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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고관절 Dec 28. 2020

집으로 찾아왔어, 바이러스가.

(2) 여긴 방충망이 없네?

아무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확진자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 우리는 집단면역을 획득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 질병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그 말은 곧, 이 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확진 이후의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의미도 된다.


초기에 어떻게 아픈지, 병상을 기다리며 집에 머물 때 하면 안 되는 것은 무엇인지, 또 생활치료센터(혹은 생활격리치료센터, 의료보건 공무원들은 생치라고 말한다)는 어떤 곳이며 그곳으로 이동하라는 보건당국의 명령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등 아직 많은 이들에게 '미지의 세계'에 속해있다. 00구 000번을 부여받은 나 역시 생활치료센터는 그저 신문이나 방송뉴스에서 접했던 추상적 단어일 뿐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대체 생활치료센터란 무엇인가? K국 특화 검색포털에 물어봤다. 역시, 바로 답이 나온다.


코로나19 경증환자를 위한 생활지원과 치료를 지원하는 시설


운영주체는 대개 지방자치단체다. 내가 머물고 있는 생활치료센터는 구에서 급히(?) 매입한 원룸형 시설이다. 처음에 구급차에서 내렸을 때는 도심 속 모텔인줄 알았다. 모텔 같은 숙박시설에서 통행하는 이들을 가려주기 위한 커튼이 쳐져 있지 않은가? 이 건물 주차장에는 그게 있었다. 그래서 구급차에 같이 타고온 분들도 "헉.. 모텔인가봐" 하고 내리셨다. 모텔이든 어디든 가족과 격리돼 이 바이러스와 싸울 곳을 마련해준다면 대환영이라는 마음으로 내렸는데, 생각보다 시설이 괜찮았다. 복층형 원룸이 내가 바이러스를 내뿜는 동안, 살아가야 할 곳으로 정해졌다.


이 생활치료센터는 지방자치단체 상황에 따라 좀 다른 듯 하다. 다른 시도에 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대기업에서 제공한 연수원일 때도 있고, 검색에서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숙박하던 곳을 활용한다는 글도 뜬다. 아무튼 외부와 접촉하지 않고 보름가까이 지낼 수 있는 곳을 생각하면 되겠다.


000호로 가세요.

공무원의 간단한 지시대로 올라와 방문을 여니 내가 기어들어가도 될 엄청난 크기의 박스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빠른 쾌유를 빕니다'라고 적혀있는 구호품 박스에는 화장지부터 빨래비누, 샴푸, 린스, 물티슈 같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들어있다. 침구류도 함께 밀봉돼 들어있었다. 이 엄청난 무게의 박스를 방마다 올려놓느라 고생하셨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박스를 뜯었다... (오마이 ... 클렌징 비누가 오이향이다. 오이 헤이터인 나는 뜯지 않고 두기로 했다. 다음 번에 올 누군가가 써주기를 바라며.)


생활지원센터는 기본 2인 1실이다. 병상이 부족하다는 소식은 뉴스를 통해 접하신 분들이 많을 것 같다. 생활치료센터 역시 빠른 배정이 쉽지 않다고 들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배정받을 수도, 시를 넘어 다른 곳에 머물게 될 수도 있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확진자들은 스스로 알아서 빨래를 해야 한다. 땀이나 타액 등이 묻어있을 수 있는 의복이기에, 꼭 스스로 빨아야 한다. 그래서인지 입소안내 문자에서는 버릴 옷을 챙겨오라고 했다. 귀찮으면 안 빨고 버티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어린 아이와 머물고 있기 때문에 내 옷은 안빨아도 애 속옷은 빨아야 했다.




[서울시 구호품 박스] 집에서 오만 거 다 버릴 각오로 가져왔는데! 그러지 않아도 될 것을....



롯데제국의 힘을 보여주는 도시락인가?


