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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고관절 Dec 28. 2020

집으로 찾아왔어, 바이러스가.

(3) 코로나 이즈 에브리웨어

네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네가??



내가 코로나19 양성반응을 보였다고 회사와 주변에 알렸을 때, 열이면 아홉은 다들 이렇게 말했다. 네가? 그렇게 우리와 만났을 때 소독제를 손에 뿌려주며, 깔끔을 떨었던 네가? 술 약속도, 점심 약속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라 조심해야 한다고 피했던 네가? 회사에서 근무할 때도 도시락 혼밥을 부르짖으며 다른 사람과 거리를 뒀던 네가?? 정말?? 너가, 코로나 확진자라고?



응. 사실 나도 이럴 줄은 몰랐어.

아니 정확하게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내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나의 집 깊숙히까지 파고들어 올 줄은 몰랐지.

우리 가족이 그 어떤 조심을 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과 접촉자체를 끊은 것은 아니니까. 우리 가족의 케이스를 조사한 역학조사관이 어떻게 결론을 내렸는지는 사실 모른다. 하지만 예의 그 예민한 때문에 '혹시'라고 의심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사실'로 확인되면서, 스스로는 감염경로를 확인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추정하고 있는 감염경로는 두 아이를 케어해주시기 위해 매일 우리집에 방문했던 베이비시터다. 이분은 정확히 내가 고열이 나기 나흘 전부터 '목이 살짝 간지럽다'고 하면서 가래가 차는 듯한 소리를 내셨다. 큼- 큼- 겨울철 어르신들이 캬악 퉷 하기 전에 가래를 끓어모으는 그 소리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소리를 갑자기 내시길래 일하시던 분에게 급 물어봤다.


"이모님, 어디 아프세요? 열 나시는 건 아닌가요?"


아이들이 어리니까. 나는 보름도 넘게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혹시나 했으니까. 살짝 날이 선 목소리로 하지만 예의는 갖춰 물어봤던거 같다. 돌아오는 대답은. 일없어요 열 안나요. 괜찮아요 라고. 그래서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분은 이미 이틀 정도 마스크 없이 우리 아이들을 챙겼으며 나와 대화도 했는걸! 그때라도 마스크를 써달라고 해야 했던 것일까. 기억을 아무리 되짚어보아도 나의 실수는 그분이 가래 어쩌고 이야기 했을 때 마스크를 강력하게 써줄 것을 요구하지 않은 것, 그것이다.


아무튼 이틀 정도 그런 크-큼- 하는 소리를 내시던 그 분은 금요일 출근 30분을 앞두고 재택 근무 중이던 내게 통보했다. "내 몸이 안 좋아서 오늘 못갈거 같아요" 뚝. 끊기는 전화에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열은 안난다고 했다. 그때까지도. 어떡하지. 하지만 그 후에도 쉴새 없이 걸려오는 회사 전화, 각종 업무에  곧 잊어버렸다. 주말을 지나면 괜찮겠지... 괜찮을거야...... 하지만 그 후에 나도 그 분과 동일하게, 가래가 끓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나는 38도가 넘는 고열이 곧 닥쳐왔다. 온 몸을 공격하는 근육통과 신경통도 함께였다. 예전에 앓았던 대상포진이 다시 되살아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눈물 나게 아팠다. 안방에 쳐박혀 아이들과의 접촉을 끊었다. 그리고 자도 자도 머리가 무거워지길래 집 근처 보건소를 향했다....이게 내가 확진 받은 과정이다.


