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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Feb 11. 2023

지금은 Bar를 붙들어야 할 때

글쓰기 챌린지에 임하는 나의 자세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학교에는 울산 시에서는 제법 실력이 괜찮다고 소문난 발레 반이 있었다.  발레 반 언니들이 토슈즈를 신고 연습하는 모습이 얼마나 우아하고 이쁜지.. 한참 공주 놀이에 빠질 그 나이에 튀튀를 입고 빙글빙글 도는 것만으로도 천상의 존재가 될 듯 한 환상적인 꿈에 도취되어 나는 발레 반을 엄청나게 동경했다.


당시 나와 늘 어울려 다니든 친구 두 명까지, 우리는 무조건 엄마들을 설득해서 발레 반에 들어가자고 다짐을 하고 며칠을 졸라댄 끝에 모두 성공적으로 발레 반의 일원이 되었다. 아, 이제 우리는 예쁜 발레복을 입고 슈즈를 신고 TV에서 본 발레리나들처럼 우아한 몸짓으로 춤을 추리라 기대하고 들어간 발레 반… “쟤네들 발레 반이래~” 그렇게 수군거리는 아이들 앞에서 공주님이 된 듯 우쭐거릴 꿈에 부푼 발레 반이었으나…

첫날부터 우리의 꿈은 산산이 깨져버리고 말았다.


처음 발레 반에 들어가서 한 달간은 연습 바(bar)에 다리를 올리고 유연성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이 다리를 찢는 것, 그리고 땅바닥에 앉아 역시 가로로 다리를 찢는 것부터 연습을 해야 했다. 뻣뻣해서 우물쭈물거리고 있으면 선생님이 오셔서 가차 없이 다리를 잡아당겨버리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터져 나오고, 나와 친구들은 일주일도 채 안 돼, "괜히 왔나 봐~" 울상이 되어버렸다. 뭔가 우리가 생각한 발레 반과 달라 마음이 무지 어려웠지만 그래도 한 편에서 백조처럼 예쁜 춤을 소화하면서 “우리도 예전에 다 그랬어~“ 말하며 여유롭게 웃어 주는 언니들을 보면 그렇게 포기하기엔 너무 이르단 생각이 들어 이를 악물고 다리 찢기와 씨름을 했다.


 그렇게 한 달가량 울고 불고 다리 찢기를 한 결과 놀랍게도 이제는 슬쩍 앉기만 해도 180도로 다리가 아주 유연하게 뻗어지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발레 반에서 뭘 배우냐는 반 친구들 앞에서 보란 듯 다리를 일자로 뻗어줄 때, 와아~~ 하며 터져 나오는 환호성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이제 제대로 발레 반다와 진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달간의 다리 찢기 과정이 지나고 나서 이제는 바에 다리를 올리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상체 유연성을 기르는 연습에 들어갔다. 이런 식으로 단계단계 몸을 만들고 나서야 드디어 그렇게 소망하던 마루 연습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발레 반이 된 지 거의 석 달… 그제야 기본동작도 배우고, 간단한 작품도 소화하면서 제법 발레리나 같은 면모를 보여줄 정도에 이르게 된 것이다.


몸을 만드는 동안은 견뎌내기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예쁜 동작을 배우는 때는 오히려 쉬웠던 거 같다. 그 뒤 작품을 준비하고 대회에 나가서 상도 받고 했지만 발레를 배운 그때를 생각할 때 가장 많이 떠오르는 장면은 바(Bar)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다. 마루 연습을 시작하고 난 이후에도, 대회에 나가는 작품을 연습할 때도 바에서 이루어지는 기본자세 가다듬기는 매일 필수적으로 30분 이상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만큼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그렇게 발레가 나의 인생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결국 나는 4학년이 되면서 발레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유는 4학년 때부터 다시 바를 붙들고 토슈즈를 신는 연습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것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3학년 때는 연습용 슈즈를 신고 동작을 배우고 대회까지 나갔으나, 발레리나의 상징은 단연코 토슈즈.. 그것을 신고 발을 곧게 뻗고 창공을 깃털처럼 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비로소 발레리나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나는 언제 토슈즈를 신나... 기대하던 그날이 왔지만 토슈즈와 친해지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고 결국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한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발레 선생님을 피해 다니다 발레와 영원한 이별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그때는 그냥 힘들다,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 만이 온통 나를 지배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토슈즈 적응 때문에 발레를 그만둔 것을 나는 두고두고 후회했다. 특히 나와 함께 대회에 나갔던 친구들이 토슈즈를 신고 깃털처럼 창공을 날아올라 그다음 대회에서 또 상을 타고 전교생 앞에서 꽃다발과 축하를 받는 모습을 볼 땐 조금 더 참아내지 못한 나 자신이 참 초라하게 보이기도 했다.


그때 힘든 그 시간을 버텨냈더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지금까지 발레를 계속하고 있을까... 단순하게 추측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후회는 남지 않았을 것이고 내가 이룬 작은 성취감이 내 마음의 근육을 더 단단하게 해 주었으리라는 것이다.






요즘 나는 매일매일 글쓰기 챌린지에 참여하고 있는 중이다. 66일 동안 매일 최소한 5줄 이상 쓰는 챌린지가 오늘로써 38일째다. 처음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쓰리라 결심을 하고 시작했지만 벌써 몇 번 글을 제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중간에 이왕 이렇게 된 것 포기해 버릴까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마음을 다시 잡고 목표를 수정하기로 했다. '66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글쓰기' 대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글 쓰기'로 말이다.


매일 같이 글을 쓰는 일은 나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잘 쓰고 싶지만 마음만큼 글이 따라 주지 않을 때는 나는 재능이 없나 보다 실망하면서 곧장 노트북을 닫아 버리고 싶어 진다. 그 마음을 겨우 억누르고 뭐든 써서 챌린지 제출 창에 글을 올리고 나면 누군가 나조차 다시 보기 민망한 내 글을 클릭하여 보게 될 것 때문에 또 마음이 소심해진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글을 쓴다. 뭐든지 쓴다. 어릴 적 포기와 후회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인지, 아니면 내가 그동안 어른스러워졌음을 증명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계속해서 쓰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다는 것은 확실하니까..


나에게 글쓰기 챌린지란, 생각해 보면 그 어렸던 내가 바(Bar)를 붙들고 발레를 위해 몸을 만들고, 근육을 단련했던 일과 같은 작업인 것 같다. 그리고 그때 발레를 하기 위해 그 과정이 필요했던 것처럼 지금은 나의 글쓰기를 위해 이 과정이 마찬가지로 필요한 때라 여겨진다. 처음 신어 본 토슈즈가 발가락을 짓누르고 온몸이 비틀릴 정도로 통증이 퍼져나가는 것 같은 회피하고 싶은 순간이 분명 찾아오겠지만, 이 시간을 견디고 나면 반드시 우아한 몸짓으로 하늘을 날아오르게 될 것이다.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 것은 66일을 어떤 일을 지속한다고 보았을 때, 28일쯤 고비가 찾아오고 그때를 잘 지나고 나면 남은 시간은 이전보다 더 수월해진다고 하는데, 28일을 지나 오늘은 38일, 확실히 글쓰기가 한결  수월해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글근육이 조금조금씩 단단해 짐을 느낀다. 어느 정도 고비는 지난 것일까.


지금은 Bar를 붙들어야 할 때..

지루해도 온몸이 뻐근해도 다시는 놓지 말고 66일이 되기까지 꼭 붙들어 보자. 어색하고 불편한 토슈즈가 발에 착 붙는 그날을 기분 좋게 꿈꾸면서...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발레  #토슈즈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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