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직접 김치를 담그나 보다
김장을 하고 남은 양념을 얻었다.
김장 양념이니 갖은 재료 다 들어간 최고로 맛난 특상품 양념이다. 이걸로는 뭐를 버무려도 실패하지 않는다. 이 참에 시골 언니 집에서 보내준 무를 썰어 기분 좋게 깍두기를 만들었다. 그래도 배추 한두 포기 정도는 더 버무릴 만한 양이 남아서 냉동보관을 잘했다가 배추김치도 담가놓으려고 한다.
시집와서 20년 정도는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어머니와 적당한 날짜를 맞춰 김장을 하곤 했다. 솜씨 좋은 어머니의 전라도식 김치는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최고의 맛이었고 김장날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하는 수고 정도는 어머니께서 아이스박스 하나 가득 우리 먹을 김치를 덜어 정성스레 포장을 해 주실 때의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팔순을 훨씬 넘기신 어머니는 몇 해 전부터 김장을 안 하시게 되었고 냄새만 맡아도 손녀들이 찰떡같이 알아차리는 맛있는 "할머니 김치"도 이제 더 이상 맛볼 수 없게 되었다. 나라도 그 솜씨를 잘 물려받았다면 좋았겠지만 내 먹을 김치 몇 포기 담그는 것은 몰라도 한해의 큰 행사 김장을 쳐낼 만큼 큰 용량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김장철이 되면 왠지 모를 시원섭섭함이 감돌곤 한다.
그래도 올해는 이렇게라도 붉은 양념 척척 발라가며 무 한통 담가놓고 보니 뭐라도 한 것처럼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김치는 음식 이상의 어떤 특별함이 있다. 김치를 한가득 만들어 냉장고를 채울 때의 '든든함', 그리고 김치가 바닥을 보일 때의 이상한 '불안함'.. 그런 복잡한 감정들을 일으키는 김치는 우리의 걱정 없는 미래를 보장해 주는 위안이자 의지와도 같다. 깍두기 한 통이 주는 위안과 의지라니... 단순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기쁨을 나는 지금 누리는 중이다.
내가 처음 김치 만드는 법을 배운 것은 특이하게도 말레이시아에서였다.
2006년에 우리 부부는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5개월의 안식월을 떠났다. 그때만 해도 아직 젊은 주부였던 나는 김장날에 어머니를 도와드리긴 했지만 제대로 양념을 만들고 배추를 버무리는 일은 어머니의 동네 친구분들의 차지였고, 나는 거의 잔 심부름이나 어른들의 식탁을 차리는 일을 도맡았기에 김치를 만드는 과정을 제대로 배웠다고 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아직 열정적으로 갖은 김치를 때마다 만들어 주시던 양가 어머니들로부터 푸짐하게 김치를 얻어먹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이역만리타국에서 아무리 맛있는 산해진미를 펼쳐놓아도 김치 없이는 안 되는 남편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내 손으로 김치를 담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 한 번도 내 힘으로 김치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감사하게도 같은 아파트에 살던 한인 사모님이 큰 도움을 주셨다.
