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점등식. 2화

막힌 변기

by 구현

무사한 하루를 감사하는 기도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깊고 고요한 밤이다. 애써 잠을 청한 지 한참 지났지만, 아릿한 불빛이 어둠 속에서 나를 애타게 잡아당긴다. 핸드폰 액정 너머로 번지는 부고 알림 문자 메시지다.


눈물에 젖은 남겨진 자들의 차디찬 밤이, 내 꿈속에 고스란히 채색된다.


노련한 전공이 되겠다는 꿈을 다짐하게 한 아름다운 밤이 있었다. 군 입대하고 처음 맞는 겨울의 크리스마스이브였다. 밤하늘에 펼쳐진 크리스마스 점등식의 그 화려한 불빛은 아직도 내 눈동자에 선명히 남아있다.


그날 이후로 내 인생은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감히 장담한다. 어쨌든 나는 꿈을 이루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되짚어 봐도, 나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식은땀을 흘렸는지도 모른다. 고층아파트에 매달려 페인트칠을 하던 아버지는 밧줄이 끊어져 추락사하셨다. 그러고 석 달 뒤에 내가 태어났다.


졸지에 다섯 남매의 막내가 되어버린 나에게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어찌 된 게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의 말더듬을 물려받았냐며 탄식을 하셨다. 그것도 유일하게 말이다.


내가 태어나고 우리 집은 한마디로 몰락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돈을 벌어야 했고, 형 누나들은 배고픔에 일찌감치 집을 나가 일터로 갔다.


말더듬이라고 놀려대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기술이라도 배워야 먹고 산다며 나를 설득했다. 바닥을 기는 성적에다 집안 형편도 말이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기어코 나를 공고에 입학시켰다.


어머니의 기대와 달리 어디를 가든 골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학교생활이야 어떻게든 넘어가기 마련이지만, 군대는 아니었다.


막힌 변기.


중대 배치되고 한 달도 되기 전에 중대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아니, 별명이 아니라 그게 나 스스로도 더 친근한 내 이름이 되어갔다. 중대 고참들은 축구도 못하는 어리바리한 말더듬이 이등병을 개밥의 도토리 보듯 쳐다봤다.


시간이 지나자 그 시선은 노골적인 불길함으로 바뀌었다. 내가 이미 '막힌 변기'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암기사항 점검이 그 시작이었다. 그건 머리도 입술도 더듬는 나에게는 치명적인 형틀이었다. 군인의 길, 병의 임무, 근무 수칙···. 머릿속에 쑤셔 넣은 단어들은 하나같이 목구멍에서부터 뒤엉키다가 멈추섰다.


그러다, 보초 건수까지 내고 말았다. 첫 보초, 새벽 2시. 순찰하는 일직사관이 다가오자 긴장한 바람에 말을 더듬다 멈추었고, 순찰자는 어느새 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정적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당연한 결과를 받아 들고는 거국적인 호들갑을 떨었다.


불행은 마치 도미노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는 사실도 금세 깨닫게 되었다. 철저한 연대의식이 그것이었다. 나로 인해 죄 없는 동기들까지 싸잡아 욕을 들어야 했다.


절망이란 단어와 탈영하는 방법을 밤마다 눈물로 더듬어 찾았다. 부대 담을 넘는 탈영은 겁이 나서 체념했고, 첫 휴가를 나가서 잠적하는 것은 그때까지 내가 이곳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을 것 같아 포기했다.


그럼, 하나밖에 없다. 이 지독한 곳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나란 인간은 그만한 사고 칠 인물도 아니었다. 영리한 중대원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제발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걸레질을 했고, 모두가 담배 일발 장전을 외칠 때 담배꽁초를 주웠다. 인정받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나라는 존재를 들킬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군대의 진리를 정말 맛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등병의 시계는 고장 난 변기 속의 물처럼 제자리를 맴돌며 너무도 더디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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