베이비시터는 나 외에도 남편과 둘째 아이를 감염시켰다. 그 분은 내가 확진을 받고 나서야, 겨우 마지못해 보건소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열 안나요. 열 하나도 안나는데. 이제 약 먹고 몸도 문제 없고"라는 말을 남기며. 내가 화가 나는 지점은 여기였다. 과연 내가 확진을 받는 이 극단적 결과가 벌어지기 전까지, 내가 저 분을 보건소 검사대까지 가도록 유도할 수 있었을까? 왜 저 분은 어린 아이를 보는 일을 생업으로 선택했으면서, 본인의 감염경로조차 특정할 수 없는 삶을 살았는가? 처음에는 그런 의문과 분노가 나를 휩쓸었다. 지금이야 확진 판정 받고도 며칠이 지나 진정됐지만 나 혼자 판정받고 안방에 격리돼 아이들과 접촉하지 못할 때는 정말.... 하도 울어서 눈이 빠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애간장이 닳는다는 엄마의 마음이 이런 건가. 눈 앞에 아이들이 뛰어노는데 나는 문 뒤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는 그런 끔찍한 시간들. 그 원인이 누군가에 의한 것이라고 하니, 엄청난 분노가 치밀었다.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부모님들과 선생님들께 사죄하고,

갑자기 일손 부족하게 된 회사에 사과하고

음성 나온 아이를 봐주고 계시는 부모님께 죄송하다 하고

예기치 못하게 발생한 이 일에 사과하느라 나는 전화기와 톡에 불이 나는데

이 시터는 왜....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는 걸까. 그런 의문이 나를 끊임없이 따라왔다.



누구나 코로나에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분노와 후회, 슬픔 등 강력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나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후.

지금 내게는 확진 초반과는 조금 다른 생각들이 자리잡았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모님의 행동들(조기에 검사를 받지 않고 출근한 일, 무턱대고 근처 병원에 가서 감기약을 처방받은 일, 그리고 감염의심이 될만한 동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도 그에게는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이해해보려 한다. 우선 그는 외국인으로서 체류자로서의 신분이 불안정하다. 그리고 나와는 정식 근로계약을 맺은 것이 아니기에, 세금의 문제도 분명 걱정했을 것이다. 혹여 검사받고 확진이 나면 추방되면 어쩌냐는 걱정들이 있었겠지. 정식으로 근로계약을 맺은 일터(그분이 오전에 근무하시는 곳)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집과의 상황은 좀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나야 벌금을 내면 그만이겠지만....그래서 자신이 코로나19를 앓고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어도 끝끝내 검사받으러 가기 싫어하셨는지도 모른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소속된 근로자가 코로나19 확진을 받았다고 해고하진 않을 것이다. 나의 남편 역시 정규직으로서 안정적인 직장을 보유하고 있으니, 코로나19가 그의 커리어에 큰 문제를 남기진 않을 전망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우리처럼. 근로의 안정성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만약 일용직 노동자거나 특수고용직 노동자라면? 아니면 베이비시터처럼 개인과 구두로 엮인 근로계약이라면, 코로나19가 오는 즉시 그들은 일자리에서 배제되고 곧 해고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는 야멸차게 약자의 자리를 빼앗아버리니까. 그들이 아프다는 이유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서야 나는 본의아니게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한, 그분에 대한 원망을 완전히 거두었다. 나였더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 그저 집에 머무는 동안 계속 마스크를 써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한 나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 마스크를 쓴 채 우리집 근무를 이어나가셨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했을지 정확하게 예견하긴 어렵다. 그랬어도 걸렸을 수는 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이런 글이 돌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대로변에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건물 로비로 들어왔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무실 복도를 지나가고 있네요."

"코로나바이러스가 당신 옆자리로 왔습니다."

.

.

.

.

"당신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바이러스가 공격하지 못했습니다."


문장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뭐 이런 플로우였던 거 같다. 여고괴담의 귀신처럼 쿵쿵쿵 하면서 내 앞으로 다가오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인데 간신히 마스크 쓰고 있어서 피했다는 웃지못할 섬뜩한 이야기. 나는 내 집으로 찾아온 바이러스를, 집은 안전하다는 생각에 기대 방심하고 있다가 방어에 완전히 실패했다. 처절한 실패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경우라 생각한다. 어디서 걸렸는지 추정이라도 할 수 있는 처지 아닌가. 어디에서 옮았는지도 모르는데 가족들이 나 때문에 줄줄이 확진을 받는다면 그 또한 얼마나 고통일 것인가.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코로나 이즈 에브리웨어"라는 콩글리쉬를 읊조리며.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의 기쁨이 어딘가 격리되어 있을 이모님과 그분 가족에게도 찾아오기를. 이 난리가 잦아든 이후에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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