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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Jul 05. 2023

글쓰기, 나를 만나러 가는 길

세바시대학 글쓰기 전공 졸업 에세이


이글은 2022년 10월에 세바시 대학 글쓰기 전공 졸업 에세이로 쓴 글이다. 지난 3월 브런치에 발행한 글 <함께 가면 길이 됩니다>에서 소개한 수강생 41인의 책에 수록되었다.


https://brunch.co.kr/@81cfa69d5ccf46f/37





글을 제대로 쓰기 시작한 지 이제 4개월이 되었다. 글쓰기가 뭐 그리 특별하냐, 글 안 써 본 사람이 어디 있나... 내 나이 50이 넘었으니 그동안 숙제를 위한 글, 편지글, 보고서, 일기, 심지어 SNS 문자 메시지까지 죄다 망라하면 어마어마한 페이지의 책 몇 권은 충분히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올해 들어 세바시 글쓰기 전공 과정을 만나고 나는 처음으로 특정한 목적을 위한 글이 아닌,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래서 글머리에서 글을 ‘제대로 쓰기’ 시작했다고 표현해 보았다.   

  

 이유와 주어진 목적이 있어서 쓰는 글은 쉽다. 그냥 주어진 주제만 생각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는 글이 되게 하기 위해 이야깃거리와 글감을 찾아 나서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엇이 내 글의 신선한 소재가 될 수 있을까... 마음을 열고 관심을 기울여 주변을 돌아보는 일을 계속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대상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거기에서부터 글이 시작된다. 이 4개월의 글쓰기 과정에서 가장 흥미롭고 새롭고 나에게 큰 유익이 되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나는 나나 타인,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에 대해서 그다지 호기심이 많지 않은 편이다. 알고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진실하게 사람들을 대하려고 노력하지만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이나 사정들을 잘 알아차리지 못해서 괜히 미안해지는 순간이 더러 생긴다. 그리고 7년 넘어 살고 있는 집 근처에, 매일 다니는 길목에 어느 날 뜬금없이 눈에 들어오는 가게나 구조물이 보여서 “이게 언제 생겼지?” 물으면 옆에서 같이 걷던 딸이 화들짝 놀라며 “엄마, 이거 우리 이사 올 때부터 있던 거예요, 처음 봐요?” 하고 묻는다. 일단 관심이 없으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이다.     





 이런 나에게 제대로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글을 쓰려니... 글감이 필요했고, 그러자니 눈을 들고 몸을 일으켜 내가 여태껏 보지 않고 지나치던 것, 무관심했던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글쓰기 강사님들의 강연을 들으면 모두가 하나같이 권한다. 글을 쓰려면 글쓰기 환경을 바꾸라, 노트북을 챙겨서 집 밖으로 나가라, 시장으로, 거리로 나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라, 평소와는 다른 생각을 하라, 질문을 하라, 의심을 하라 등등... 참신한 글감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내 앞에 나타나고, 그 만남의 결과로 글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워낙에 유명한 집순이인 나에게는 글쓰기를 위한 최초의 시도로써의 공간 이동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날, 매일 익숙한 일들을 반복하는 공간이자 편안하고 안전한 곳인 내 책상 앞에서는 더 이상 어떤 창조적인 영감도 기대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주저 없이 필기도구를 챙겨, 한 여름 뜨거운 정오의 열기를 뚫고 집을 나섰다. 글을 쓰기 위해 그날 내가 한 일이라곤 고작 집 밖으로 탈출한 것이 다인데... 거리의 뜨거운 태양 아래 서 있는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좀 우습지만 글도 쓰기 전에 벌써 작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묘한 해방감과 성취감이 나를 더욱 부추기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글을 써야겠어.” 잘 쓰든 못 쓰든 글을 써야겠다는 의지는 더욱 선명해지고 그 의지를 따라 몸과 마음은 그동안 한 번도 쓴 적이 없는 근육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리를 걸으면서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잡화상의 물건들도 구경하고,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은 채 걷고 싶은 만큼 걸어도 보고 그러다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던 카페에 한참을 죽치고 앉아 그날의 감상, 내가 본 거리의 모습,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나에 대한 이야기들을 노트에 적었다. 일정한 목적이 없으면 외출을 잘하지 않고, 나가더라도 정해진 스케줄대로만 움직이면서 주변 사람과 사물에는 전혀 무관심한 나로서는 아주 획기적인 시간 쓰기이며 경험이었다. 시간 낭비 같아서 평소 같으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그날의 많은 일들을 통해 나는 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을 향해 눈과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그것은 나의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과 새로운 ‘만남’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글쓰기 클래스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그 많은 만남 중에서도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만남은 바로 나와의 만남이다. 세바시 콘텐츠 중에서 가장 실제적이고 유익한 것을 들라면 나는 단연코 <인생질문> 책을 꼽을 것이다. 인생 질문은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내 안으로 내 안으로 더 깊이 나아가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미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내가 원래 그렇고 그런 사람이지 이제 더 알 것이 뭐 있겠는가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인생 질문을 붙들고 글을 써 내려가는 과정을 통해 내 안에 아주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아니 어쩌면 내가 잠재우고야 말았던 것일 수도 있는 나의 욕망과 마음의 소리에 다가가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또 다른 나와 갑작스러운 직면을 하게 되는 일도 있었다. 나는 언제나 모범생으로 살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어느 정도는 버거운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겠다, 나도 쉽게 허용되는 환경이 아니어서 그렇지 자유롭기를 원하는 갈망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런 모습 역시 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때 느낀 희열과 해방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아직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제 나에게 여태껏 안 해 본 일을 하는 자유와 모험을 허용해주고 싶어졌다.     




