소리, 된장이 끓는 냄새,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초등학교 4학년 늦가을,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그의 아스라한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새벽마다 영등포 청과시장으로 향하시던 구부정한 뒷모습, 악착같이 삶을 버텨내던 그 모습이 어린 그의 눈에도 무거운 현실로 다가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의 집은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색을 잃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매일 저녁 밥상에 술병을 올렸다. 말없이 비워지는 술잔을 보며 그는 아버지 마음속 할머니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짐작했다. 술기운이 오르면, 아버지는 무언가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 말들은 술의 쓴맛처럼 어린 그의 귀에 스며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할머니를 따라다니던 영등포 청과시장 근처에서 여전히 막노동꾼으로 살았다. 할머니에게서 배운 가족을 부양하는 일은 아버지 삶의 전부이자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기도 했다. 늦게 얻은 아들인 그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였다. 비가 오고 추운 날이면 아버지 주머니는 텅 비었고, 집안에는 아버지의 한숨이 깊어졌다. 어머니는 맞벌이로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새벽바람에 집을 나서 큰 빌딩 청소부가 되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그의 눈에 텅 빈 주방은 너무도 허전한 공간으로 비쳤다.


그 허전함을 채우듯,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부터 그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끓여주던 된장찌개 맛을 냈고, 맛깔스러운 김치전을 아버지의 저녁 안주로 식탁에 올렸다. 요리에 타고 난 감각 덕분인지, 그의 손길은 처음부터 그렇게 서툴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느 날 그의 요리를 한 입 먹고는 국자를 든 채 한참을 말이 없었다.


"우리 아들이 엄마보다 훨씬 낫네."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버지는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핀잔을 주면서도 맛깔스러운 안주에 소주 한 병을 금세 비웠다. 할머니가 억척스럽게 벌어서 사들인 작은 주택의 부엌은 그의 손길 아래 반들거리는 그만의 공간이 되어갔다.


아버지는 고된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올 때면 늘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그 속에는 청과시장에서 상품가치를 잃어 버려지는 과일이나 채소가 들어있었다. 검게 멍든 사과, 시든 무청이나 으깨진 감자 따위였다. 또래 아이들이 새로운 게임이나 과외 학원에 열을 올릴 때, 그는 버려진 존재들을 마치 퍼즐처럼 바라봤다.


짓무른 부분을 도려내고, 시든 잎은 찬물에 담가 생기를 찾아주었다. 폐기될 운명이었던 것들이 그의 손을 거쳐 새로운 요리로 변하는 과정을 통해, 단순한 흥미를 넘어선 깊은 성취감을 느꼈다. 그렇게 다양한 재료들을 다루며 그는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요리의 세상으로 발을 들였다.


할머니가 그랬듯, 부모님이 그랬듯, 묵묵히 주어진 생활을 살아가는 것이 그의 성격이 되어갔다. 오로지 자신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몰두했다. 집에서 거리가 있어도 조리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한 뒤에는 조리사 자격증을 앞세워 조리병으로 군에 입대하는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냈다. 그의 요리에 대한 열정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삶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입대를 며칠 앞둔 저녁이었다. 언제나처럼, 저녁상에 맛깔스러운 오징어무침과 부추전을 차린 아들을 아버지는 안쓰럽게 바라봤다. 처음으로 소주잔을 건네는 아버지의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요새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항상 조심하고 조심해라. 그 취사장 일이란 게 많이 힘들 거다."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주름살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쉰 중반의 아버지는 늦둥이 외아들의 입대가 원망스러운 듯 무거운 한숨을 내뱉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너무 무리해서 일하지 마시고요."


"어디 가든 말조심해야 한다."


아버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할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인데."


빈 술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네 할아버지는 지리산 자락 마을에서 양반이셨지. 토지도 많고 권세를 누리며 살았어. 그런데 전쟁이 터지고, 빨치산 때문에 산간 마을마다 피바람이 불었지. 빨갱이를 색출한다며 집마다 들이닥쳤어."


그는 아버지 술잔에 술을 채웠다. 아버지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비웠다.


"할아버지도 좌익과 연결되어 있다는 혐의를 받았는지, 어느 날 새벽에 끌려가셨어. 총소리가 들렸고,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으셨지. 그때, 네 할머니는 배 속에 나를 품은 채, 살기 위해 고향을 등지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도망쳤어. 기차 칸 구석에 몸을 숨기고 무작정 도착한 곳이 영등포역이었지."


아버지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붉어진 눈가를 보며, 그는 늙은 아버지의 어깨가 너무 작게 느껴졌다. 허리가 휜 할머니의 작은 체구가 눈에 아른거렸다.


"네 할머니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쳤다. 아들에게, 집 하나는 장만해 주겠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장에서 좌판을 열고 온갖 허드렛일까지 마다하지 않고 이 집을 사셨다. 그렇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에 눈물로 살다 가셨다. 고향에는 무서워서 가볼 엄두를 내지 못하면서도 밤마다 고향 생각에 몸서리를 치셨어. 명심해라. 어디를 가든 입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그냥 조용히 살다 가는 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는 아버지 앞에 놓인 빈 술잔만 바라봤다.


2.


어머니 옷에는 늘 희미한 락스 냄새가 났다. 이른 새벽 출근한 어머니는 오전 내내 빌딩 복도를 닦고 화장실을 청소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상가 건물 청소일까지 이어갔다. 어머니는 아들이 요리에 소질을 보이고 스스로 조리고등학교를 알아본 것을 대견해했다. 아들만큼은 남 밑에서만 일하는 삶을 살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저녁까지 일하며 적금을 들었다.


