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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ne ryu Jan 04. 2023

변화를 대하는 자세

오늘은 독일, 내일은 한국

  오늘은 독일 생활과 다소 무관한 일기를 써보려고 한다. 귀국일이 코앞에 다가오니 자연스레 복잡한 마음이다. 나의 귀국 소식을 아는 사람들은 묻는다 "Are you excited?"


  이 단순한 질문에 쉽게 답할 수가 없다. 그토록 바라던 한국행인데 나는 지금 들뜨는 마음보다는 걱정이 크다. 빠뜨리는 것 없이 마무리는 잘하고 있는지, 가서 시차는 어떻게 잘 적응할지, 내가 잠시 떠난 사이 바뀐 사회 분위기나 업무 방식은 어떻게 빨리 따라잡을 수 있을지, 또 앞으로 내 삶을 어떻게 쌓아나갈지에 대해 막연한 걱정이 몰려온다. 어련히 잘하겠지 싶으면서도 마냥 신날 수가 없다.


  정신없는 마지막 나날들이다. 이럴 줄 알고 미리 차근차근 준비했다 생각했는데도 어쩔 수 없나 보다. 회사에서는 인수인계와 업무 마무리를 하고, 회사 밖에서 친구/동료들에게 인사하고 또 귀국 전 끝없는 서류처리와 짐 싸기까지 처리할 일이 산더미이다. 그 와중에 연초부터 독감에 걸려 38도 넘는 고열에 시달렸다. 액땜 한번 제대로 한다. 집, 보험, 은행 등 각종 계약을 해지하며 그래도 8년이나 살았다고 내가 독일에 살았던 흔적이 이리도 많구나 싶다. 미니멀리스트라 자부했는데 잡동사니는 왜 이리 많은 건지- 캐리어 두 개에 쏙 들어갔던 짐이 어느새 집 하나를 가득 채웠다. 15년에 가져온 SSAT 문제집부터 토익 보카 단어장까지 독일까지 이고 지고 왔던 유물들이 잔뜩 발견된다. 최소한의 짐을 가져가려 다 버리고 팔고 있지만, 또 추억이 담긴 쓸데없는 건 차마 버리지 못한다. 예를 들어 카니발 때 입었던 슈퍼마리오 코스튬.. 아직도 짐 상자와 쓰레기봉투, 그 사이에 놓여있다. 버려야겠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실업급여도 받아보고 여행도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세상만사 원하는 대로 안 되는 법 - 출국 전날까지 출근하고, 또 일주일 만에 새 직장에 출근하는 죽음의 레이스를 앞두고 있다. k직장인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한 유럽인 동료는 오래 일했는데 좀 쉬는 기간을 왜 갖지 않느냐고 묻는다. 정말 딱 한 달만 자유롭게 쉬고 싶지만, 또 계획 없는 공백기를 가지면 불안한 마음에 쉬지 못할 것을 너무도 잘 안다. 타고난 조선 노비라고 놀리던 전 동료.. 독일 사회에 세금만 잔뜩 기부하고 떠나는 이여..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감상에 젖을 여유도 심사숙고할 시간도 없다. 의도적으로 감정을 셧다운 하고 있다. 그저 독일에서의 시간과 추억은 좋았던 것으로 간직하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며 슬퍼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그때 그 설렘에 반짝이던 눈동자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뛰던 가슴이 비록 지금은 색이 바랬어도 아쉬워할 것 없다. 그때의 나도 나고, 그 시간은 내 안에 스며들어 오늘의 나를 만들었을 테니까. 아쉬움보단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가족 같은 친구들을 만났고, 좋은 동료들에게 배우며 즐거운 회사생활을 했고 젊은 날의 에너지를 가지고 곳곳을 여행하고 경험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말이다.

  

  변화에 잘 대응하는 방법은 시간을 두고 아주 철저한 준비를 하거나, 그 변화의 파도를 타고 올라 그저 흐름에 맡기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지금 내 앞에 놓인 선택지는 후자뿐이다. 게다가 그 변화의 정도가 어떨지는 가봐야 알 수 있다. 출퇴근이며, 업무 방식, 사회 분위기 - 아무렴 내 나라인데, 미리 사서 걱정하지 않고 일단 오늘내일에 집중해야겠다. 독일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순위다. 때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답. 꼬꼬무 걱정요정은 당분간 좀 떠나 있거라. 이렇게 줄줄이 쓰고 나니 막연했던 불안감이 조금 녹아 설레는 맘이 그 자리를 채운 것 같다.


  Am Ende wird alles gut. Und wenn es nicht gut wird, dann ist es noch nicht das Ende 란 말이 있다. 끝내 모든 것은 잘 될 것이다. 좋지 않다면, 아직 끝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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