내가 미리 가지고 간 고춧가루 외에,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배추, 액젓 등 필요한 것들을 어디서 어떻게 사야 할지 알려주시고, 집에 있던 커다란 소쿠리에, 양념 버무릴 양푼이, 믹서기 등을 빌려주시고, 김치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를 설명해 주셨다. 고춧가루에 액젓과 마늘만 넣으면 양념이 만들어지는 줄 알았는데, 맛있는 양념을 만들기 위해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재료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사모님이 설명해 주신 대로 만든 나의 첫 김치는 대성공이었고, 그 이후 나는 김치 만드는 것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처음 김치를 만들고, 당시 남편과 함께 매일 공부하러 가던 영어 아카데미에서 "지난 주말에 무엇을 했습니까?"라는 주제로 말하기를 하면서 주말 동안 김치를 만들었고, 내가 만든 것이지만 참 맛있었다는 내용의 발표를 했더니 같이 공부하던 일본인 친구가 한국김치를 너무 좋아한다며 잔뜩 부러워했다. 그런 말에 한국인의 정을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기에 다음 날, 작은 통에 김치 한 포기를 담아서 맛만 보라고 건네주었다. 말이 한 포기지 당시 페낭의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배추는 한국의 튼실한 배추의 4분의 1 크기라 한국 배추 양으로 하면 김치 한쪽 정도밖에 안 되는 양이었다. 친구는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아 기쁘다고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러더니 그 친구... 이튿날 그 몇 곱절이나 커다란 치즈케이크 상자와 초콜릿을 안고 내 앞에 나타났다. 와우~~
깜짝 놀라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친구가 말하길, 한국 김치는 귀하고도 귀한 것이라 인근에 사는 자기 아버지와 친구들을 모두 불러서 함께 파티를 하면서 먹었다는 것이다. 초대되어 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너무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김치는 처음이다라고 감탄에 감탄을 하면서 즐겁게 먹었다는데... 도대체 이때까지 어떤 김치를 먹어 봤다는 건지, 말문이 막혔다. 친구가 가지고 온 선물은 이렇게 귀한 것을 받고도 그냥 넘어가면 도리가 아니라 하시면서 친구의 아버지가 손수 준비하셔서 그녀의 손에 들려주신 것이라니... 그 민망함과 송구스러움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온 동네 사람들 다 불러서 나눠 먹기엔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었을 텐데... 바로 그다음 날 더 넉넉히 김치를 싸서 친구에게 아버지와 함께 먹으라고 주었고, 이후로도 김치를 담글 때마다 친구와 아버지의 것을 꼭 챙겨서 나눠 먹었다. 한국에서도 보기 드문 이웃과 김치를 나눠 먹는 즐거움을 말레이시아에서 누렸던 참 넉넉한 시간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 겪은 김치 에피소드는 또 하나가 더 있다. 이번엔 같은 아카데미에서 만난 중국 여성 이야기다. 하루는 점심을 먹는 시간에 이 중국인 친구가 김치를 만들었다며 함께 먹자고 가지고 왔는데, 내가 만든 김치보다 더 제대로 만든 한국 김치라 놀랍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김치를 만들었느냐 물었더니 같은 클래스에 있는 한국인 여학생에게서 배웠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여학생은 아직 20대 초반인데 어떻게 그렇게 김치 만드는 법을 잘 알고 있을까 궁금해서 얼마 뒤 그녀와 마주쳤을 때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예상대로 그녀는 한 번도 김치를 담가 본 적이 없었지만, 중국 친구가 간절히 방법을 알고 싶어 해서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로 상세한 레시피를 받아 전달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요즘 중국에서 김치를 자국의 파오차이라고 우길 때마다 나는 이때를 떠 올린다. 김치를 만들고 싶을 때, 한국인에게 물어봐야 하는 중국인과 자기 엄마에게 물어보기만 하면 되는 한국인.. 과연 김치를 민족 대대로 전해 내려온 전통음식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이 에피소드만 봐도 누구나 다 쉽게 분간할 수 있다. 이런 소식들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의 김치를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얼굴 붉히고 흥분해서 감정싸움 하는 대신 우리 어머니들에게 배운 방법대로 내 손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김치를 만들어 먹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바쁘고 일이 많아 몸이 지치고 만사가 귀찮게 여겨지는 요즘, 나날이 발전되는 김치 산업의 도움을 받아 김치를 주문해서 먹는 일이 잦아진다. 그렇지만 오늘 얻은 양념으로 무를 버무려 놓고 보니 더 게을러지기 전에 내 손으로 김치를 해 먹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그래서 이제 곧 결혼이든, 취업이든 집을 떠날 딸들에게 엄마 김치 한통쯤은 나눠줄 수 있도록, 그리고 언젠가 생길 토끼 같은 손주들도 "할머니 김치"를 찰떡같이 알아차리고 맛나게 먹도록 이역만리에서 배운 그 귀중한 실력이 녹슬지 않게 손수 양념도 만들고 김치를 담가야겠다.
#김치#김장#위안#의지#어머니김치#할머니김치#김치만들기#말레이시아#페낭#깍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