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점이 좋더라
사람들은 자신이 가보지 않은 길을 선망하기 마련이다. 주변에 귀국 소식을 전했을 때 다양한 반응을 보며 이를 다시 한번 체감했다. 한국의 지인들은 독일이 살기 낫지 않냐는 반면, 독일에 오래 사신 분들은 잘한 결정이라는 의견이다. 결국 어느 길이든 고충이 있는 법이니, 선택한 길의 긍정적인 모습을 바라보고 사는 게 답인 것 같다. 이 글의 독자 중 독일 이민을 고민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 나의 경험담 및 주변의 의견을 공유하고자 한다.
독일의 삶 - 참 여유롭고 좋다. 그러나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 기본적인 문제 이외에도 이방인으로서 겪는 어려움들이 함께 따라온다. 삶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독일 생활의 만족도가 다를 것 같다. 한국 회사에 다니는 사무직 직장인의 경험이다 보니 모든 직업군을 대변할 수는 없어도 큰 맥락에선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좋은 점부터 써보고 싶다.
1. 독일 = 워라밸?
흔히 알듯 독일은 기본적으로 근로자의 권리와 근로 환경을 중요시하는 사회다. 9 to 6의 삶 (혹은 7 to 4)이 가능한 곳이다.
ㅇ 법정 근로시간 및 휴가일수
기본 법정 근로시간은 8시간으로 초과근무는 2시간까지 허용된다. 초과근무 기록 시, 하루에 최대 2시간만 입력 가능하다는 뜻이다.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은 회사 정책마다 다른데, 보통 초과 근무 시간만큼 단축근무를 할 수 있으며, 금전적 보상을 주는 경우도 있다.
휴가일수는 연간 최소 20일이고, 통상 30일을 받는다. 보통 여름휴가나 크리스마스 때 2주, 길게는 3주까지도 붙여 쓰는 경우가 대다수다. 휴가 중에 업무 관련 연락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불법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정말 다급한 경우가 아니면 연락하지 않고, 담당자 휴가에서 돌아오면 해결하도록 하거나 백업할 수 있도록 팀 내 휴가 스케줄을 맞춘다. 보통 연초, 연중에 팀원 간 휴가 계획을 조율한다. 찐 독일인들은 이미 연초부터 숙박이며 항공까지 예약을 다 잡아놓는다... 휴가를 위해 일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o 회식
잘 안 한다. 팀워크 형성을 위해 분기에 한번. 다들 운전해야 해서 술은 잘 안 마시고 보통 저녁 먹거나, 가끔 페인트볼, 방탈출, 레이저택, 볼링 같은 팀 게임을 하거나 겨울에 크리스마스 마켓에 함께 간다. (여담으로 회식으로 한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외국인 직원들은 양념갈비 엄청 좋아한다. 삼겹살은 비계에 익숙하지 않은지 칼로 떼내고 먹는 걸 봤다)
ㅇ병가, 출산 휴가, 육아휴가
병가 사용에 눈치를 보지 않는다. 오히려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이며 사무실에 가면 어떤 사람들은 '바이러스'가 사무실에 퍼진다고 불편해한다.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K 직장인인 나는 코로나 제외하고 병가 1일의 기록을 세웠다. 좋은 제도지만 악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퇴사 전 병가를 써서 나오지 않는 등, 속 답답한 경우가 생긴다.
출산 휴가는 유급휴가고, 출산 전후 총 3.5개월간 급여를 100% 받을 수 있으며 법적으로 출산 후 2개월은 의무 휴가다.
