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의 첫 장벽, 주저함
또 하나의 닿을 수 없는 문을 마주했다.
문고리를 잡으려 뻗었던 손은 어색하게 허공에 멈춰 섰다.
도어맨은 당황하며 건물 안에서 문을 열어주겠다고 말하고는
나를 휠체어 채로 문 앞에 주차시킨 후 건물 안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머리 위로 난간을 타고 떨어지는 빗물이 보였다.
허공에 멈춰 선 손을 거두고 또다시 머리 위로 가방을 받쳐 들었다.
머리카락이 젖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닌 갈 곳을 잃어 민망한 손을 위한 대처였다.
내부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무언가를 옮기는 소리가 들리고 이윽고 둔탁한 쇠문이 힘겹게 열렸다.
평균의 이삼십 대 남자들보다 훨씬 더 건장한 모습의 도어맨에게도 버거워 보였다.
문고리가 있었다고 한들 저 무거운 철문을 혼자 힘으로 열 수 있었을까?
질문을 뒤로하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자 창고 같은 곳이 나타났다.
여러 개의 큰 박스들과 접이식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휠체어를 쓰는 장애인이 사용해야 할 경사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짐이 들어왔다 나가는 곳으로 대신 쓰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장애물들 사이로 구불구불 길을 만들며 짐 사이를 빠져나간 후 강의실에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찾고는,
늘 그러했듯 습관처럼 비상용 엘리베이터 위치와 개수를 파악하려고 주변을 살폈다.
보이지 않았으나 약간의 희망을 갖고 이 건물에 다른 비상용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물었다.
승강기는 하나뿐이라는 무심한 대답을 듣고 깊은 한숨이 반사적으로 터져 나왔다.
건물에 단 하나뿐인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때 건물을 오르고 내릴 다른 대안이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새어 나오는 깊은 한숨을 억지로 밀어 넣고 서둘러 강의실로 향했다.
네가 에스텔이구나! 드디어 만났네. 정말 반가워.
교수님의 격한 환영 인사에서 왠지 모를 괴리감이 느껴졌다.
학교 시설에서는 나에 대한 환영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교수님을 포함하여 강의실에 있던 사람 숫자만큼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휠체어를 탄지 벌써 십삼 년째,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 시선이 여전히 낯설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자리를 잡았다.
그때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누군가 다가와 먼저 의자를 빼 주고,
나는 멋쩍게 의자에 옮겨 앉는 것이 편하니 의자를 빼주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한다.
이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지만,
때로는 상대가 민망할까 봐 불편하더라도 별말 없이 휠체어에 앉기도 한다.
한 단계 더 나아가 휠체어를 이리저리 밀어주며 더 적극적으로 자리를 잡아줄 때는
마음껏 날 돕도록 내버려 둘 때도 있다.
적극적으로 다가와 의자를 빼 주는 것, 묻지 않고 휠체어를 밀어주는 것,
모두 배려이자 친절이라는 것을 알기에
과도한 관심과 선 넘는 친절이 무례함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하거나 그 도움을 거절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 강의실에서는 모두가 곁눈질로 바라볼 뿐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도울 수 있도록 의식하고 있지만 구경거리 보듯 쳐다보지는 않는,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으니 섣불리 나서지 않는,
속 깊은 배려와 따뜻한 호의에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덕분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자리를 잡고 휠체어에서 의자로 옮겨 앉은 후 휠체어를 내 옆에 주차시켰다.
지각한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수업이 마무리되었다.
교수님은 학생 전체를 데리고 건물을 구경시켜 주셨다.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었지만 내부에는 드로잉 및 페인팅 스튜디오, 클레이 스튜디오, 사진 작업 하는 공간, 학생들이 쉬거나 식사를 하거나 라운지 등의 공간이 알차게 마련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휠체어를 탄 사람을 위한 배려는 보이지 않았다.
드로잉 페인팅 스튜디오 내부 여러 개의 이젤이 놓여 있었지만,
클레이 스튜디오 역시 도자기 휠 여러 개가 구비되어 있었지만,
휠체어용 책상과 이젤, 도자기 휠을 볼 수는 없었다.
라운지 역시 학생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소파가 놓여있었지만,
그 공간으로 가기 위해서는 계단 몇 개를 내려가야 했다.
이곳이 내가 있을 곳은 맞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