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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Aug 06. 2023

여자의 편지

너에게 쓰는 편지 2

 여자의 편지

- 첫 여행



 청량리로 떠나는 열차 안에서 우리는 서로 어떤 말들을 하였나요. 첫 여행의 설렘과 들뜸으로 다소 어색하지는 않았는지.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우리의 마음을 적시는 음악 속에서 우리는 두 손을 마주 잡았던가요.

 당신과 함께 한 우리의 첫 여행. 새로운 시작이며 출발. 부석사 배흘림기둥에 서서 난 당신을 향해 미소 지었을까요. 눈은 웃고 있지만 슬핏 느껴지는 어떤 감흥으로 잠깐 마음이 울컥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내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과 자연의 내음들이 다 당신으로 인해 묻혀 버렸다는 걸 수줍은 나는 끝내 말하지 못했겠지요.


 당신을 만나 서로를 알게 되고 거부할 수 없었던 영혼의 이끌림으로 당신 앞에 서 있을 때 너무 사랑하게 될까 두렵고 혼란스러웠지요. 깊고 독한 사랑일수록 가슴에 꽂히는 비수가 얼마나 아플지 생래적으로 알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당신에게 다가서는 나의 마음이 나에게 부탁하네요. 그의 손을 잡아달라고. 한 번만 용기 내 보라고. 오지 않을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오늘의 그리움을 내던지지 말라합니다.


 당신의 우물처럼 깊고 선연한 눈빛을 보며 당신의 진심이 느껴지는 노래를 들으면서, 나 이제껏 해보지 못했던 다른 방식의 사랑을 꿈꾸고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내 감정에 취해 흔들리지 않는, 단단하고 굳건하게 뿌리내리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상처를 두려워해 미리 겁먹지 않고 보여준 사랑만큼 돌아오지 않는다 투정하지 않는, 오롯이 사랑 외에 그 어떤 감정도 나를 흔들지 못하도록 나를 성숙시키고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사랑이고 싶습니다. 어쩜 이 또한 사랑에 빠진 한 여자의 치기 어린 욕심일지 모르지만 노력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날 울게 하겠지요. 잠 못 드는 불멸의 밤을 선사하겠고 혼자 여행을 떠나게 만들겠지요. 허름한 선술집에서 혼자 소주를 마시게 할 테고 다시 시(詩)를 쓰게 할지도... 그의 뒷모습을 닮은 누군가를 보며 가슴 덜컥이게 하며 그래서 내 입술에 진한 잇자국이 선명해진다 해도... 사랑이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영원한 사랑의 속성이란 걸 또 깨닫는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여기 당신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 나의 진심입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이 아프고 쓸쓸해지는 것이라고, 그래서 내 안의 상처들이 다시 터져 피 흘려도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빈 가슴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당신을 만나 다시 사랑하는 이 순간이 내 생애 마지막 행복의 순간이라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사랑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다른 모습으로 실망 주거나 상처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내 마음을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한 번 꺾인 나의 날개가 아직 다 낫지 않은 탓이니...


 기차 밖으로 흐르던 아름다운 풍경들에 빠져 있는 듯 보였던 그 어느 순간에서도 나는 당신에게 눈을 뗀 적이 없음을... 내 영혼은 당신을 그 한 찰나에도 놓지 않았음을 잊지 마세요.

 난 이 밤에 조용히 눈을 감고 내 마음에서 흐르는 강물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당신을 항한 그리움이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때론 거센 물살을 일으키며 움직이다가 고요하고 조심히 흐르기도 합니다.

 그 강물은 흐르고 흘러 언젠가 넓은 바다에 다다르겠지요. 그러나 강을 거슬러 모천을 찾는 연어처럼 내 마음 당신을 처음 알아본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그 강물소리를 잊지 못하듯이... 당신과의 첫 여행... 행복했다는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아련함... 우리가 만들어 갈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이렇게 열게 되었네요. 고마워요. 곁에 있어줘서......     



 (2014년 6월)

 


* 이 편지는 웹진 <숨 빗소리> 코너 중 '쉽게 씌어진 시_5'의  <두 번째 이야기> 프롤로그 중 '#여자의 편지'로도 인용되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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