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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Feb 02. 2023

내 글을 잃어버릴 뻔했다

전이수 작가로 부터 배우다


제가 전에 어떻게 건물들을 그리는지에 대한 드로잉 책을 본 적이 있는데요
그때 그 책을 보고 제 드로잉을 잃어버릴 뻔했어요.
내가 그린 분수랑 그 사람이 그린 분수랑 비교해 보면
그 사람의 것을 더 잘 그렸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그걸 따라갈 수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제가 드로잉을 할 때
저의 선을 그을 수가 없어요.
저는 어떤 사물을 보고
그 사물을 제 마음속에 풍덩 담았다가 다시 빼서
그 물건을 나만의 드로잉으로 만들어 내거든요.
그래서 어떤 사물을 봐도 그게 나만의 드로잉이 될 수 있어요

KBS다큐 <자연의 철학자들>, 이수의 세상에 핀 꽃, 전이수 작가의 인터뷰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나는 내 글을 쓰기보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더 많이 읽고 있다. 많은 작가들의 글을 언제든지 읽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

분명히 브런치의 세계에서 누리는 호사 중의 하나이다.

얼마나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 많은지...

처음에는 타인의 글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작가들의 글을 읽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꾸 내 글과 비교가 되고 자신감이 사라진다.

그리고 나도 그들처럼 써야 좀 더 작가다운 면모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흉내라도 내 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흉내를 내보면 당장에 내가 안다. 얼마나 어색하고 얼마나 나답지 않은지...

그러다 '내 글을 잃어버린 나'는 '누군가 보다 좀 덜 잘 쓰는 나'보다 오히려 더 초라하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작가 전이수 군도

한 번씩 그런 함정에 빠지기도 하는 가보다.

아직 10대의 소년이라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러나 놀랍게도 이수 작가는 나보다 더 지혜롭다.

그는 비교하고, 자신감을 잃고, 자기의 드로잉을 잃어버리는 일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자신의 선을 긋는 방법을 이미 터득했으니 말이다.




사물을 내 마음속에 풍덩 담았다가 다시 빼서
나만의 드로잉으로 만들어 내거든요



이수 작가는 사물을 그리기 위해 다른 작가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마음에 풍덩 담아버린다.

이수 작가의 마음에 담긴 사물은 염료에 담근 옥양목 천처럼 온통 이수 작가의 마음으로 물들고

다시 빼서 그림으로 옮겨졌을 때는 오직 이수 작가의 드로잉으로 창조된다.

이수 작가의 마음을 통과한 사물은 오직 이수 작가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함이 되는 것이다.


전이수 갤러리에서 구입한 엽서에는 그림과 글이 함께 있다.



작년 겨울, 전이수 작가의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에 제주 함덕 바닷가를 찾았다.

나도 그림을 그리는지라 관심 있는 작가의 그림을 보러 간 것이었지만

내가 그곳에서 본 것은 이수 작가의 ‘마음’이었다.


관람객들이 스윽 그림을 훑어보고 지나간 자리에 혼자 남은 나는 오랫동안 작가의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참 많이 울었다.

그냥 어린 친구의 손에서 탄생한 맑고 사랑스러운 그림이라는 원래 알고 있던 정보 이상으로,

보는 이에게 각양의 메시지를 주는 그림들, 그리고 그림마다 함께 기록해 놓은 작가의 깊은 사색의 결과물들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주책맞은 아줌마 같아 보일까 참아보려다 혼자임을 알게 된 이후엔 아예 그림 앞에 주저앉았다.

보는 이가 없으니 그냥 그렇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좋았다.

주저앉아서 이수 작가의 그림 <엄마에게 1>을 보면서 나도 엄마를 생각했다.

이수 작가보다 족히 3배는 더 살았으면서도 나는 이렇게 마음으로부터 길어 올린 감사와 사랑을 엄마에게 드린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에게는 얼마나 그 감동이 전달이 될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림과 글을 사진 찍어 엄마께 보내드렸다.

텅 빈 전시장 한가운데에서 작가의 마음이 나의 마음에게로, 나의 마음이 또 엄마의 마음에게로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앉아 있었던 그 시간이 나에게 시공간을 초월한 찰나의 여행처럼 남은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오늘 작가의 짧은 인터뷰를 보니 알 것 같다.


아직 '어린' 작가라고 불리는 그가 어떻게 그런 통찰을 가졌을까?

그의 마음은 얼마나 많은 사물들을 풍덩 집어던질 만큼 커다란 세상일까?

나는 그의 호칭 앞자리에서 '어린'이라는 단어를 빼버렸다. 그는 커다란 마음을 가진 '작가'이다.






하마터면 나도 내 글을 잃어버릴 뻔했다.

내 글이라고 해 봐야 이미 많은 글쓰기를 통해 작가로서의 프로페셔널함을 보여주는 사람들의 글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일천한 것이겠지만 내 글은 언제나 '내 글'일 때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내 글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나도 이수 작가로 부터 배운 방법을 써먹어 봐야겠다.


누군가의 글과 비교가 되고 자신감이 떨어지려고 할 때,

쓰고자 하는 것을 재빨리 내 마음속으로 풍덩 담았다가 다시 꺼내 나만의 글쓰기를 해보기로...

다른 사람의 글이 아닌 나의 마음에 집중하는 글쓰기를 하기로 말이다.


내 마음 안에 내가 배우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 늘상 하는 생각들, 소중한 일상의 일들을 계속해서 던져 넣을 때, 나의 마음도 이수 작가처럼 점점 더 커다란 세상이 되어 가고, 쓸만한 많은 것들이 거기로부터 흘러나오면, 더 이상 내 글을 잃어버릴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리라.



제주 함덕 바닷가의 행복한 소년 전이수 작가 덕분에 나는 오늘 눈치 볼 필요가 없는 '내 글' 하나를 완성했다.





이수 작가의 마음 속에 풍덩 담았다가 빼낸 '자유'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도 아무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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