육아 휴가는 아이 한 명 당 3년까지 쓸 수 있고, 1년은 유급 (부모수당으로 통상 급여의 65%까지)이다. 워킹맘들은 파트타임 (teilzeit)으로 근무하며 육아와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도 육아와 커리어 병행이 쉬운 것은 아니라, 커리어를 쌓고 매니저 이상 직급을 달고 아이를 낳는 경우가 많다. 30대 후반에 출산하는 경우도 꽤 된다. 파트타임하는 독일 워킹맘과 대화했을 때, 여기도 가족의 도움 없이 육아와 커리어 병행이 쉽지 않다고 했다. KITA라고 만 1세 이상 3세 이하 영유아를 맡길 수 있는데 오후 4시에는 픽업을 해야 해서, 파트타임을 하거나 풀타임이면 7시-4시 근무를 한다. 이 kita 조차도 자리가 부족해 동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동네가 아니라 한참 먼 곳으로 보내거나, 아니면 애기 태어날 때쯤부터 기타에 찾아가서 등록한다고 한다. 케이크도 들고 가고 잘 보이기 위해 로비 아닌 로비를 해야 한다고 한다.
남직원들도 한 달 정도 육아휴가를 쓰는 경우가 있다. 맞벌이가 대부분이니 서로 도와야 하는 실질적 문제도 있고, 또 아기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도 있다. 예전 임원급 상사는 아이가 태어나자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기 위해 일을 그만두었다. 이 결정은 유럽 직원들 사이에서도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는데, 다들 용기가 대단하는 반응이었다. 이건 독일 문화라기보다 개인의 성향에 가깝지만, 어쨌든 아이를 위해 부모가 함께 힘쓰고, 그걸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사회 분위기와 제도가 있는 것 같다. 조금 낯설었던 것은, 남자 동료들이 아이들 학부모 모임에 참석해야 한다며 일찍 퇴근하는 모습이었다. 부/모 상관없이 여건이 되는 사람이 참석하는 분위기 역시 좋다. 독일이 괜히 아이 키우기 좋은 (혹은 수월한) 나라가 아니다.
다만 이런 면은, 독일 내 한국 회사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재직한 회사는 독일 노동법 내에 운영을 했지만, 많은 한국 회사의 지사/법인은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사업장이다 보니 그레이존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기대를 안고 한국회사를 통해 해외취업을 꿈꾼다면 사전 조사를 아주 아주 잘해보아야 할 것이다.
2. 워라밸 알겠는데, 라이프에 뭐가 따라오는데?
한국에 비해 독일은 개인 시간이 많다.
1) 운동:
피트니스 센터, 크로스핏 등 실내운동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되, 생활체육의 나라답게 야외활동을 많이 한다. 조깅이 가장 흔하고, 수영, 발리볼도 하고 테니스, 골프장도 많다. 골프가 우리나라처럼 흔한 운동은 아닌데 라운딩 비용이 저렴하다고 한다. (캐디는 없다)
나의 경우 피트니스 센터를 열심히 다녔다. 한 달에 9만 원 정도 사용료에 요가, 줌바, 베스트 바디 같은 그룹 코스를 들을 수 있고 여성전용이라 사우나도 있다. 독일어를 못해도 옆에 사람 하는 거 보고 따라 하면 된다. 독일어 연습하는데 도움도 된다. 다양한 체형의 사람들이 있지만, 독일 언니들이 워낙 팔다리가 길고 기초체력이 좋다 보니 운동하려고 태어난 종족인가 싶을 때가 있다. 피트니스 센터 중 Fitness First나 Fit seven eleven 등 전국 체인을 가진 곳은 라벨에 따라 다른 사용료를 내며 다른 도시에 있는 동급 라벨의 피트니스도 사용할 수 있다. 에어컨이 없어 여름에는 괴롭다.
그 밖에 volkhochschule라고 평생교육원 개념의 기관에서 댄스나 스포츠 수업도 한다. 힙합댄스(^^;;;;) 수업을 들었는데 엉망진창 못해도 재밌게 들었다. 운동뿐 아니라 언어, 음악, 미술 등 광범위한 수업이 다양하게 있으니 각 도시마다 있으니 확인해 보시길! 사람들과 교류하는 창구가 되기도 한다.