 용기를 내어 블로그를 열었다. 블로그의 제목은 “나는 이제... 나를 만나러 간다”로 정했다. 나의 글쓰기의 목적이 드러나는 제목이다. 그리고 인생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록해 나갔다. 그림도 그리고, 색색의 펜을 사용해서 손글씨로 적은 노트를 캡처하여 올리고 미처 손으로 기록하지 못한 새로운 감상을 덧붙였다. 그렇게 매일매일 기록하는 글은 나에게로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도를 할 용기를 주기도 했다. 내가 안 해 본 일,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적어가다가 친구와 약속해 놓고 미루고 미루던 여행이 생각났다. 가족 때문에, 일 때문에 핑계를 댔지만, 사실 결혼 이후에 가족들 없이 오롯이 나 혼자, 나를 위한 여행을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선뜻 마음먹기가 어려웠던 것이 내 망설임의 가장 큰 이유였다. 지금 마음을 먹지 않으면 계속 망설이다가 내 인생이 끝날 것 같았고, 그렇게 한 걸음 내딛고 보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할 수많은 것들을 만날 것 같은 기대감에 친구를 만나 일정을 못 박았다.



 “야, 네가 웬일이야? 이번엔 정말 가는 거지?”


 약속은 해 놓았지만 반신반의하게 하는 속 터지는 친구를 그렇게 오랫동안 참아준 친구, 그리고 여행 초보자인 나 대신 모든 필요한 것을 준비해 준 친구가 참 고마웠다.

 친구와 여름이 저물어가는 조용한 통영에서 3박 4일을 보냈다. 그날의 통영은 하나의 무균실과 같은 느낌으로 나에게 남아있다. 거기서 나는 엄마도, 아내도, 사역자도, 50대 중년의 아줌마도 아닌, 그냥 나 자체였다. 그곳은 오직 나와 친구 두 사람만 존재하는 작은 행성 같았다. 친구와 함께 밤새 이야기  하고, 멋진 브런치 카페에도 가고, 편의점 앞 커다란 탁자에서 오일파스텔로 꽃 그림도 그리고, 동네 어귀 예쁜 빵집에서 갓 나온 소금 빵을 뜯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에 너른 하늘을 둥글게 가로지르며 빛을 내는 커다란 무지개를 보면서 좋아 어쩔 줄을 몰라하며 보낸 그 시간들은 내 일상의 평범한 맥락 속에서 툭 튀어나온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이 남았다.      






 여행은 끝이 났고, 다시 바쁜 일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나의 글쓰기는 계속되고 있고, 그 속에서 나를 만나는 일은 이제 막 시작이다. 흔히 인생에는 계절이 있다고 말한다. 이제 결실의 계절 가을로 접어드는 중년의 문턱에서 나의 존재에 대해 다시 성찰하기가 필요한 이때 내가 글쓰기를 만나게 된 것이 참 감사하다.


심리학자인 융은 중년기를 ‘자기’로부터 새로운 활력을 얻기 위해 자신의 근원인 ‘자기’에게로 되돌아가는 때라고 한다. 그는 인생의 전반기는 의식적인 인격의 핵심이 되는 ‘자아’를 강화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다른 많은 면들을 소홀히 할 수 있으나, 인생의 후반기에 이르러는 ‘자아’를 객관화하며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화하고 자신 안에서 통합함을 이루어 ‘자기’를 개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한다. (<내 나이 마흔, 중년의 위기 은총으로 새로 나기>, 안젤름 그륀, 성서와 함께, p. 67-71)


인간이 ‘자아’에서 ‘자기’로 발전하는 과정을 잘 거쳐야 건강하고 풍요로운 중년기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융이 제시한 자기로의 발전과정을 하나하나 밟아가게 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여전히 일상은 녹록지 않고, 두렵게 하는 일, 회피하고 싶은 일,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길을 통해 나를 만난다. 거기서 나의 감정을 들춰내고 공감해 주고, 괜찮아, 수고했어 격려해 주면 어깨의 짐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조금 쉬었다가 그래도 힘을 내서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그 길에서 얻는다.


 아직도 내 앞에 끝없이 펼쳐진 그 미지의 길 위에서 새롭게 만나게 될 나를 기대하며, 나의 글쓰기...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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