부모님의 배웅을 받으며 그는 영등포역에서 대전행 열차에 올랐다. 훈련소를 거쳐 군단 취사장에 배치되었다.


취사장은 그가 알던 주방이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대형 솥의 증기, 지글거리는 기름 냄새, 수백 인분의 식재료를 손질하는 칼소리, 끼니때마다 몰려드는 군홧발 소리. 수백 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일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 막중한 임무였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압박감 속에서, 그는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미약했는지 깨달았다. 조리의 기본부터 다시 몸으로 배워나가야 했다.


반복되는 작업 속에서 기술이 몸에 배었다. 매일 새벽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쉬는 날 없이 돌아가는 취사장에서 그는 인내심과 책임감을 키워나갔다. 군대 식단은 단조로웠지만, 주어진 재료 안에서 맛을 끌어내는 일에 익숙했던 그는 점차 인정받는 조리병이 되었다. 아버지가 말했던 것처럼, 불필요한 말없이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임무에 충실했다.


전역 후, 그는 한식당을 중심으로 이력서를 돌렸지만 대부분 경력자를 원했다. 취사병 경력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며칠째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던 어느 날, 낯익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취사장 선임이었다. 그보다 일 년 먼저 전역한 선임은 홍대 근처의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주방에서 근무 중이라고 했다. 일손이 부족하니 한번 와보지 않겠냐고 했다. 파스타를 만들어본 적 없다고 하자, 선임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요리사라면 한식만 고집할 게 아니라고.


선임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더 많은 걸 배워야 했다.


며칠 후, 그는 선임이 일하는 레스토랑 앞에 섰다. 창문 너머로 오픈 키친이 보였다. 손님들이 줄을 서는 곳이었다.


사장은 선임의 추천과 그의 눈빛에서 진심을 보고 그를 고용했다. 처음 몇 달은 홀 서빙과 설거지부터 시작했다. 주방 보조로 올라간 뒤에도 채소 손질과 재료 정리가 주된 일이었다.


파스타를 처음 삶았을 때, 그는 당황했다. 한식처럼 푹 익히면 안 됐다. 선임이 건네준 면을 씹었을 때, 중심에 남은 미세한 식감을 이해했다. 알덴테. 한식의 눈대중과 손맛이 통하지 않는 세계였다. 정확한 온도, 정확한 시간, 정확한 비율. 모든 것이 측정되고 기록되어야 했다.


그날 밤부터 그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 이탈리아 요리사들의 영상을 멈추고 되돌리며 손놀림을 익혔다. 주방에서는 선배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훔쳤다. 파스타 면의 탄력, 리소토의 농도, 소스의 유화. 낯선 언어를 배우듯 하나씩 몸에 새겨나갔다.


주방장이 그에게 애피타이저 스테이션을 맡긴 것은 2년 차였다. 그를 데려온 선임은 그즈음 다른 레스토랑의 수셰프 제안을 받고 떠났다. 떠나는 선임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잘하고 있어. 계속 배워야 해."


5년 차가 되자 그는 부주방장이 되었다. 주방장이 휴가를 갈 때면 주방 전체를 책임졌고, 후배들과 함께 스태프를 이끌었다. 8년 차에 메뉴 개발 회의에 참여했을 때, 그는 된장을 베이스로 한 리소토를 제안했다. 한식의 감칠맛과 이탈리안의 기법이 만난 그 메뉴는 레스토랑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10년 차, 그는 수셰프가 되어 있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하나둘 자리를 비웠다. 결혼을 앞둔 부주방장은 고향에 작은 식당을 차렸고, 파티시에를 꿈꾸던 후배는 프랑스로 떠났다. 주방장에게 인정받던 선배는 강남의 호텔 레스토랑으로 스카우트되었다. 더 좋은 조건의 제안이 그에게도 여러 번 왔지만, 그는 다른 계획을 품고 있었다.


틈만 나면 홍대 일대, 그가 10년을 보낸 마포구를 걸으며 상권을 살폈다. 어느 골목이 뜨고 있는지, 어떤 자리에 공실이 생기는지. 쉬는 날이면 다른 동네 맛집을 찾아다니며 맛을 연구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언제쯤 가게를 낼 수 있을지 가늠했다.


부모님은 그에게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니라고 했지만, 그는 내 가게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청춘은 오직 요리와 주방에만 머물렀다.


퇴근을 준비하던 어느 날, 주방장이 그를 불렀다. 레스토랑을 정리하고 강남에 자신의 가게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주방장은 잠시 눈빛을 마주치며 말했다.


"언제든지 마음 있으면 연락해."


3.


2020년 초,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다.


활기 넘치던 홍대 거리는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식당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포는 생각보다 길고 깊었다. 매일 한숨만 쉬던 사장은 결국 그를 불렀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퇴직금은 꼭 챙겨주겠네."


사장의 눈가에 주름이 깊었다.


정든 원룸을 나와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텅 비었던 작은 방이 그를 받아들였다. 어린 시절을 보냈던 부엌에서 부모님의 식사를 준비했다. 부모님은 여전히 새벽 일터로 나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마포 일대를 걸었다. 공실이 생긴 자리를 확인하고, 임대료를 물었다. 운전면허도 땄다. 재료를 직접 사러 다니려면 필요했다.


