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의 첫 장벽, 주저함, 그리고 나아감
(*아이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내 자리라고는 없는 이 거대한 도시, 이 커다란 대학이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경사로, 건물 출입문, 라운지 등의 큼직한 부분부터
책상, 이젤, 도자기 휠 등의 자잘한 부분까지 모두 다 장애가 있는 학생을 위해 바뀌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단 한 명의 학생을 위해서 개선을 요청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나 하나를 위해 건물 전체를 뜯어고치라고 해도 되는 걸까?
장애가 있는 한 사람을 위해 공사 비용뿐만 아니라 노동력과 다수의 불편이라는 비용 부담하게 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나 하나만 빠지면 쉽게 해결될 텐데...
장애가 있는 한 사람만 없어진다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
환영의 표현이라고는 합격통지서에 적힌 글자 몇 줄과 지나가는 인사말뿐
학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생각마저 들면서
나 자신이 길을 잘못 들어 있어서는 안 될 공간에 자리하게 된 불청객처럼 느껴졌다.
학교 시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덥석 이주 결정부터 내린 나의 불찰이라는 생각이 스치며
습관처럼 잠시 나 자신에게 책임을 돌렸다.
꼿꼿이 들고 있던 고개에 힘이 빠졌다.
휠체어 바퀴를 밀던 두 팔도 힘없이 떨궈지고 어깨가 무겁게 처져갈 무렵
휴대폰 진동이 느껴졌다.
학교 앞에서 산책하고 있을게.
잠시 미간이 구겨졌다.
남편이 즉흥적인 돌발 행동을 할 때 반사적으로 나오는 행동 반응이다.
나는 수업 후 택시로 이동하고, 남편은 집에서 찬이 저녁을 먹이고 있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깊은숨이 한번 내쉬어지고,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곧 긴장이 풀렸다.
철문을 향해 휠체어 바퀴를 힘차게 밀고, 다시 한번 숨을 크게 한번 마신 후 힘차게 문을 열어젖혔다.
예상했던 것보다 가볍게 맥없이 열려버리자 비장하게 먹었던 각오는 머쓱해졌다.
어느새 빗줄기가 가늘어져 있었다.
친숙한 보슬비에 단단하게 뭉쳐있던 어깨 긴장이 스르르 풀리며 하늘을 향해 목을 뻗어 올려 보았다.
곧이어 익숙한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나의 광대가 봉긋하게 솟고 입가에 미소가 퍼졌다.
장화를 신고 우산도 없이 물웅덩이만 찾아 뛰어다니는 찬이 보였다.
비에 흠뻑 젖어 털이 더욱 곱슬곱슬해진 루카는 나의 냄새를 맡은 건지 학교 쪽을 향해 찬을 끌어당기고,
수업이 끝나 쏟아져 나오는 학생들을 의식한 듯 남편은 어색한 걸음걸이로 다가오고 있었다.
빈과 눈을 마주치자 참지 못하고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디든 내가 있어선 안 되는 곳이란 건 없어.
이제 이곳 뉴욕이 내가 뿌리내릴 곳이 될 것이라 다짐했다.
캘리포니아에서만 삼십 년을 넘게 산 남편
그곳에서 태어나 이제 막 네 살이 된 찬이
캘리포니아 집 뒷마당에서 온종일 뛰어놀던 한 살 된 루카
우리 가족이 함께하게 된 그곳이 새로운 고향이라 믿었던 나
가족 모두가 나 하나의 공부를 위해 고향을 떠나 뉴욕까지 왔다.
나와 내 가족이 살게 된 이곳이 우리의 새로운 집이다
우리가 있을 곳이다
내가 있어도 되는 곳이다
그렇게 돼 뇌이며 마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