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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히지니 9시간전

물을 마시고 싶어

물은 축제처럼 감미로웠다.- 어린 왕자

나가기 싫어하는 집순이 초등학생. 꼬셔서 나가는 게 쉽지 않다. 나가기 힘든데 나가면 잘 논다. 오히려 집에 가기 싫다고. 온순한 것 같아 보여도 청개구리 기질은 조금씩 가지고 태어나는 가 보다. 한편으로는 잘 크는 거 같아 다행이기도 하다. 

오늘은 뜬금없이 트레이더스에 가고 싶단다. 점심으로 트레이더스에서 파는 쌀국수를 먹겠다면서. 쌀국수 맛집도 아닌데. 이상하다. 

'사실을 말해야지. 사고 싶은 게 있는 거야?' 

그냥 거기서 쌀국수가 먹고 싶다는데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뭐가 사고 싶은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침 장도 봐야 하니 후다닥 챙겨 입고 차를 탔다. 그런데 트레이더스 푸드 코트는 붐빈다.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안 되겠다. 차라리 가는 길에 짜장면 먹자하니 모두 찬성이다. 윤이는 짬뽕이 먹고 싶다고. 트레이더스 앞에 짜장면 파는 집이 있어 마침 잘 되었다. 거의 도착했는 데 있어야 할 짜장면 집이 없다. 그 자리에 한식 뷔페가 들어섰다. 검색을 해보니 나름 평이 좋다. 돌아다닐 거 없이 한식 뷔페로 들어갔다. 

'엄마, 여기 구내식당 같아.' 

구내식당이 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책에서 봤다고. 윤이는 신났다. 나도 여러 가지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둘러보니 대충 몇 가지가 아니다. 음식을 보니 식욕이 돋는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의 엄마 아빠가 떠올랐다. 배고파서 마구마구 먹던 엄마와 아빠. 욕심으로 음식을 가져오면 결국 다 남긴다. 일단 맛부터 봐야 지하는 마음으로 조금씩 담았다. 비빔국수, 겉절이, 가지 볶음, 제육볶음, 미역국. 샐러드는 많이. 요즘 채소가 비싸서 사 먹지 않았다. 뷔페 왔으니 샐러드만큼은 듬뿍 담았다. 순대와 떡볶이도 있다. 배가 고파 잔뜩 먹고 싶지만, 먹을 만큼만 가져와야 탈이 없다. 

와플에 사과잼을 잔뜩 올리는 윤이. 딸기잼을 올리려는 걸 겨우 막았다.  차라리 찍어 먹으라고 옆에다 덜어줬다. 맛을 보니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와플이 적당히 달고 바삭했다. 사과잼을 바른 부분은 눅눅하고 달아서 다 먹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말렸어야 했는데. 그래도 이런 경험도 해봐야지. 나중에는 알아서 적당히 먹겠지 싶다. 

비빔국수 후루룩 먹었더니 짜다. 샐러드에 있던 오이를 같이 먹으니 그나마 괜찮았다. 뷔페음식은 짜다. 알고 먹어도 짜다. 과식하면 졸리다. 알면서도 또 먹는다. 다음 주 윤이 생일이라 호텔 뷔페를 예약했는데 또 이렇게 가져다 먹을게 분명하다. 아마 다음 주에는 더 먹겠지. 본전 생각해서.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적절한 운동과 건강한 식단인데. 알면서도 이렇게 먹고 있다.

윤이는 별로 먹지 못했다. 우동 조금, 와플 반쪽. 그게 다다. 만원이 아깝다. 다음 주에도 이렇게 먹으면 돈 아까운데. 돈아까 우니까 많이 먹으라고 하지만 탈이 날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윤이가 알아서 먹을 만큼 먹고, 건강하게 잘 크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억지로 먹이려고 하는 마음이 든다. 본전 생각나서.


트레이더스에서 윤이는 더욱 활발해진다. 여기저기 다니며 시식한다. 아기일 때는 마트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시끄럽고 사람이 많아서다. 예민한 기질이라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았다. 카트에 태워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아 마트에 가는 게 스트레스였다. 큰 맘먹고 가거나 서둘러 사서 나와야 했다. 그랬던 윤이가 이제는 시식하는 재미에 마트에 가는 걸 좋아한다. 특히 트레이스는 그냥 이마트와 다르게 다양한 시식을 할 수 있다. 점심을 먹고 와서 입맛이 없는 나와 다르게 윤이는 발걸음이 가볍다. 젤리로 입맛을 돋우고 버섯구이를  먹고 초콜릿을 후식으로 먹고 요구르트 마신다. 한 바퀴를 도니 뷔페를 한 번 더 갔다 온 것 같다. 이것저것 맛보는 마트에 가기, 윤이의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나는 목이 마르다. 게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은 졸려도 너무 졸리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라 망정이지 지하철이나 버스였으면 어쩔 뻔했는가. 고개를 이리저리 마구 휘저었다. 요즘 오른쪽 목이 결렸는데, 조금 풀린 것 같기도 하다. 윤이와 남편이 나를 보고 웃어도 어쩔 수가 없다. 끄덕끄덕하는 머리는 멈추지 않는다. 집에 오자마자 물부터 마셨다. 평소 물을 잘 마시지 않는데 뷔페 갔다 오면 계속 들이킨다. 저녁밥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편하게 자려고 옷을 갈아입고 드러누웠다.






여전히 목이 마르고 피곤하다. 윤이는 쌩쌩하다. 좋아하는 만화책을 보며 미소 짓고 있다. 과식한 어른만 피곤하고 목이 마른 것 같다.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찾는 걸 단 한 송이의 꽃이나 한 모금의 물에서 찾을 수도 있어.'

물 한 잔 더 마셨다. 속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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