2년이 흘렀다. 거리에 사람들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마포에 작은 가게를 얻었다. 코로나 여파로 보증금과 월세는 낮았고, 권리금도 없었다. 오랫동안 구상했던 대로 가게를 꾸몄다. 벽지의 색부터 테이블 배치, 조명 하나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혼자 차린 가게였다.


개업일, 부모님이 왔다. 어머니는 주방을 둘러보다가 한참을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봤다.


"추어탕......"


아버지가 메뉴 이름을 읽었다. 시그니처 메뉴였다. 된장의 구수함과 크림의 부드러움이 만나는, 이탈리안 기법으로 재해석한 요리였다.


서빙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고, 주방은 당분간 혼자서 감당하기로 했다. 매일 새벽 가락시장으로 식재료를 사러 갔다. 신선한 재료를 고르는 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손님이 조금씩 늘었다. 추어탕 리소토를 먹은 사람들은 숟가락을 잠시 멈췄다가, 이내 그릇을 비었다.


몇 달이 지났다. 주말이면 웨이팅이 생겼다. 혼자서는 버거워 주방 보조 한 명을 더 구했다. 통장 잔고가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


가게가 자리를 잡아갈 때쯤, 건물주가 찾아왔다. 건물을 팔겠다고 했다.


그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의 모든 신경은 오로지 식당 일에만 집중되었다.


새 건물주가 나타났다. 계약 갱신 조건으로 보증금과 월세를 두 배로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코로나 때 헐값으로 책정을 한 거야. 원래 이 자리는 그 정도는 받아야지."


통장은 바닥이 났고 그는 장사에 더욱 몰입했다. 손님은 계속 늘었고, 저녁이면 식당 앞에 줄이 섰다.



가게 쉬는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결혼 이야기였다.


"여태 사귀는 사람도 없으면 어떡하니."


"집값이 너무 비싸요."


그는 엉뚱한 대답을 하며 말을 흐렸다.


"전세방이라도 하나 얻어두면 되지."


어머니는 적금 통장을 꺼내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네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모은 거야."


그는 가게 근처에 원룸을 알아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방 두 칸은 되어야 한다고 그를 설득했다. 어머니의 적금에 대출을 더해 식당 근처 신축 빌라에 전세를 얻었다.


이사하는 날, 어머니가 와서 방을 둘러보다가 창문 밖을 바라봤다.


"여기서 살림 차리면 되겠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세도 얻고, 가게도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잠시 회복세를 보이던 거리가 다시 조용해졌다. 식자재 가격이 치솟았다. 손님은 줄었다. 메뉴 가격을 올려야 했지만, 올리면 손님이 더 줄 것 같았다. 대출 이자와 월세가 매달 통장을 비웠다.


어느 저녁, 마지막 손님이 나간 후 그는 빈 식당에 혼자 앉아 있었다.


4.


좋은 식재료만 사용하겠다는 초심을 지키기 위해 새벽잠을 줄여가며 도매시장을 돌아다녔다. 한숨을 내쉬며 이곳저곳 가격을 알아보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버티고 있을 때였다. 바로 옆 비어 있던 자리에 한식 뷔페가 문을 열었다.


한식 뷔페 개업 첫날, 그는 가게 문을 열며 옆을 보았다. 7,000원 무한리필이라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줄을 선 사람들이 그의 가게 앞을 지나쳐 옆으로 들어갔다.


저녁 피크 타임. 예전 같으면 웨이팅이 있었을 시간에, 그의 가게는 텅 비어 있었다. 옆 가게에는 사람들이 쟁반에 음식을 가득 담아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맛으로 승부한다는 그의 철학이 무색했다.


15,000원짜리 파스타와 7,000원 무한리필. 손님들의 선택은 명확했다.


단골들도 하나둘 발길을 끊었다. 가게 매출은 믿기지 않을 만큼 곤두박질쳤다. 밤마다 잠 못 이루며 해법을 고민했다. 메뉴를 바꿔볼까. 가격을 낮춰볼까. 하지만 이미 월세는 두 배가 올랐고, 식자재 가격도 치솟았다. 가격을 낮추면 적자였다.


무거운 마음으로 직원들을 불렀다.


"미안합니다. 더는 월급을 드릴 수가 없어서..."


서빙 알바 대학생이 괜찮다며 웃었지만, 눈시울이 붉었다. 주방 보조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혼자 남은 주방은 너무 넓고 적막했다.


직원들을 보낸 지 한 달도 안 돼, 경매 개시 결정문이 날아왔다. 빌라 전체가 경매로 넘어갔다는 통보였다.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 전세사기.


손이 떨렸다. 어머니가 20년 동안 모은 적금과 대출금까지, 그의 손에서 증발해 버렸다.


그날 저녁, 부모님 집을 찾아갔다. 어머니는 그의 얼굴만 보고도 심상치 않은 기운을 알아챘다.


"무슨 일 있니?"


그는 고개를 숙였다. 한참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전세사기를 당했어요."


거실이 조용해졌다. 아버지가 한숨을 쉬며 돌아앉았다. 어머니는 한참을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내가... 내가 전세를 고집했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월세는 돈이 새는 거 같아서, 전세를 얻어두면 나중에 네 목돈이 될 거라고... 내가 그랬어. 엄마가 잘못했다."


"아니에요. 제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해서..."