2) 자전거 타기
- 자전거는 독일에서 운동 이상의 일상이다. 원래 자전거를 좋아하기에 나에겐 천국이었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많이 하고, 자전거 도로가 아-주 잘 되어있다.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우선이다. 운전하다가 자칫 자전거에 위험한 행동을 하면 자전거 타던 사람이 자동차 본넷을 치거나, 차 창 바로 옆에 다가와 손바닥으로 얼굴을 휘휘 젓는 (멍청이라는 뜻) 제스처를 하고, 'bist du bescheurt??'(너 미쳤어??)라는 소리를 듣는 등 과격한 반응을 볼 수 있다. 베를린에서는 사이클패스라고 불릴 정도로 자전거 우선주의다. 자전거끼리도 규칙이 있는데, 좌/우회전을 할 때 수신호로 방향을 알린다.
- 자전거 타고 어디 가나요?
독일에 강가를 따라가는 자전거 도로가 많아 자전거 여행하기에 아주 좋다. 라인강 쪽 추천한다. (이 글을 쓰며 파란 하늘 아래 반짝이는 라인강을 따라 자전거 타던 날이 떠올라, 갑자기 독일이 너무 그리워질 것 같다. 그렇지만 북한강도 예쁘니 괜찮다!!)
- 어떤 자전거를 사야 하나요?
여러 종류가 있으니 필요에 따라 사면된다. 나는 시내용 자전거와 트레킹자전거가 있었다. 집에 자전거 창고가 없다면 좋은 자전거는 사지 않기를 바란다. 독일에 자전거 도둑이 정말 많아 길에 세워놓으면 다음 날 끊어진 자물쇠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자물쇠를 좋은 것 쓰면 되지 않냐고? 100유로짜리 자물쇠로 잠가놓았던 다음 날, 자전거에 앉았는데 엉덩이가 아팠다. 안장을 뽑아 간 것이다. 바퀴 안 뽑아간 게 다행이다. 동네 슬슬 달릴 거면 ebay kleinanzeige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사기를 추천한다. (다만 장물이 많아서 조심해야 한다.)
- 음주 자전거 운전을 하다가 경찰에게 걸리면 벌점을 받고, 벌점이 모이면 자동차 운전면허 취소가 될 수 있다. 음주운전 안 돼요
- Stadtfahrrad : 시내용 자전거 보통 1단 - 3단의 낮은 기어지만 앞에 바구니가 달려있고 예쁘다. 핑크, 블루 등 파스텔 톤 네덜란드 스타일 자전거가 많다.
- Trekkingfahrrad: 하이브리드용으로 시내뿐 아니라 험로도 달릴 수 있다. 21단 기어만 돼도 산의 언덕길도 제법 탈 수 있었다. 그러나 마운틴바이크를 대체할 수는 없다.
- Rennrad: 경주용 자전거, 보통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타는 바퀴 얄쌍한 자전거
- MTB; 산악용 자전거. 잘 모르지만 요새 전기 산악용 자전거도 많이 탄다. 산에 가면 독일 할머니들이 전기 자전거로 산을 오른다. 역시 게르만의 힘..
3) 피크닉
- 봄, 여름에는 공원이나 강가에서 피크닉을 많이 한다. 그릴을 가지고 나와 바비큐를 하기도 하고, 그냥 도시락을 싸와 피크닉을 한다. 프리스비 같은 게임도 많이 한다.
- 보드게임 엄청 많이 한다. 독일은 보드게임의 나라. 가족끼리 Spielabend (게임저녁)을 정해서 카드게임, 보드게임을 하는 집도 많다. 귀여워.....
4) 수영장
- 여름에는 야외 수영장에 정말 많이 간다. 여름에는 10시까지 밝으니 해가 길고, 에어컨 있는 곳이 많이 없어서 더위를 피할 겸 간다. 보통 큰 수영장 풀 주변은 잔디밭이라 물놀이 안 해도 돗자리 펴놓고 누워있기도 한다. 거기서 커리붜스트나 감자튀김, 맥주를 먹는다. 나는 수영장을 위생 문제 때문에 별로 안 좋아하기 때문에 잘 안 갔지만, 아주 핫플레이스다.
