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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퀸 Jan 21. 2024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권혁웅 시집

글쓴이: 권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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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징가 계보학의 특이함에 반해 권혁웅 시인의 또 다른 시집을 집었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참 제목도 특이하다.

권혁웅 시인은 단어를 가지고 논다. 비틀고 꼬고 엮고 점프해서 엉뚱한 곳에 도달하니 ADHD를 가진 친구 말처럼  영 정신이 없다. 하지만 끝까지 잘 따라가 보면 사물로 시작한 시인의 관찰은 항상 사람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생뚱맞음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이 끈적하게 스며 나옴을 느낄 수 있다.

어떤 느낌인지 책 속의 시 한 편 접해보시라고 옮겨 적는다.



 <기침의 현상학>


할머니가 흉곽에서 오래된 기침 하나를 꺼낸다

물먹은 성냥처럼 까무룩 꺼지는 파찰음이다

질 낮은 담배와의 물물교환이다

이 기침의 연대는 석탄기다

부엌 한쪽에 쌓아두었다가 원천징수하듯

차곡차곡 꺼내어 쓴 그을음들이다

할머니는 가만가만 아랫목으로 구들장으로

아궁이로 내려간다 구공탄 구멍마다

(), 적(), 요() 같은 단어가 숨어 있다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가끔

일산화탄소들이 비눗방울처럼 올라온다

할머니, 기침 하나를 펴서 아랫목에 널어둔다

장판은 담뱃재와 열기로 까맣고 동그랗다

기침을 꺼냈는데 폐 전체가 딸려 나온 거다

양쪽 폐를 칠하느라 염료를 다 써서

할머니 머리는 온통 하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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