"괜찮아. 네가 다친 게 아니면 다행이다. 돈은... 돈은 또 벌면 되는 거야."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에,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울었다.


빌라 사람들과 함께 법적 대응을 해봤지만, 법의 문턱은 너무 높았다. 깡통전세. 착실하고 성실히 살면 되는 줄만 알았는데, 세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같은 빌라에 사는 청년이 그의 식당으로 찾아왔다.


"건물주가 잡히긴 했는데, 배 째라고 나옵니다. 돈 없으니 감옥 가겠다고. 법은 우릴 보호 안 해줍니다. 우리가 최후순위래요."


청년이 돌아간 후, 그는 혼자 남았다. 암담했다. 부모님 돈에 대출까지 받은 집에서 쫓겨나야 한다는 현실에 치를 떨었다.


그는 폐업을 결심했다.

월세도 대출 이자도 감당할 수 없었다.


폐업 전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주방에 섰다. 그는 남아 있는 재료를 꺼냈다. 자신을 위해 파스타를 만들었다. 면을 삶고, 마늘을 볶고, 소스를 만들었다. 익숙한 손놀림. 접시에 담긴 파스타를 보며, 그는 처음으로 자문했다. 요리가 뭐였을까? 꿈이었을까, 삶이었을까. 이제는 잘 모르겠다.


한 입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맛있었다. 그래서 더 슬펐다.


늦은 밤, 식당 불을 끄고 소주를 마셨다. 의자에서 넘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돌처럼 뭉쳐진 심장이 울분을 토하자 그는 가슴을 치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긴 식당 기물들은 kg당 몇백 원의 고물값으로 처리되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억대의 대출금뿐이었다.


5.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가기는 싫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일흔넷의 아버지는 여전히 새벽같이 영등포 시장으로 나갔고, 어머니는 빌딩 청소 일을 계속했다. 그런 부모님을 보면서 실의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전반적인 경기가 너무 나빠서 취직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방송에도, 유튜브에도 유명한 요리사들은 온갖 예능과 홈쇼핑에서 활짝 웃고 있는데, 그는 갈 데가 없었다.


당장 돌아오는 대출이자라도 갚아야 했다. 요리사 자리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야간 택배 물류센터로 갔다. 미친 듯이 물건을 나르고, 낮에는 배달 앱을 켜고 틈만 나면 뛰어다니며 일을 했다. 힘들지만 돈이 된다는 말에 택배 대리점에 취직했다.


운전이 서툴러 고생했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적응해 나갔다. 부족한 운전 실력은 부지런한 발로 메우며, 끼니조차 잊은 채 뛰어다녔다. 운전도 점점 익숙해졌다.


곧 눈이라도 내릴 듯 우중충한 날이었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우회전하려 서행하는데, 갑자기 아이가 뛰어들었다. 차는 멈추었지만, 아이는 제풀에 넘어지면서 트럭 앞 범퍼에 이마를 부딪혔다. 아이를 쫓아오던 엄마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자 사람들이 삽시간에 모여들었다. 119구급차가 도착했고, 그는 곧바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신호를 지켰고 좌우를 살피며 서행하다 멈추었음에도, 경찰은 그를 가해자로 규정했다. 간절한 심정으로 상황을 설명해도 경찰은 벌점과 범칙금을 부과했다.


안전운전 의무 위반.


아이가 크게 다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손이 떨려 더는 일을 할 수가 없었다.


회사로 돌아갔다. 차에 남은 택배 물건을 확인한 사장은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붓더니 손가락질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


그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그는 어두운 거리를 걸었다. 택배 기사 일을 그토록 말리며 걱정했던 어머니의 전화가 계속 걸려왔지만 받을 수가 없었다. 머릿속 생각들이 검은 실타래처럼 엉켜 숨을 조였다.


어느새 서강대교를 걷고 있었다. 차가운 강바람이 불어왔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모든 게 끝난 것 같았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저녁은?' 어머니의 문자였다.


그 순간, 차갑게 굳어있던 그의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 짧은 문자가 모든 절망의 무게를 뚫고 들어와 그를 흔들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세찬 강바람 속에서도 그의 눈물은 식을 줄 몰랐다.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들자, 주변이 이상할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조금 전까지 한적했던 다리 위로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다급한 발걸음으로 그를 스치며 지나갔다.


'이 늦은 시간에, 다들 어디를 가는 거지?'


의아한 생각에 지나는 사람들을 피해 다리 난간으로 바싹 붙었다. 그때, 짙은 어둠 속에서 헬기 굉음이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여의도 상공으로 시커먼 헬기들이 거대한 새떼처럼 줄지어 날고 있었다.


사람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헬기를 가리키더니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비상계엄이라니, 설마 했는데..."

"아이고, 먹고살기도 힘든데 이게 무슨 난리야."


사람들이 주고받는 다급한 소리에 그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상계엄? 전쟁이라도 일어난 건가?'


몸이 오싹했다. 헬기들이 줄지어 여의도로 날아가는 이유를 짐작했다. 국회의사당.


정신없이 사람들을 따라 뛰었다. 어느새 국회의사당 앞 도로에 도착했다. 시민과 경찰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명과 뒤섞인 애타는 함성이 들려왔다.


6.


"비상계엄을 해제하라!"


국회의사당 앞의 거센 함성에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그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

화면은 온통 속보로 가득 차 있었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동시에 싸늘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문득,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할아버지 이야기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지리산 자락, 동네 사람끼리 적이 되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그 시대.

