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진, 1년 후
코로나19 확진 1주기(?)를 기념하며 적어본다.
2020년 12월 20일, 고열과 극심한 통증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끙끙 앓다가 다음날 보건소로 달려갔던 일.
그날부터 한 열흘간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이가 아프면 어떡하나, 감염의 원인이 시터로 추정되는 만큼 워킹맘이었던 나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죄책감 등등 몇번이고 그때로 돌아가면 다시금 분노와 슬픔, 안타까움이 나를 격정적으로 휩쓴다. 이제는 좀 옅어졌다고는 하지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정신을 추스리기 위함이었고, 그 덕분에 어느 정도 일상으로 복귀했다고 생각했다. 1년이 지나고 보니 이제 곳곳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다. 내가 걸렸을 때 동료들은 대부분 위로해주고 괜찮냐 물어봤지만, 그 중 일부는 "너 운이 안좋네" "어쩌다가?" "일을 너무 열심히 해서 걸렸잖아" "너 부럽다 한번 걸렸으니 불안하지 않잖아?" 등등 헛소리를 지껄였었다. 공교롭게도 그런 소리를 지껄였던 이들이 이번 오미크론 대유행 과정에서 확진자가 되셨다는 점은 아이러니....
다들 기억 하시는가?
1호 확진자가 나왔을 때, 우리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염탐했다. 정부는 그 사람에게 5000만명의 시선이 따라가도록 정보를 언론에 대거 공급했으며, 그는 사생활을 노출당했다. 그의 동의가 있었다? 당국이 그에게 서면으로 동의는 받았을 수는 있지만 그게 과연 어느 정도로 공개할 줄 알고 동의했을지, 아예 안 받을 수도 있었겠다. 아무튼 질병청장이 살인 용의자를 쫓듯, 그의 행적을 카메라 앞에서 읊고 그걸 언론은 받아쓰고 (혹은 더 추적해 덧붙이고) 사람들은 스포츠경기를 보듯 열광했다. 그땐 그게 정의였다.
나는 1호 확진자보다 익명을 내세워 약간의 숨을 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수만번대 확진자였으니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우리 구 600번대. 그런데도 나는 아파트 단톡방에서 누구인지, 몇살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취조당해야 했다. 어린이집 같이 다니는 아이들 엄마들과 친했기에, 그들의 안전을 위해, 또 같이 아이를 키우는 심정에서 미안한 마음에 먼저 "우리 아이가 확진자다 너무 죄송하다" 말했다가 린치 아닌 린치를 당하기도 했다. 우리 아이와 친했던 아이 엄마가 앞장서서 내가 누군지 아파트 단톡에 밝히려는 걸 보고, 씁쓸하다 못해 참담했다. 인간의 밑바닥을 그대로 본 2020년 겨울이었다. 좀비영화에서 이웃 죽이고 나만 살려는 인간들 식겁했더니 내 옆에 다들 잘 살고 있더라고. 태연하게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서.
심지어 옆동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아파트 입주민 단톡방에서 "지금 보건소차 타네요. 00옷이랑 000입었고 1**동 **호라인에서 걸어나왔어요" 라며 친절하게 나의 동선까지 알려주대? 그 때 그 단톡방에서 "나는 회사에 보고해야 하니 관리사무소는 어서 단지 확진자 가족의 신상을 밝히시고 몇동 몇호인지 알려주십시오. 엘베나 환기구로도 감염될 수 있으니까"라고 요구하던 새끼(라고밖에 적을 수 없음)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최악의 인간으로 꼽힌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오늘 1등신문을 자처(?)하는 모 매체는 국민이 알아서..각자도생방역 전환이라는 기사를 1면톱으로 올려놨다. 그렇다. 이젠 확진 후에 싸돌아다녀도 정부는 모른다. 위치추적도 하지 않는다. 추적에 초점을 맞췄던 방역은 오미크론 앞에서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 사람들도 "코로나 뭐~~ 감기처럼 앓고 말지 뭐~~~" 라고 하고 만다. 걸려도 예전처럼 죄인취급, 더러운 사람 취급 안받는다. 격세지감, 딱 그 말이 떠오른다. 먼저 걸린 나만 바보
(백신이 나오기전에,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진행한 3T 전략이라고는 하지만 초반에 사적 추적을 부추기는 방향을 설정한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국가였다는 점을 질병청은 꼭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고. )
그러나 이제 감염자는 속출하고 있다. 하루에 3만명이 넘게 나오는데 추적이 되겠는가? 언젠가는 나도 걸린다, 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만 남았다는 감염내과 의사들의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단지 먼저 걸리고 신원이 탈탈 털린 초기 확진자들만 억울할 뿐이다. 물론, 이 이기적인 사회에서 그들의 목소리에는 그 누구도 공감해주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한 때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광기어린 사적추적은 비록 소수지만, 상처받은 사람들을 만들었다는 점만이라도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부디 오미크론의 여파를 잘 헤쳐 나가실 수 있기를. 나 역시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