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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꽃 Aug 09. 2023

걱정말아요 그대

눈꽃 에세이 6

걱정말아요 그대




 요즘 내가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로 ‘자취남’이라는 프로가 있다. 20대에서 30대 정도의 자취생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을 소개한다, 사는 지역, 전월세 가격, 집안의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냉장고 속, 장롱 안까지 공개한다. 개인의 사생활을 중시 여기는 MZ세대에게는 다소 파격적인 콘셉트인 거 같은데, 구독자 수가 10만이 넘는 걸 보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처음엔 한 번도 혼자 살아보지 못했던 젊은 날의 아쉬움이 있기에, 혼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싶은 마음에 무심히 보았는데 점점 소위 말하는 MZ세대들만의 특징이랄까,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다양한 가치관도 함께 들어 볼 수 있어서 재미도 있었지만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보통 자취생들이 사는 지역은 서울이 거의 대부분이고, 10평 안팎의 오피스텔이나 원룸, 아니면 오래된 구옥을 개조한 경우가 많았다. 하는 일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 알 수는 없지만 평균 100만 원 정도의 월세를 지불하는 사람들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전세나 월세라 하더라도 꼭 자신만의 개성을 살려 몇 백에서 몇 천씩의 돈을 들여 내부 인테리어를 하는 것은 필수. 원룸이어도 몇백짜리 조명은 포기 못하는 사람도 있고, 호텔식 청소 업체를 불러 집안 정리를 매번 하는 사람도 있다. 방이 두 개만 되어도 한 개는 자신의 놀이방으로 꾸민다. 자동차 게임기를 방안 전체에 들인 사람도 있고, 바(BAR)처럼 집을 꾸미는 사람도 있다. 추천해 주는 밀키트 제품들도 겹치는 게 없을 만큼 다양하고 7,8평의 작은 공간이 제각각 개성으로 넘친다. 어느 아파트를 들어가나 비슷한 우리 세대의 집들과는 차이가 확연하다.

 처음엔 저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꼭 서울을 고집해야 되나? 내 집도 아닌데 인테리어는 왜 다 새로 하는 걸까? 저렇게 집에다 다 지출하면 저축은 언제 하고 결혼은 할 수 있을까? 하는 꼰대스런 마인드로 그들을 보았다. 그러나 회가 거듭해 가고, 젊은이들의 다양한 생활의 모습을 보고 삶의 가치관을 들어 보니, 그들 나름의 선택과 집중의 코드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직장을 다녀서 돈을 벌면 무조건 아끼고 저축해서 결혼 자금을 모으는 것이 최우선 순위였다. 혼자 사는 자취방 따위에 월급의 1/3을 지출하거나, 전월세집에 인테리어를 멋지게 하거나, 나만을 위해 가전제품을 최신으로 장만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차피 결혼을 하면 그때 신상으로 사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으므로)

 그러나 MZ세대들은 달랐다. “겨우 몇 년도 안 살 남의 집에 인테리어 공사를 돈 들여한다고 했을 때 엄마가 꼴값이라고 했어요ㅋ 그러나 제 인생에서 이 몇 년도 중요한 시간들 아닌가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야지. 나중을 위해 행복을 계속 유보시킬 수는 없잖아요.”


 

 머리를 망치로 세게 맞은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10대에는 대학을 가기 위해 참고 견디며 살았고, 20대에는 결혼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뒤로 미루며 살았고, 결혼 후에는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모든 걸 쏟고, 그 이후에는 노년의 불안함이 두려워 또 허리띠를 졸라매겠지... 그것은 단지 경제적인 부분의 절제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항상 나에게 또는 우리 세대에게 행복이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지 않고 10년이나 20년쯤 이후에나 찾아올 무지개 너머 아득히 존재하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혹자는 젊을 때 그렇게 펑펑 쓰다가 결혼은 언제 하고 집을 언제 사고 노년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보니 결혼은 인생에서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사항일 뿐이다. 나만 하더라도 우리 딸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결정을 존중해 줄 것이다. 모두가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비슷한 모양의 아파트에서 사는 것만이 행복의 완성은 아닐 것이다. 행복의 얼굴은 이제 너무나 다양해졌고 그 색깔도 다채로웠졌다.      


 지금은 고등학생이 된 큰 딸애는 어릴 때 유독 겁이 많고 걱정이 많았다. 하도 쓸데없는 잔걱정을 많이 하는 아이에게 그 당시 보험회사 광고에 나와서 유행했던 ‘걱정 인형’을 사주었다.

 걱정 인형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인형이 걱정을 모두 가져가서 괜찮을 거라고 말하면서 침대에 올려 주었다. 몇 주가 지났을 무렵 난 거실에서 빨래를 개고 있었는데 6살, 4살 된 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의 주제는 ‘걱정 인형’

 “너 걱정인형이 걱정을 없애 주지 않는 거 알아?”     

 첫째가 둘째에게 말했다.

 “진짜??”

 둘째는 진짜 깜짝 놀라며 언니에게 묻는다.

 “그럼 걱정은 누가 없애 줘?”

 “누가 없애주긴 누가 없애 줘... 자기 스스로 없애는 거지..”

 “진짜? 근데 언니는 그거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어떻게 알어. 세수하고 밥 먹고 하는 것도 다 혼자 해야 되는데 걱정이라고 다르겠냐?”

 난 너무 웃겨서 개던 수건으로 입을 막고 한참을 웃었다. 첫째 아이는 엄마가 준 걱정 인형이 효험(?)이 없자 나름의 예리한(?) 분석으로 다른 결론을 찾아냈던 것이다. 그렇지... 세상의 모든 일이 스스로 해결해야 될 것들인데 걱정이라고 어찌 다를까. 현명한지고ㅋ 그때의 후유증인지 큰애는 지금도 너무 별 걱정 없이 산다.


 

 사실 고백하자면 난 유독 걱정과 불안이 많은 사람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신경성 편두통으로 10년 넘게 고생했다. 학교에서 보는 자잘한 쪽지시험부터 큰 시험 때문에 불안감이 높아지면 다음날 새벽부턴 어김없이 편두통이 찾아왔다. 어른이 되고 시험의 압박이 사라지자 두통도 사라졌다. 어릴 때부터 사업하던 아버지 때문에 경제적 안정감을 느끼고 살지 못했던 탓일까. 경제관념에 대한 강박증이 있어서 통장 잔고가 일정하게 채워져 있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가입한 보험이 20개쯤 된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은 항상 오지 않은 미래에 가 있었다. 나중을 위해 저축해야지, 나중에 사야지, 나중에 행복해야지... 미래를 위해 든 보험료를 내느라 현재의 삶은 팍팍하다. 그렇게 아등바등 살다 보니 어느덧 남은 시간이 살아온 세월보다 적은 나이가 되었다.

  MZ세대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삶이 주는 기쁨을 누려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나 자신에게 돈을 많이 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았다.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은 더 이상 살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딸아이의 말대로 ‘걱정’을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것처럼, 그것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의지 또한 나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조금은 힘들고 지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위로의 한마디를 건넨다.


 ‘걱정 말아요 그대




(여섯 번째 에세이 끝)




- 웹진 <숨 빗소리>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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