할아버지가 총성에 쓰러져간 그날 밤.

임신한 할머니가 홀로 영등포까지 도망쳐야 했던 그날들.


그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눈앞에서 다시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그는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국회의사당 앞 큰 도로는 어디선가 몰려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밀려드는 군중 속에 어느새 그도 파묻혔다.


난생처음 겪는, 강력하고 놀라운 기운이었다.

길이 막히고 도로는 거대한 광장이 되었다.


'군인이 시민에게 총을 쏘는 일이 또다시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불길한 예감이 스쳤지만, 점점 몰려드는 사람들로 광장은 끝없이 넓어졌다.

이들은 누구인가.

평범한 사람들로 보였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음성이 귓가를 맴돌았다.


"명심해라. 어디를 가든, 입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그냥 조용히 살다가 가는 게,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의 삶을 지배했던 그 조용한 목소리.

그렇지만 그의 가슴은 격하게 뛰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당당한 모습과 목소리가 그의 몸속 깊은 곳을 깨웠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함성이 승리의 포효처럼 거세게 울려 퍼졌다.

군인들은 국회의사당을 빠져나와 조용히 사라져갔다.


그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머릿속을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할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평생을 말없이 짐을 나르던 아버지.

빌딩 청소를 하던 어머니의 락스 냄새. 사라진 전세보증금. 날아간 꿈.


입을 다물고 살라고 했다. 조용히 살다 가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이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외치고 있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할아버지가 할 수 없었던 말. 아버지가 삼켜야 했던 말. 그가 가슴에 묻어두어야 했던 말.


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터져나왔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달라!"


그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돌려달라! 돌려달라!"


그는 어느 순간 울부짖고 있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달라!"


광장은 그의 목소리를 삼키지 않았다. 수많은 함성 속에서, 그의 외침도 함께 울려 퍼졌다.


7.


그때, 누군가 그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돌려 자신을 잡아당기는 사람을 바라봤다. 그의 심장이 다시 한번 쿵 내려앉았다.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편안한 표정으로 그를 달래듯 인파 속에서 끌어당겼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깊은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그를 건져 올리려는 듯 따뜻하고 단호했다.


여자를 따라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인파의 함성이 희미해지는 골목길에 접어들자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전세 사기당하셨어요?"


그녀의 질문에 그는 울먹이는 숨소리를 억누르려 애썼다. 그제야 자신의 모습이 엉망인 것을 깨닫고는 소매로 얼굴을 잽싸게 훔쳤다. 그렇다고 벌건 낯빛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아까 정말 민망하면서도 가슴이 아팠어요. 여기서 전세 보증금 돌려달라고 외치다니."


그는 훌쩍이다 재채기를 하고 말았다. 민망함에 입술이 떨려왔다.


"그, 그게…" 그는 한숨을 내쉬며 힘겹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아니죠. 사실, 저도 전세 사기를 당했었거든요. 세상에 나 혼자 버림받은 바보 된 기분, 제가 잘 알죠.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도 했었어요."


"그랬군요. 혹시, 돈은 돌려받았나요?"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나오기는 했는데, 별 도움은 되지 않았어요."


"그런 법도 있습니까?"


"법꾸라지라는 말, 들어봤어요?"


"법, 법꾸라지요?" 그는 되물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미꾸라지처럼 법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거죠. 나같이 멍청한 사람 등쳐먹는 건 일도 아니더라고요."


"너무 억울합니다." 그는 다시 울컥했다.


"법꾸라지는 양심이란 장기가 없어요. 이젠 의심부터 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믿을 사람이 있나요? 대통령도 멀쩡한 나라에 비상계엄을 하는데."


비슷한 아픔을 가진 상대방의 목소리가 그를 위로하듯 감싸 안았다. 뜻밖에도 정신은 더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혼자 끙끙 앓던 고통이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자, 묘한 위로가 밀려왔다.


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배 안 고파요? 저... 제가 전세 사기 당했을 때, 누군가 밥 한 끼 사줬거든요. 그때 그게 정말 큰 위로였어요."


하루 종일 굶은 그의 눈빛을 안다는 듯, 그녀는 머뭇거리는 그를 데리고 곧장 다음 블록으로 갔다.


환하게 켜진 콩나물 해장국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저는 이 근처에 살아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세 보증금 다 날리고 친구 오피스텔에 얹혀사는 신세가 됐죠. 안 그래도 마음이 뒤숭숭한데 뉴스 속보를 보고 열받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잖아요. 친구는 이불 뒤집어쓰고 벌벌 떨고 있길래 혼자 나온 거예요."


따뜻한 국물에 그의 몸과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길을 되짚었다.

폐업, 전세 사기, 교통사고. 해고.

서강대교 위에서 어머니의 문자를 보고 오열한 그 순간이 또렷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살아있었다.


식당을 나와서 여전히 말 한마디 없던 그에게 여자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힘내세요. 그냥 죽으란 법은 없잖아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냥 죽으란 법은 없잖아요."


그의 가슴 깊은 곳에서 얼어붙었던 무언가가 스르륵 녹아내리는 듯했다.

삶에 대한 절망 대신, 살아내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희미한 불씨가 피어올랐다.


8.


차가운 새벽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밤새 걱정하셨을 부모님 생각이 났다. 많이 늦었다.


