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쿨이 현실이 되던 그때…
선을 넘었다.
일단 한번 넘으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그 선을 넘었다.
첫째 딸의 손을 잡고,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교문을 나서는 순간… 온몸의 세포가 동시에 깨어난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내가 돌았나 봐..”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날은 딸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를 완전히 정리한 날이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어떤 절차를 밟았는지 자세히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며칠 동안 선생님을 만나서 홈스쿨을 하고자 하는 우리의 뜻을 전하고 상담을 진행했다. 아이가 이제 막 4학년이 된 첫 주였다.
이래저래 바쁜 와중에도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잘 들어주셨고, 아이와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주셨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 아이는 학교보다는 홈스쿨이 더 나을 거 같네요.”하시면서 정리에 필요한 절차를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 과정에서 교무주임 선생님과의 전화 면담도 있었는데 역시 우리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시더니,
“잘하셨습니다, 어머니, 홈스쿨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씀해주셨다.
계속되는 선생님들의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반응은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홈스쿨을 결정하고 학교와 소통을 시작할 때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만 했다. 아무래도 학교에서는 홈스쿨에 대해 이해를 못 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부모인 나를 설득하려고 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많은 홈스쿨러들이 시작을 위한 첫 과정인 학교와의 소통을 어려워하는 것이 보통이기에 나 역시 쉽지 않은 이 과정을 정신 바짝 차리고 통과해야지 싶었는데… 학교에 이렇게 교육적 소신을 가지고 학생들을 이해하는 선생님들이 계시다니… 이 좋은 선생님들이 계시는 학교에 그냥 계속 보낼까 보다… 하는 생각이 잠시 들 정도였다.
덕분에 걱정했던 절차들을 수월하게 잘 밟았지만, 학교와 소통하는 모든 시간 동안에는 그 어떤 방해에도 불구하고 홈스쿨을 관철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잔뜩 긴장해 있었다. 온 마음과 정신을 집중해서 아이의 손을 이끌고 성공적으로 교문을 나서야겠다는 생각만이 나를 지배할 뿐이었다. 많은 염려에도 불구하고 일이 잘 풀렸고, 우리는 드디어 그렇게 소원하던 일을 이루어냈다.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할 일인데...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고 아이의 물건을 챙겨서 학교를 빠져나오는 그때의 기분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웠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뭔가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슬그머니 겁도 났던 것 같다. 교정을 가로질러 나올 때, 다른 아이들이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 열린 창문 사이로 보였다. 갑자기 아찔해졌다.
‘저기에 같이 앉아 있던 우리 아이를 내가 데리고 나왔다…!!’
아이와 교문을 넘어섰을 때, 그렇게 홈스쿨에 대해 확신에 차 있던 나는 온 데 간데없었다.
그 길을 나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니...'
요즘 말로 '현타'가 온 것이다.
아무 말 없이 기계적으로 아이와 함께 집을 향해 걸어갔다.
"엄마~"
아이가 말없이 걷는 나를 불렀다.
정신을 차리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밝고 명랑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눈으로 "엄마, 난 괜찮아요. 우리가 같이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내일부터 엄마랑 뭐할까?"
조금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아이의 손을 좀 더 힘있게 잡아주었다.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 항상 낭만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답은 언제나 꿈에 있지 않고 현실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간절히 원한 홈스쿨을 아름답게 가꾸어 가기 위해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매일 닥쳐오는 현실의 문제들을 직면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홈스쿨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