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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기쁨 Dec 31. 2023

아버지의 사진과 엄마의 옷

그것은 사랑입니다





친정에 가면 한 번씩 두꺼운 사진첩을 열어보곤 한다.

오래된 흑백 사진과 빛바랜 초창기 컬러사진들이 어린 시절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면 잠시잠깐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다.

사진 속에서 나보다 더 젊은 우리 부모님과 우리 딸들보다 더 어리고 작은 나와 언니, 오빠들을 만날 때면 어느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그리고 신기하게 사진을 찍던 날과 사진을 인화해서 가족들이 나눠보며 박장대소하고 떠들던 날의 그 느낌, 그 분위기가 내 세포 어딘가에 숨어 있다 슬그머니 되살아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보고 보고 또 보았던 사진첩을 뒤적이는 것이 참 좋다.


아버지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셨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엔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니콘, 아사히펜탁스와 같은 카메라와 렌즈를 가득 담은 네모난 가방이 있었고, 찍는 즉시 즈윽~하고 나오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있었다. 아버지는 쉬는 날이면 가방을 열고 카메라와 렌즈들을 보드라운 수건으로 정성스럽게 닦으셨고, 우리들을 모델로 방 안에서, 마당에서, 집 앞 공터나 동네 산책길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즐겨하셨다. 간혹 아버지가 모델로 세워 놓고 여러 각도에서 한참을 찍으실 때는 약간 귀찮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때가 아버지와 같이 이야기도 하고 시간을 보낼 가장 자연스러운 순간이었기 때문에 나도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 사 남매가 자라는 순간을 카메라에 많이 담아주셨고 사진을 우리 남매 숫자대로 인화해서 각자의 앨범을 만들어주셨다. 이다음에 시집 장가를 가고 서로 떨어져서 살게 되더라도 같은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공유하고 오순도순 잘 살라고 그러셨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평소에 말씀이 없으셨던 아버지가 우리 남매들에게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표현하신 방법이 바로 이렇게 사진을 남기는 것이었던 것같다.






며칠 전 친정에서 가져온 몇 장의 사진을 다시 보다 우리 사 남매의 생일 파티 장면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당시 생일 케이크는 지금처럼 부드러운 생크림이 아니라 하룻밤 냉장고를 거치고 나면 비누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는 미끌거리는 버터크림이 두껍게 발라져 있는 케이크였다. 그래도 케이크 자체가 흔치 않았던 시대라 아버지께서 커다란 케이크를 생일 선물로 사 오시고 촛불을 불고, 생일 노래를 하고, 커팅을 하고, 포즈를 잡고 사진까지 찍으면 생일을 위한 퍼포먼스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들의 생일날 사진이 골고루 남아있어서 오랜만에 같이 보면 다들 좋아할 것 같아 우리 남매와 친정엄마가 같이 묶인 카톡방에 사진을 올렸다.

오빠들은 바쁜지 과묵해서인지 별다른 반응들이 없고, 엄마와 언니가 사진을 반가워하며 반응을 보였다.



"아버지는 매번 우리 네 명 다 같이 촛불을 불게하고 사진 찍기를 좋아하셨어~"

"네 작은 오빠는 다른 사람 생일 때마다 샘이 나서 배가 아팠지, 니 생일날 표정 봐라, 너무 샘나하는 거.."



사진을 보면서 우리들의 표정에, 뒷 배경들, 그때 살던 집 이야기 등등 오래된 한 컷의 사진에서 끝도 없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한참 사진을 들여다보던 중 가만 보니 우리가 입고 있는 옷들이 모두 엄마가 손수 만들어 주신 옷이었다. 그때가 아마 1976년이었을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까마득한 시절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옷가게들이 많지도 않았겠지만 기성복보다 맞춤옷이 더 고급이라고들 생각할 때였고 엄마가 만들어 준 옷을 입었다는 것은 하나의 자부심이기도 한 시절이었다.

엄마는 손재주가 좋으시고, 패션 센스도 있으셨다. 엄마가 만들어 주신 옷은 그 어느 집 아이들이 입은 옷 보다 더 세련되고 고급지게 보였고 보는 사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만든 옷을 입고 집을 나설 땐 괜히 우쭐해지기도 했다.  