집으로 다가갈수록 마음은 무거웠지만,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 주변을 맴돌았다. 가로등 아래 색 바랜 시멘트 벽에 붙은 구인광고가 보였다. 영등포 역 근처 빌딩 구내식당에서 조리사를 구하고 있었다. 그는 홀린 듯 휴대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저장했다.


"집에 가자. 그냥 죽으란 법은 없다고 했잖아."


집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어머니는 이미 일을 나갔고, 낡은 작업복의 아버지는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방금 대통령이 계엄 해제했다. 어서 자라."


아버지는 아들이 들어온 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전세 사기를 당한 후, 처음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정오의 햇살이 창문을 넘어올 때 눈이 떠졌다. 몸은 무거웠지만 아주 작은 안도감이 마음 한구석에 내려앉았다.


오전 일을 마치고 집에 온 어머니가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잠든 아들을 깨우지 않았다. 된장찌개 냄새에 그는 방문을 열고 나왔다.


상 위에는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밥과 맛깔스러운 반찬들이 놓여 있었다. 어젯밤 연락도 없이 외박을 한 그에게 어머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아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고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이는 밥상을 차릴 뿐이었다.


밥알 하나하나, 국물 한 숟가락마다 스며든 어머니의 마음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저장해둔 구내식당에 전화했다. 인사 담당자는 이력서 가지고 찾아오라고 했다.


그는 말끔히 씻고 면도를 했다. 어색하지만 정장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어쩐지 발걸음이 가벼웠다.


구내식당 담당자는 그의 이력서를 꼼꼼히 살폈다.


"조리고등학교에 홍대에서 10년... 자기 가게도 운영하셨네요?"


"네. 2년 했습니다."


"왜 그만두셨어요?"


그는 잠시 망설이다 솔직하게 말했다.


"경기가 안 좋아서... 폐업했습니다."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듯.


"경력을 인정해서 시급을 더 드리겠습니다. 준비할 서류가 많은 것 아시죠. 서류 준비되는 대로 출근하시는 걸로 하죠.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시급제로 우선 시작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담당자는 필요한 서류를 알려주며 찾아와 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구내식당 일은 예전 군대에서 취사병으로 일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매일 아침 들어오는 식자재를 손질하고, 점심 메뉴를 조리했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주방 청소를 하고 제시간에 퇴근했다.


몸은 고되지만 규칙적인 생활과 손에 잡히는 일이 주는 안정감은 그에게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구내식당 벽에 걸린 커다란 TV에서는 하루 종일 뉴스가 흘러나왔다. 비상계엄을 둘러싼 국회의사당 주변 화면을 볼 때마다, 자신의 팔을 잡아당겼던 그녀가 떠올랐다.


자신에게 밥을 사준 그녀의 위로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생생하게 곁에 머물렀다.


어느 날,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법꾸라지.


그녀가 말했던 그 단어가 떠올랐다. 미꾸라지처럼 법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하지만 며칠 뒤,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는 긴급 뉴스가 터져 나왔다. 구내식당 손님들도 뉴스를 보며 안도했지만, 한편으로는 또다시 혼란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9.


며칠 후, 대통령이 수사를 거부하면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같은 법을 두고 서로 다른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구내식당 손님들은 밥을 먹는 내내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무거운 표정이 깃들어 있었다.


대통령 관저가 있는 한남동의 집회 소식이 TV 화면에 계속 나왔다. 뉴스 앵커는 양측의 주장을 밤낮없이 전했고, 겨울은 점점 깊어갔다.


퇴근길, 한남동 집회를 비추는 뉴스 영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의도에서 느꼈던 그 강렬한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고 갈라진 목소리들.


집으로 가는 길, 하지만 마음은 자꾸 그곳을 향했다.


그녀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녀는 아마도 그곳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헤어진 것이 아쉬웠다. 혹시라도 그녀를 만날 수 있다면 밥을 사고 싶었다.


그는 전철역으로 갔다. 저녁 약속이 있다고 어머니에게 문자를 보내고 전철에 몸을 실었다.


한강진역에 내렸다. 2번 출구에서부터 사람들이 가득했다. 거대한 외침이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선명하게 둘로 나뉜 현장은 뉴스의 단편적인 영상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당황했다. 지난번 여의도에서 느꼈던 한마음 한뜻의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다 같이 외치던 하나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둘로 갈라져 서로에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탄핵 반대를, 다른 쪽에서는 체포를 외쳤다. 같은 거리에서 정반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헤맸다. 이방인처럼 멀찍이 떨어져 두 진영을 바라보았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날 밤, 그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두 갈래의 거대한 외침, 갈라진 거리의 풍경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할아버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좌익이니 우익이니, 그 극단적인 분열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할아버지. 그곳, 그 시대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사라져 간 수많은 사람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도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칼날 같은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역사적 트라우마로 고향 한 번 못 가보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아픔. 억울하게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아픔. 묵묵히 삶을 이어온 부모님의 아픔.


그 모든 것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한겨울 새벽 공기가 윗풍으로 새어 들어왔다. 그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긴 밤을 견뎠다.


10.


점점 극한 대치로 치닫는 한남동 집회 뉴스를 보던 그는 다시 현장에 가고 싶었다. 첫날,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되돌아온 것이 아쉬웠다.


며칠을 망설이다 그는 퇴근길 전철역으로 갔다. 그녀가 그 집회 현장에 있을 거라는 생각도 그를 이끌었다.


