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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고관절 Dec 28. 2020

집으로 찾아왔어, 바이러스가.

(1) 우린 어디에든 있단다

서울 거주. 30대. 그리고 일하는 기혼 유자녀 여성.

나를 설명하는 몇 가지의 단어를 떠올려본다. 그리고 며칠 전 갑자기 얻게 된 나의 신규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00구 000번 확진자. 그렇다 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여, 현재 생활치료센터에서 격리 중인 사람이다.


하루에도 1,000명을 넘나드는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 '확진자'로서의 정체성은 흔하디 흔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꼭 이 무거운 머리를 붙잡고 노트북을 펼쳐 브런치까지 달려온 이유는 나름 뚜렷하다. "000 선생님 어제 진단검사에서 양성판정을 받으셨습니다."라는 보건 공무원의 친절한 통지 이후에 바뀌어버린 기혼 유자녀 여성의 삶을, 되도록이면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이들과 공유하고 싶어서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12월의 대부분을 집에만 머물렀지만, 집까지 기어코 쫓아들어온 이 지독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어떻게 마주하게 되었는지 기록하려 한다. 후회나 낙담이 아닌, 왜 '구조적'으로 나와 우리 가족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되짚어보고 싶다. 아마도 그것은 나의 정신적, 육체적 치유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본다. 무거운 머리 때문에 아마, 글은 두서없고 중구난방일지 모른다. 그래도 함께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24시간 갇혀지내는 나에게 더없는 기쁨일 것 같다.


예민해서 다행인 걸까


"글쓰는 사람은 예민하다는 소릴 많이 듣지."

친구는 나와의 통화에서 갑자기 그런 이야길 했다. 응? 내가 반문하자 친구는 말했다. 아, 너가 예민하니까 몸의 변화를 빨리 알아차린거 아닐까.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첫 만남을 설명하는 전화통화에서 나는 평생 '쓸모없는' 딱지라 여겼던 몸의 예민함에 대해 새삼 감사했다.


처음에는 겨울철 자주 겪는, 목이 칼칼한 수준의 불편이 찾아왔다. 팀원들의 겨울휴가가 겹쳐있어 일이 많았고 정신도 없었다. 그냥 컨디션 난조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어색함이라 너무 예민해지지 말자,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큼- 큼- 목구멍 저 아래 약간 가라앉은 무언가가 있는 느낌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프로폴리스 약제를 칙칙 뿌리거나 요오드 성분의 소독약으로 목을 가글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와 마스크를 벗은 채 만나는 단 6명의 사람 가운데, 이 비슷한 증세를 온 몸으로 표현하시던 분이 있었다는 것을. (이 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마저 쓰겠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중이라 난 어서 이 첫 챕터를 끝내고 싶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냥 넘어가길 바랐다. 하지만 그날 일찍 잠을 청했지만 다음날 일어나니 극도의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아.. 아무것도 하기 싫어." 라면서 나는 쭉 누워만 있었다. 밥을 달라는 아이들의 요청도, 청소와 빨래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도 몸을 일으키기가 너무 어려웠다. 열이 난 건 그로부터도 반나절 이상 지난 후였다. 예민한 몸의 레이더는 평소와 다른 것들을 마구 찾기 시작했다. '등이 쑤시는데? 뭐야 왜 갑자기 뒷목이 당기지? 대상포진 때처럼 신경의 존재가 느껴져!! '  


그냥 감기는 아닌 거 같다는 확신. 이대로 있으면 안될 것 같다는 강력한 촉. 나는 그것을 믿고 집 근처 보건소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어림잡아도 100명이 넘어 보이는 이들이 줄을 서서 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러 kf94의 끈을 꽉 조여 쓰고온 터였다. 내가 확진자일지 모르니까. 퍼뜨리면 안되니까 조심해야지. 보건소에서는 장갑과 소독약을 줬다. 비닐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알코올이 기화되며 손의 열을 빼앗아가 너무 추웠다.


영하의 날씨, 바들바들 떨며 한 시간 30분 넘게 차례를 기다리던 나에게 보건소 직원 분이 물었다.

"선생님, 확진자하고 접촉하셨어요?" 아니요. "그럼 그냥 걱정되서, 아파서 오신거지요?" 네.


나는 '행정적' 확진자와 단 한번의 동선겹침이 없었고 보름 가까이 재택근무로 집에만 머물렀지만 확진됐다. 누군가는 그냥 감기처럼 넘어갈 수도 있었겠다, 고 말했다. 물론 그럴 수 있었다. '단순한 걱정'을 뛰어넘은 슬픈 예감을 확인한 것 때문에 아이 어린이집과 내 회사에 민폐를 끼쳤다. 몸이 온 힘을 다해 말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아마 그냥 집에서 머리가 아프다며 머물고 있었을지도. 솔직히 내 몸에서 알리는 경보를 무시하고 싶었다. 그냥 감기겠지, 에이. 일 크게 만들지 말고 그냥 넘어가자, 그런 유혹들. 그랬다면 어쩔수 없이 우리 가족과 접촉하는 이들이 늘어났겠지.... 그리고 그들을 통해 제 2, 제3의 추가 확진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민폐가 아닐까. 그저 내 가족에서 감염의 고리가 끊어진 것이 천만다행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혹여라도 유사한 경험을 하게된다면 당장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유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사는 이 도시의 오늘을 지킬 수 있을테니까. 다들 안전한 크리스마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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