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11화

by 구현

육교를 건너 골목 끝자락에 있는 24시간 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셀프 코너에서 깍두기를 한가득 담아왔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국물을 한 수저 맛봤다.


"완전 맛집이네요. 얼큰한 육수에 이런 감칠맛이라니."


"여기 유명해요. 지금 늦어서 그렇지, 웨이팅도 장난 아니에요. 여기서 60년을 이어오는 노포예요."


그는 식당을 찬찬히 둘러봤다. 창업주 할머니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해장국을 먹었다. 육수의 비법을 가늠해 보며 맛이 제대로 밴 선지를 기분 좋게 먹었다.


몸이 따뜻해지자, 그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 와서 많이 헷갈렸습니다. 둘로 나뉜 집회가 마치 분단된 나라처럼 느껴졌습니다."


"복잡하죠. 혼란스럽고,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되죠. 각자 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잖아요. 단지, 그런 만큼 빚이 쌓여가는 거죠. 나중에 우리가 다 갚아야 할 빚이요."


"상식, 빚이라고요?"


"전세 사기처럼 사기꾼이 작정하고 덤벼들면 어쩔 도리가 없지만, 그렇다고 계속 당할 수는 없잖아요. 지금 우리 국민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녀와 나누고 싶었다.


"저는 사실 식당을 했다가 망했습니다. 전세 사기까지 당하고 나니 세상이 저를 버린 기분이었습니다. 모든 게 원망스러웠습니다. 갑자기 월세를 올린 건물주, 바로 옆에 생긴 7천 원짜리 식당. 거기다 교통사고 가해자가 되어 해고까지 되었습니다. 그러다 그날 여의도까지 가게 된 겁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 감정을 추스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말씀하셨죠. 그냥 죽으란 법은 없다고. 저는 그 말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갔습니다. 제가 감당해야 한다고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그게 법이니까요. 그제야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수저를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았다.


"저도...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전세금 날리고 정말 바닥까지 떨어진 기분이었죠. 제가 그때 말했죠. 그 힘든 시기에 누군가 밥을 샀다고요. 그래서 당신한테 밥을 샀던 거예요. 그 기분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덕분에 그날 집으로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요리사셨네요? 셰프!"


"네. 한식을 바탕으로 이탈리안 요리를 했습니다."


"다음에 직접 지은 밥을 먹어 보고 싶네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한 밥을요?"


"네, 산전수전 다 겪은 셰프의 요리가 기대되네요."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었다. 깊은 절망 속에서 헤매던 그에게 던져진 따뜻한 위로이자, 미래를 향한 소박하지만 분명한 약속 같았다.


그녀는 시계를 확인하며 일어날 준비를 했다.


"전철 타려면 서둘러야 해요. 좀 있으면 사람 엄청 많아요. 지금 가는 게 신상에 이로울 듯."


전철역으로 같이 걸었다. 그들은 갈아타는 역에서 헤어졌다.


어디서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전화번호도 나누지 않았지만, 동지이자 친구가 생긴 듯했다.


그는 그녀에게 해 줄 밥을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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