일곱 살이던 1976년 9월, 내 생일이자 추석이었던 날에 엄마는 추석빔으로 나와 언니의 꽃무늬 옷을 한벌씩 만들어 주셨다. 나는 아직도 그 옷의 감촉과 색, 꽃무늬를 기억한다. 이 옷을 입기 위해 생일이 될 때까지 꾹 참고 기다렸던 설렘, 그날이 되어 처음으로 이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을 때의 흥분.. 그날은 온전히 나를 위한 날이었다. 그날 언니도 엄마가 만들어 주신 예쁜 투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사진에 담기지 않아 아쉽다.




샘쟁이 작은 오빠의 생일, 함께 '후~'하고 있는 입들이 참 귀엽다.

이날 내가 입은 인디언 핑크의 투피스는 언니가 입던 것을 물려받은 것이다. 스타일은 고풍스럽지만 엄마의 색 감각을 칭찬하고 싶은 옷이다. 엄마는 뜨개질도 솜씨 있게 잘하셨다. 겨울밤 따뜻한 아랫목에서 대바늘을 엇갈려 가며 옷을 뜨던 엄마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작은 오빠가 입은 도톰한 스웨터도 엄마의 작품이다.




잘생기고 의젓한 큰 오빠의 생일날 네 명 모두 엄마가 떠주신 스웨터와 조끼를 입었다. 나랑 작은 오빠의 약간 짧아진 스웨터 소매 아래로 겨울 내복이 빼꼼히 보인다. 나, 빨간 내복을 입었었구나!

웃풍이 방 안으로 새어 들어오던 그때, 연탄불로 방바닥을 지지며 한 겨울을 지나던 그때, 엄마가 아이 넷을 입히려 얼마나 부지런히 옷을 뜨고 또 뜨고 하셨을까. 덕분에 따뜻하게 겨울을 잘 날 수 있었기에 새삼 엄마께 감사하다.

 



언니의 생일, 한 달만 기다리면 자기 생일인데 그 사이를 못 참고 샘이 난 작은 오빠가 급기야 울음을 터뜨리고 착한 우리 언니는 작은 오빠의 손을 잡고 함께 케이크 커팅을 해주면서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런 건 좀 잊어주면 좋을 텐데... 흑역사는 더 기억에 또렷이 남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날도 나는 작은 오빠 생일 때와 같은 인디언 핑크 투피스를 입었다.




일곱 살 때 친구 유진이와 같이 찍은 사진이다. 그날 나는 흑백의 천을 이어 만든 귀여운 원피스를 입고 있는데 지금 입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랑스러운 옷이다.




엄마는 딸들의 잠옷도 만들어주셨다. 언니와 커플 잠옷인데 언니는 바지 잠옷, 나는 원피스 잠옷이었다. 이 잠옷을 입으면 너무 포근하고 편안해서 잠이 잘 오나 보다. 언니의 눈은 벌써 반쯤 감겨버렸다.





"자다 깨서 눈 비비고 보면 엄마가 재봉틀을 돌리고 계셨어. 그럼 옷이 얼마나 됐나 보고 또 자고.. ㅎㅎ"

우리의 카톡 대화 안에서 언니가 기억하는 옷을 만드시던 엄마의 모습이다.


아마 친정에서 앨범들을 다시 샅샅이 뒤져보면 엄마가 만든 옷을 입은 우리들 사진이 더 있을 것이다. 모두 모아보면 엄마의 작품집 하나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입었던 옷들은 당시로서는 생활의 필요를 위해 지어 입힌 옷들이지만 동시에 엄마의 감각과 재능, 창의성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 그 자체이기도 하다.

사진 속에서 디자이너, 창작자, 예술가로서의 엄마를 다시 발견하는 기분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과 잊힐 수 있었던 엄마의 작품인 옷들을 그대로 담아낸 아버지의 사진도 작품이라면 작품이다. 작품 속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작품... 그러나 두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하고 자랑스런 작품은 바로 우리 사 남매가 아니었을까... 엄마가 되고 나니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오래 묵은 사진 안에는 풍족하지 않았지만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설레하고, 만족했던 그 시절과

우리 남매를 입히고 먹이고 웃게 해 주신 두 분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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