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점등식. 4화

단본부.

by 구현

중대본부에 들어서자, 묘한 미소의 중대장과 무심한 표정의 인사계 상사가 잔뜩 얼어있는 이등병을 어색하게 맞았다.


"노종호 이병, 단본부에서 자네를 찾는다더군."


중대장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 위압적이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심스러웠다.


"혹시 친척 중에 군에 계신 분은?"


"없, 없습니다."


중대장은 나의 신상명세서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학력, 가족관계, 특기사항. 별다른 게 없다는 듯 서류를 덮었다. 인사계 상사는 팔짱을 낀 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노 이병, 자네 군 생활 어떤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목이 메었다.


"괜, 괜찮습니다."


중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금 전, 이 병장이 들려준 내용과 별 다른 건 없었다.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는 것, 상급부대에서 괜히 관심 가지면 중대 전체가 피곤해진다는 것.


"단본부 가서는 아무 말 말고, 물어보는 것만 짧게 대답해.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중대본부를 나설 때, 감히 눈도 마주치기 힘들었던 중대장의 눈빛에 시원찮은 여운이 무겁게 깔려 있었다.


중대본부에서 단본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발걸음은 무거웠다. 12월의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부대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을 오르며,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다.


"종호야, 너 말 더듬는 걸 군대 가서 잘 이야기해 보기라. 군대도 사람 사는 덴데 배려를 해주지 않겠나."


입대 전날 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배려는커녕 놀림감이 되었고, 암기상황 점검은 유독 나에게만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막힌 변기.'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부대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단본부 입구의 넓은 정원은 이국적인 정취로 홀로 등장한 초췌한 이등병을 그럴싸하게 맞아주었다. 겨울 채비가 제대로 된 정원수와 잘 다듬은 잔디가 보기 좋게 펼쳐졌다. 불과 몇 걸음 되지 않는 저 아래와 다른, 위엄과 평온한 기온에 압도된 발걸음이 단본부 입구의 묵직한 유리문 앞에 멈추었다.


다림질 자국 없는 군복의 지친 몰골이 유리에 투명하게 비쳤다. 그 뒤로 환영처럼 수많은 시선이 내 앞을 가로막고 비켜주지 않았다. "막힌 변기 때문에 우리까지 욕먹는다"며 주먹을 휘두르던 식기 당번들. 나 때문에 밥도 못 먹고 기합을 받던 동기들. 그리고 보초 건수에 비상이 걸렸던 중대원들의 얼굴.


조금 전, 내 멍투성이 정강이를 보며 경악하던 중대장의 얼굴도 스쳤다. "이게 뭐냐! 이런 식으로 관리했어!"라고 상사에게 고함치던 그의 목소리.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막힌 변기의 멍투성이를 조심스레 살피는 인사계 상사. 모른 척했던, 아니 모를 수밖에 없었던 그의 눈빛.


그들은 무엇을 그리도 두려워하는 걸까. 이 커다란 유리문 건너편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겪고 있는 치욕의 나날들을 알고 있다며 보호해 주고 밥을 실컷 먹게 해주려고 하는 걸까. 집요하게 나와 동기들을 괴롭힌 식기당번들을 영창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걸까.


아닐 거야! 그럴 리가 없다. 어차피, 내, 내가... 말을 더듬어 아무것도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생긴 일들이다. 혹여나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면 또 중대원들이 피해를 보고, 식기당번들의 눈빛은 더 험악해질 것이다.


손이 떨렸다. 유리문 손잡이가 차갑게 느껴졌다.


단본부 행정실의 문고리를 돌리는 순간까지 머릿속은 끝없는 의문과 상념의 고리에 사로 잡혀 있었다. 하지만 심하게 뛰는 가슴은 이미 결심을 내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괜찮다고, 아무 문제없다고.'

그게 나를 위한 것인지, 중대원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모든 걸 포기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널찍한 단본부 행정실은 사무용 책상으로 진지를 구축한 듯, 제일 안쪽의 넓은 책상을 중심으로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다. 따뜻한 난방이 돌았다. 중대 막사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깨끗한 책상 위로 서류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고, 벽에는 각종 훈령과 포스터들이 반듯하게 붙어 있었다.


타자기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몇몇 행정병들이 서류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군복은 다림질이 반듯했고,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길 잃은 강아지처럼 두리번거리는 나를 발견한 맨 앞자리의 상병은 전투중대의 어수룩한 이등병을 한눈에 알아챘다.


"1대대 3중대에서 왔지?"


"네, 그, 그렇습니다."


"저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어."


상병은 다시 타자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소리가 긴장된 심장 박동과 겹쳤다.


나는 구석의 의자에 앉았다. 등받이에 기대지도 못하고, 무릎 위에 올린 두 손은 땀으로 젖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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