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의 첫 장벽
뉴욕의 대학 건물 앞, 빗 속에 한참을 서있었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합격한 후,
캘리포니아에서 뉴욕까지
거대한 미국 대륙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이주하겠다 마음먹고
몇 달간 준비하고 여섯 시간을 비행해 오기까지 수차례 뉴욕에서의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었지만,
상상 속에 존재한 적 없었던 초라한 모습이었다.
굵은 빗방울에 옷이 흠뻑 젖은 상태로 머리카락만은 지켜보겠다고 머리 위로 가방을 받쳐 들었다.
진작 엉망이 된 상태였지만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야 했다.
태연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받쳐든 가방 아래 구겨진 미간을 펴보려 의식했지만 점점 더 굳어져 갔다.
첫 수업부터 지각이라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저 계단만 오를 수 있다면...
휠체어를 탄지 약 십 년이 되었지만 해본 적 없던 생각이자
캘리포니아에 지낼 때는 가질 필요가 없던 바람이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막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장벽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휠체어로 인해 문이 쉽게 열렸기 때문이다.
뉴욕에 와서야 비로소 닿을 듯 닿지 않는 문을 마주하며
그동안 친절과 배려에 버릇이 나빠진 상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벽을 마주할 때마다 비현실적인 가정과 바람 이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지금도 나의 시선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계단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정된 시선과 더불어 생각도 무의미하고 비생산적인 가정에 갇혀있었다.
나의 시선도 생각도 그 무엇도 그대로 고착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일찍 왔으면 될 일이야.
지금 이 상황은 순전히 내 탓이야.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내 탓을 하는 것이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보다 나을 때도 있다.
그것이 나 자신을 가두는 대신 나아가게 할 수 있다면
때로는 스스로에게 엄격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순간에도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계단에 머물러 있던 시선을 잡아끌었다.
다음, 그 시선을 계단 위 유리문 너머 책상에 앉아 있는 듯한 도어맨의 정수리로 가져갔다.
혹시나 그가 볼 수 있을까 싶어 손을 흔들었다.
빗줄기 사이를 나의 다부진 팔이 휘젓는다.
가느다란 하체에 비해 상체는 튼튼하게 단련되어 있다.
굵직한 팔과 넓은 어깨를 갖게 되었지만 덕분에 하루 종일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움직여도 힘들지 않다.
한참을 기다리자 건물에서 앳띈 모습의 여학생이 나왔다.
처음 보는 학생에게 도어맨을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그 학생이 다시 건물 문을 열고 들어가 도어맨을 불러
그가 비에 쫄딱 젖은 나를 발견하기까지 단 몇 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
닿을 듯 닿지 않던 문이 싱겁게 열렸다.
허무할 틈도 없이 나는 급히 당황한 도어맨을 도와야 했다.
그는 허둥지둥 계단 옆에 붙어있던 버튼을 조작하며 리프트를 작동시켜 보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자주 보였던 장애인들이 이곳 뉴욕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단 사실이 머리를 스쳤다.
설마 이 학교에 등장한 휠체어를 탄 학생이 내가 처음인 거야?
나는 습관처럼 빠르게 대안을 찾았다.
리프트보다는 경사로를 이용하는 게 더 빨라 보였다.
도어맨에게 경사로로 들어가겠다고 하자 조작하던 리모컨을 급하게 떨구고 휠체어를 경사로 위로 밀었다.
나 혼자였다면 올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각도의 경사로를 스스로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수동휠체어를 쓰는 장애인 중에는 없다.
요철이 심하고 기울어진 경사로 지면이 빗물에 미끄럽기까지 한 탓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안전사고의 위험마저 있었을지 모른다.
이 모든 걸 다 지적할 여유는 없다. 이미 수업을 시작할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경사로를 오르자마자 급하게 문고리로 손을 뻗는다.
그러다 금세 민망하게 멈춰서 버렸다.
문에.. 문고리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