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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Jan 13. 2024

마음은 손 편지를 타고




며칠 전 나에게 손 편지 하나가 도착했다. 하얀 봉투에 내 이름과 우리 집 주소가 적혀있고 보내는 이의 주소가 적혀 있는 옛날 느낌이 물씬 나는 편지였다.

매달 수 없이 많은 하얀 봉투를 받는다. 거기에도 내 이름과 주소는 적혀있지만 그리 반갑지 않은 인쇄체는 지루한 광고나 제 날짜에 맞춰 돈을 납부하라는 고지서 재중을 알리는 것에 불과하기에 우체통을 확인하는 기쁨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런데 그 무감동의 우체통 안에서 내 이름을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를 발견한다는 것은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렇게 글을 쓸만한 일이 될 만큼 특별하고 신선한 일이 되었다.


며칠 전 거의 20년 만에 만남을 가졌던 어떤 언니로부터 온 편지였다. 내가 처음 선교단체의 간사가 되었을 때 만났던 언니는 멋진 외모에 당당하고 쾌활한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맡겨진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도 어찌나 유능하고 재능이 많은지, 나는 언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신입 1년 차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언니는 결혼을 한 후에 선교사로 살면서 세 아이를 홈스쿨로 키우고, 세 권의 책을 출간하고, 지금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임을 통해 사람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일을 부지런하고 있다. 이번 만남으로 그런 언니의 삶의 여정이 그녀를  마음이 깊은 사람으로 빚어낸 것을 볼 수 있었고 그것은 정말 큰 기쁨이었다.


나와 어떤 면에서는 비슷한 길을 걸어왔고, 어떤 면은 앞으로 내가 걸어가고자 하는 길을 먼저 걸어간 면이 있어 더욱 마음이 통했고 서로의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만났지만 한 뼘의 간극 없이 함께 살아온 것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맞장구를 치면서 평소보다 더 빨리 흐르는 시간을 야속해했던 그날, 나는 언니를 위해 내가 그린 그림으로 만든 엽서를 선물했다.



마음 깊은 언니는 내가 준 엽서를 그냥 보고 지나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 하나하나 그림을 따라 엽서 안에 담긴 메시지를 더듬어 보고, 거기에다 깊은 이면에서 발견되는 나의 지나온 삶의 스토리까지 읽어 내려간 것 같다. 그리고 마음 안에 일어난 감동을 내가 그린 엽서 중의 하나에 담아 다시 나에게 보내주었다.

마음을 담아 전달한 엽서에 다시 마음이 담겨서 나에게 돌아온 것이다.


 "네가 만든 카드를 한 장 한 장 보면서 참 소중하단 생각을 한다.

이 카드를 읽으며 이건 성*영이군 싶고

첫 카드를 받을 주인공도 바로 너란 생각에 얘를 돌려보낸다."



언니의 책 <패밀리스쿨 이야기>와 손글씨 엽서 봉투/ 홈스쿨을 고민하는 부모에게 유익한 안내서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그냥 엽서 잘 받았노라 메시지를 줘도 충분할 것을

일부러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글을 쓰고, 봉투에 주소를 적고, 우체국을 가고.. 이렇게 발전된 세상에서는 이 얼마나 수고로운 일이겠는가마는 이 모든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손 편지를 보내준 언니의 정성스러운 마음과 깊은 배려에 무한감동을 느낀다.


손편지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나타난 메일조차 이제는 번거롭게 여겨져서 웬만한 것은 카카오톡 메시지와 파일 보내기로 대체해 버리는 것이 습관이 된 이때, 언니의 편지가 내게 주는 기쁨은 오랫동안 말라 있던 샘물이 다시 솟아오르는 것과 같았다.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하여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런 것들이 전무하던 시대의 향수를 아는 우리 또래의 사람들에게는 바쁘게 살아가는 시간 속에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다시 찾은 것 같은 반가움을 주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전에는 손 편지를 많이도 썼는데...

전학 간 친구들에게, 군에 가 있는 오빠들에게, 연애시절의 남편에게,

그리고 큰 아이가 홈스쿨을 하기 전 잠시 학교를 다니던 때는 급식 시간에 열어볼 수저통에 매일같이 손 편지를 적어 넣어 아이로 하여금 자랑스러움인지 부끄러움인지 모를 감정 때문에 수저통을 열어볼 때마다 친구들 눈치를 보게 한 일도 있었는데 요즘은 손 편지를 쓴 지가 참 오래도 되었다. 그래서 선물의 집과 같은 문구점에서 예쁜 편지지를 골라본지도 오래되었다. 그래도 아직 문구점에 가면 편지지 코너가 여전히 있는 것을 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는 손 편지를 쓰고 있기는 한가 보다.


나이가 들어가니 손목도 더 아파오고 필체도 옛날 같지 않아서 갈수록 편지를 쓸 수 없는 이유들이 늘어갈 텐데 언니가 보내준 편지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다시 손 편지를 써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 그리고 마음이란 것은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을 통해 더욱 감동 있게 전해지는 것이란 사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의 수고로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함께 일깨워준다.

삶과 마음이 무뎌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고, 작은 것에도 진실하게 마음을 표현하며 살면

어느날 도착한 한 장의 손 편지가 나의 하루를 아름답게 만들어준 것처럼 나 또한 누군가의 삶에 따사로움이 되고 힘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분 좋은 소망을 함께 품으면서 ... 시간이 가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따뜻함을 선물해 준 그 멋지고 쾌활한 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난 여름에 적어 서랍에 넣어둔 글을 다듬어 올립니다>




*대문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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