한강진역 2번 출구로 나왔다. 첫 번째 육교를 건너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포기하고 아래로 내려갔다. 좀 더 먼 육교까지 걸어가 건넜다.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 스피커의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노래와 함성과 구호가 어둑해지는 저녁 하늘을 가득 채웠다.


오가는 사람들로 혼잡한 보도를 천천히 올라갔다. 양쪽에서 서로 다른 구호를 외쳤지만, 그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집회 현장을 오갔다. 그의 눈은 그녀를 찾았다.


밤 10시까지만 있기로 마음먹고 집회 현장을 두루 돌아다녔다. 체포영장은 집행되지 않았고, 집회는 계속되었다.


익숙해진 발걸음으로 퇴근 후 집회 현장으로 향했고, 밤 10시가 되면 집으로 갔다.

눈이 펑펑 내려도, 날이 점점 추워지는데도, 집회 현장으로 사람들은 모였고, 그는 그곳으로 갔다.


최강 한파로 뼛속까지 추운 저녁이었다.

집회 현장 입구의 임시 천막에 그녀가 있었다. 두 손으로 종이컵을 감싸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잠시 멈칫하다 눈을 둥그렇게 뜨며 소리쳤다.


"어, 전세 사기!"


"아, 예."


그녀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며 쑥스럽게 웃었다.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그만, 너무 의외라 좀 오버했네요."


"아뇨, 괜찮습니다. 이렇게 기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까지는 그렇고, 이렇게 추운데 설마 집회 참가하러 오신 거예요?"


"그, 그게."


머뭇거리는 그를 그녀는 금세 눈치챘다.


"여기서는 전세 보증금 돌려달라고 외치면 안 돼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좀 숙였다.


"이제 다 잊고, 취직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잘됐네요."


"여기 자주 오시나요?"


"가끔. 야근하고 그러면 못 오고 그렇죠."


"오늘은 너무 춥습니다."


그녀는 뒤집어쓴 은박담요를 흔들며 말했다.


"이걸로도 추위를 막을 수가 없네요."


"날도 추운데, 제가 따뜻한 저녁을 사드리고 싶습니다."


"막 취직한 사람이 무슨 밥을 사요. 제가 살게요."


그녀는 그때처럼 망설임 없이 집회 현장을 빠져나와 육교로 올라갔다. 그는 매서운 바람에 몸을 웅크리면서도 뛰는 심장을 느끼며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11.


육교를 건너 골목 끝자락에 있는 24시간 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셀프 코너에서 깍두기를 한가득 담아왔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국물을 한 수저 맛봤다.


"완전 맛집이네요. 얼큰한 육수에 이런 감칠맛이라니."


"여기 유명해요. 지금 늦어서 그렇지, 웨이팅도 장난 아니에요. 여기서 60년을 이어오는 노포예요."


그는 식당을 찬찬히 둘러봤다. 창업주 할머니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해장국을 먹었다. 육수의 비법을 가늠해 보며 맛이 제대로 밴 선지를 기분 좋게 먹었다.


몸이 따뜻해지자, 그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 와서 많이 헷갈렸습니다. 둘로 나뉜 집회가 마치 분단된 나라처럼 느껴졌습니다."


"복잡하죠. 혼란스럽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되죠. 각자 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잖아요. 단지, 그런 만큼 빚이 쌓여가는 거죠. 나중에 우리가 다 갚아야 할 빚이요."


"상식, 빚이라고요?"


"전세 사기처럼 사기꾼이 작정하고 덤벼들면 어쩔 도리가 없지만, 그렇다고 계속 당할 수는 없잖아요. 지금 우리 국민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녀와 나누고 싶었다.


"저는 사실 식당을 했다가 망했습니다. 전세 사기까지 당하고 나니 세상이 저를 버린 기분이었습니다. 모든 게 원망스러웠습니다. 갑자기 월세를 올린 건물주, 바로 옆에 생긴 7천 원짜리 식당. 거기다 교통사고 가해자가 되어 해고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다 그날 여의도까지 가게 된 겁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 감정을 추스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말씀하셨죠. 그냥 죽으란 법은 없다고. 저는 그 말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갔습니다. 제가 감당해야 한다고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그게 법이니까요. 그제야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수저를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저도...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전세금 날리고 정말 바닥까지 떨어진 기분이었죠. 제가 그때 말했죠. 그 힘든 시기에 누군가 밥을 샀다고요. 그래서 당신한테 밥을 샀던 거예요. 그 기분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덕분에 그날 집으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요리사셨네요? 셰프!"


"네. 한식을 바탕으로 이탈리안 요리를 했습니다."


"다음에 직접 지은 밥을 먹어 보고 싶네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한 밥을요?"


"네, 산전수전 다 겪은 셰프의 요리가 기대되네요."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었다. 깊은 절망 속에서 헤매던 그에게 던져진 따뜻한 위로이자, 미래를 향한 소박하지만 분명한 약속 같았다.


그녀는 시계를 확인하며 일어날 준비를 했다.


"전철 타려면 서둘러야 해요. 좀 있으면 사람 엄청 많아요. 지금 가는 게 신상에 이로울 듯."


전철역으로 같이 걸었다. 그들은 갈아타는 역에서 헤어졌다.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전화번호도 나누지 않았지만, 동지이자 친구가 생긴 듯했다.


그는 그녀에게 해 줄 밥을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12.


저녁시간까지 근무시간이 연장되었다. 구내식당에서 외부 손님도 받기로 결정하면서 일이 많아졌다.