식사는 매 끼니 정해진 시간, 문 앞에 도시락이 배달된다. 이 나라에 이리도 다양한 도시락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온갖 종류의 편의점 도시락을 접하게 된다. 잘먹고 잘 쉬어야 빨리 낫는 병이라 그런지 식사에는 확실히 '힘'을 준 느낌이 강하다. 간식도 꼭 챙겨주신다. 며칠 받아서 먹다보니 제조사에 눈길이 간다. 세븐일레븐. 롯데푸드. 롯데제과. 롯데칠성. 오호... 공급업체 계약을 롯데가 따냈나보다. 간식으로 들어오는 것들도 웬만하면 롯데가 찍혀있다. 아주 가끔 다른 식품회사 상품이 같이 들어온다. 하지만 그 비율은 10%도 안되는 느낌. 최근 카카오톡에 돌던 어떤 여성 분의 11월말~12월 초 치료후기에서도 롯데푸드가 등장하더니 여전히 롯데푸드에서 이 업무를 맡고 있나보다. 영하의 추운 날씨 탓에 밥은 차갑게 식어서 들어오기는 하지만 방 내부에 있는 전자레인지로 돌려 먹으면 아무 문제 없다.


내가 입소한 첫 날 저녁은 김치찌개가 들어왔다. 신박하게도 특수용기 속에 물하고 핫팩같이 생긴 무언가를 함께 넣으면 찌개가 따뜻하게 데워져 아주 맛이 좋았다. 확진 받고 만 48시간이 채 안됐던 때였는데. 가족과 재회하기 전까지 마음 졸이느라 두끼를 내리 굶었던 나에게 그 김치찌개만큼 맛있었던 음식은 없었다. 그 얼큰하고 뜨끈한 국물이 코로나19의 기습공격에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을 달래줬다. 이렇게....까지.... 맛있을 건 없잖아...찌개야.......


영유아 입소자를 위한 식사는 따로 없다. 물론 그럴 것이라 각오하고 아이 짐을 챙겨올 때부터 나는 썩지 않으며(냉장고가 없을 수도 있으니)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들을 챙겨오는데 주력했다. 김자반과 김, 동결건조 미역국, 밀봉된 왜된장국 같은 국류에 멸치볶음, 아기 김치 등을 챙겨오거나 시설 운영팀의 승인 아래 택배로 받아보았다. 덕분에 아이는 끼니를 거르지 않고 잘 먹고 있다. 물론 아이가 먹을 수 있는 반찬이 한정적이라는 점은 아쉽지만, 성인이 절대다수인 확진자 비율을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나처럼 영유아와 함께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게 되는 보호자가 계시다면 꼭 아이가 평소에 잘 먹는 반찬을 챙겨오시기 바란다. 입 짧은 아이라면 끼니마다 전쟁을 치르실지도 모르겠다............ (저희 애는 먹보라 어찌저찌 버티는 중입니다)


'이것'이 없는 이유는 왜일까


생활치료센터에 들어와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겼던 것은 엄청난 양의 도시락이라고 앞에 적었는데...그러고보니 방의 구조도 매우 특이하다. 자취생들이 머무는 원룸을 생각하면 딱 이긴 한데, 창문에 방충망이 없다? 처음에는 지은지 얼마 안된 건물을 구에서 급히 사들여 생활치료센터로 쓰느라 이런건가, 했다. 그런데 다른 마감을 아주 잘 해두고도 샷시에 방충망이 없는 것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왜??

나는 전염병 관련 전공자는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뇌피셜로 1) 일단 이 시설은 겨울에 문을 열었다. 2) 코로나19 확진자들끼리 모여있는 곳이어도 실내 환기는 중요하다. 3) 방충망이 있으면 특정 환자가 퇴소한 이후에 보건공무원이 방을 청소할 때 신경써야 할 사항이 추가된다. 나가고 싶은 마음을 듬뿍 담아 입소자가 방충망에 입김을 후후 불면 .... 방충망에 무언가가 남아있을 수도 있는거 아닐까? 라는 확인되지 않는 생각을 마구 해본다.

어라 그러고보니 커튼도 없다.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아침에 강렬한 햇빛 덕분에 길게 잘 수 없다! 나는 아기의 공작가위를 활용해 도시락 박스를 한땀한땀 잘라 붙였고 그 결과물은 다음과 같다.



                        쉽지 않은 수제 가림막 만들기였다. 이것으로 오늘의 턴은 종료한다. 숨이 가쁘다 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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