- 근처에 숲 안에 커다란 호수가 있는데, 구역이 반으로 나눠져 한 편은 누드 비치다. 구역 반대편 사람들이 다 하얀색 수영팬티를 입고 있어 희한하다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누드였다. 그저 타지 않은 둔부였을 뿐. 독일에는 FKK(freikoerperkultur), 나체문화가 있다. FKK라고 쓰여있는 구역은 누드 구역이니 조심하시길. 섹슈얼한 개념이 아니라 자연 상태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호텔 사우나도 남녀공용인 곳이 대부분이다. 어떤 곳은 위생개념 때문에 타월을 걸치는 것을 금지한다고 하니, 독일에서 사우나를 갈 때 아주 조심해야 한다. 또한 누드 공원도 있는데 베를린 티어파크, 뮌헨 영국 정원 (englischer garten)이다. 참고로 이 공원들은 이상한 곳이 아니다. 일반적인 공원으로 심지어 각 도시의 대표 공원이다. 나체가 허용될 뿐이다. 실제로 21살 때 뮌헨 영국정원에 갔을 때 독일 할아버지의 나체를 보고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독일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 한다. 신기한 문화차이..
5) 영화 보기
- 독일은 독일어 더빙 영화가 많고, 영어 자막 영화가 많지 않다. 반지의 제왕처럼 긴 영화는 중간에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다. 영화가 중간에 정말 뜬금없이 꺼지고 사람들 화장실 갈 시간을 준다. 아이스크림 파는 아저씨도 들어온다. 3d 영화의 3d 안경은 극장에서 사야 한다. 나는 맨날 놓고 가서 안경만 집에 5개가 있다.
- sneak preview라고 특정 요일에 랜덤 영화를 틀어주는 프로그램을 가진 곳도 있다. 일반 영화 티켓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되, 무작위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다. 내가 갔을 때, 첫 장면이 나오자 여성 관객은 환호했고 많은 남성 관객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채닝 테이텀이 나오는 매직 마이크였다.
- 여름에는 open air kino (혹은 Freiluftkino)가 많이 열린다. 말 그대로 공원 등 열린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다. 돗자리 펴놓고 누워서 영화 보는 맛도 재미가 있다.
6) 콘서트 보기
- 유명한 가수/밴드가 많이 온다. 티켓팅도 우리나라에 비해 덜 치열하고 공연장도 경기장보다 작은 규모의 콘서트홀에서 할 때도 많아 가까이 볼 수 있다.
- 해외뮤지션은 John legend와 Jason Mraz 공연을 갔다. 역시 소극장 같은 곳에서 공연한지라 그 음색을 보다 더 생생하게 즐길 수 있었다. 레이디 가가, 콜드플레이 등은 역시 대규모 공연장에서 하고 티켓도 금방 매진된다.
- 국내 밴드도 요새 독일에 꽤 오는데 (코로나로 줄어들었지만), 역시 우리나라에 비해서 작은 공연장에서 공연하기에 더 가까이 관람할 수 있다. 혁오밴드 공연 갔을 때, 클럽에서 공연을 해 정말 관객과 호흡하는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에픽하이, 에릭남, 선미 등 글로벌로 유명한 뮤지션들이 왔었다(혹은 올 계획). 물론 bts, 블랙핑크 같은 친구들은 여기서도 경기장 (아레나)에서 하고 티켓도 3-40만 원씩하고 그나마도 표가 없어서 못 간다. 케이팝의 인기 실감.
-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볼 수 있다. 독일에 거주하기 때문에 연에 1-2회 이상은 독일 공연을 한다. 코로나로 두 해 연이어 취소되다가 올해 드디어 갔는데, 감격 그 자체였다. 선율을 가지고 노는데 압도되었다.
꼭 유명 뮤지션이 아니어도 재즈클럽, 공연장 등에서 인디 공연을 보는 재미도 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