그날 퇴근길, 24시간 해장국집에 들렀다. 혹시라도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국밥집을 나와 한참을 서 있었다. 전철역으로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힐끗힐끗 살폈다.


구내식당에서 시간제가 아닌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의 실력이 입소문 나면서 손님도 늘었다. 재료를 손질하고 육수를 끓이고 밥을 짓는 모든 과정에 신경을 집중했다. 밥이 완성될 때마다 김이 피어올랐고, 그는 평화로운 거리를 생각했다. 이제 집회 현장이 아닌 거리에서 그녀와 마주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대통령이 파면되고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었다. 서로를 향한 비난과 혐오가 난무하는 거친 언어로 날이 갈수록 잔인하게 상대를 공격했다.


정치인들의 날 선 언쟁이 도를 넘을 때마다 그는 답답함을 느꼈다. 좁은 땅에 모여 사는 우리 민족이 왜 이토록 서로를 혐오하며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주말, 그가 차린 저녁상에서 아버지의 한숨이 이어졌다.


"세상은 하나도 바뀐 게 없다."


아버지가 술잔을 기울이며 읊조린 한 마디였다. 그는 아버지의 구부정한 어깨를 바라보았다.


"더 힘들어졌다. 요샌 그나마 띄엄띄엄 있던 허드렛일도 없다."


일흔을 훌쩍 넘긴 아버지가 하는 일 걱정에 그의 어깨는 천근만근이 되었다. 아버지의 짐을 덜어주기는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졌다.


그럴수록 그는 일에 집중했다.

구내식당 가성비 위주의 재료를 보며 그는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들고 온 못난이 식재료로 저녁상을 차리는 그날들이 선명히 기억났다. 자신이 만든 음식에 미소 짓는 아버지의 얼굴이 그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그동안 쌓아온 레시피를 펼치기 시작했다. 가성비 위주의 식재료가 그의 손길이 닿자 진정한 요리가 되었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요리는 그대로 실현되었다. 손님들의 지친 표정에 작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일요일 오후, 집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그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때 네 식당에서 먹었던, 추어탕...."


"아! 아버지, 추어탕리소토요."


"그래, 그게 가끔 생각나는구나."


단 한 번도 뭘 먹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는 아버지였다. 그는 아버지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시장으로 갔다.



그는 사들고 온 미꾸라지를 손질하며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가 말한 그 상식에 대해 그는 요즘 들어 더 깊이 고민하고 있다. 그는 그 순간 다짐했다. 나이 든 부모님이 여전히 감당하려는 삶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 지금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상식적인 일이라고.


그리고 하나 더, 언젠가 그녀 앞에 내어줄 그 밥을 완성하기 위해 분주한 주방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13.


작년 무더운 여름을 기억하며 그는 집에 에어컨을 달았다. 괜한데 돈 쓴다며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여름 내내 거실에서 지내셨다.


부모님은 일을 모두 그만두셨다. 일흔 중반의 나이에 맞이한 은퇴였다. 연금과 그가 드리는 용돈으로 두 분은 그렇게 결정을 하셨다.


자주 산책을 다니시는 부모님을 보며, 그는 광복 80주년 전야제를 예약했다. 운 좋게 당첨이 되었다.


그는 퇴근 후 부모님께 조심스럽게 물었다.


"광복 80주년 전야제가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리는데. 같이 가실래요? "


아버지는 낯선 제안에 어색해했지만, 어머니의 "그래, 오랜만에 바람 좀 쐬러 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광복 80주년 전야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은 축제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무대에선 가수들이 노래를 불렀고,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를 보며 그의 부모님은 웃었다. 두 분의 얼굴에 어린아이 같은 미소가 피어나는 것을 보며, 그의 마음속 깊이 자리했던 무거운 돌덩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는 부모님의 밝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평화로운 일상.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느껴졌다.


행사가 막바지에 이르러 부모님을 모시고 행사장을 나가던 길이었다. 출구로 향하는 인파 속에서 누군가 그에게 다가왔다.


"어? 혹시..."


돌아보니 그녀였다.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맞죠? 셰프님."


그는 순간 멈칫하며 그녀를 바라봤다.


"네, 맞습니다."


"세상 참 좁네요."


그녀는 그의 옆 부모님을 보고 공손히 인사했다. 부모님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제가 아는 분이에요. 잠깐만 이야기하고 올게요."


부모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부모님이랑 오셨네요. 좋으시겠다."


"네. 오랜만에 모시고 나왔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저... 그때 하신 말씀 기억하세요?"


"뭐요?"


"제가 지은 밥... 먹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당연히 기억하죠."


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미소 지었다.


"그 약속, 아직 유효한가요?"


"물론입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냈다.

번호를 주고받는 짧은 순간, 국회의사당 위로 마지막 불꽃이 터졌다.


"셰프님, 기대할게요."


그녀는 그의 부모님께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하고 친구들에게로 돌아갔다. 작게 손을 흔들며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가 그의 팔을 가만히 잡으며 말했다.


"우리 아들, 이제야 마음 편하게 웃는구나."


그는 주머니 속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말, 그녀에게 차려줄 밥상을 생각했다.


어떤 재료를 쓸지, 어떤 맛을 낼지. 그의 상식이 담긴, 정성이 담긴 한 끼.


작년 겨울 그녀를 만난 거리에서, 여름밤의 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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