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점등식. 5화

김 베드로 상병

by 구현

시선은 전방 15도를 유지했다. 어깨를 펴고 가볍게 쥔 주먹을 무릎에 가지런히 올렸다. 벽시계의 초침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10분이 지났을까, 아니 30분쯤 됐을까. 시간의 감각이 사라졌다. 행정실의 10명이 넘는 행정병 중 그 누구 하나도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자세는 조금씩 흐트러졌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려 행정실을 둘러보는 여유마저 누려보았다. 검은 뿔테 안경의 이등병이 눈에 띄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일해 온 사무원처럼 자신의 일에 편안하게 몰입해 있었다. 능숙하게 타자를 치는 그의 샛노란 이등병 계급장이 오히려 어색해 보였다. 같은 이등병인데 저렇게 다를 수 있구나.


그 옆 상병은 전화기를 귀에 대고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여유로운 표정,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내 시선을 끌었다.


커다란 유리창 아래 단행정본부장의 명패가 오후의 기울어진 햇살에 번들거려 눈에 거슬렸다. 명패 옆에는 많은 서류가 쌓여 있지만 그것과는 별 상관없다는 무료한 표정의 행정본부장은 검은 가죽의자에 폭 파묻혀 있었다. 낮잠이라도 잘 모양이다. 그의 묵직한 소령 계급장에 머문 눈길을 이내 돌렸다.


나에게 대기를 지시했던 상병이 하던 일을 다 마무리했는지 두꺼운 서류철을 덮었다. 그리고는 온몸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켜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상병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어! 왔어. 데려가."


화들짝 놀라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드디어 시작되는 건가? 심장이 쿵쿵거렸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고, 행정병들은 저녁 반찬으로 나올 닭튀김이 갈수록 부실해진다는 얘기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휴식시간을 만들어나갔다.


닭튀김이란 말을 듣는 순간, 악몽 같은 식기당번들과의 대면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오늘 점심때 그랬지, 저녁에 5분 대기 수칙을 중점적으로 체크한다고...'


저녁식사 집합까지는 불과 2시간도 남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다시 되뇌기 시작했다.

'5분 대기조는 적의 기습공격에 대비, 즉각 전투태세를 갖추어...'

완벽하다. 다시 한번.

'5분 대기조는...'


수십 번도 더 외웠었다. 꿈에서도 외웠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식기당번의 살기 넘치는 눈빛 앞에 서면, 첫 단어부터 목구멍에서 막힌다.

"오, 오, 오분..."

그러면 주먹이 날아온다. 나는 온몸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문다. 동기들까지 함께 벌을 받는다. 나는 그저 막힌 변기에 불과했다.


시간은 반복되는 잡념들로 뒤엉켜버렸다. 답답한 가슴에 긴 한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군복 바지에 몇 번이나 훔쳐냈다.

'누가 나를 찾는 걸까. 왜 나를...'


겨우 머릿속을 추스르고 5분 대기조의 임무를 다시 되씹을 때였다. 행정실 출입문이 마침내 열렸다. 말쑥한 용모의 상병이 행정실로 성큼 들어왔다.


"단결. 상병 김 베드로. 용무 있어 왔습니다."


특별한 이름에 나는 그를 더 유심히 쳐다봤다. 명찰 위에 오버로크 된 하얀 십자가가 그의 이름과 보직을 대신 설명해 주는 듯했다. 선한 인상이지만 눈매가 야무져 보였다.


그의 등장으로 행정실 분위기를 일순 바뀌었다. 잽싸게 자세를 바로잡은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그에게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고, 농담조의 말을 능숙하게 주고받았다.


"베드로 형제님, 크리스마스 준비는 잘 되어갑니까?"


그는 모두에게 환한 미소로 답했다. 형제님이라니. 상병이 행정병들에게 형제님 소리를 듣다니.


"이제, 점등식 준비만 남았습니다. 다들 관심을 많이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그보다 더 놀라운 광경은 활기찬 얼굴로 책상에 두 팔꿈치를 세우며 상병을 주시하는 소령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후의 나른함에 취해있던 소령은 어느새 활력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행정실을 장악했다.


"김 상병, 안 그래도 연락할 참이었어. 이번 크리스마스 점등식에 군악대를 확보했어. 크리스마스이브는 일정이 너무 많아서 안되고, 크리스마스에 일정을 겨우 잡았어."


"할렐루야! 정말 감사드립니다. 크리스마스에 점등식 일정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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