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님은 첫날부터 유난히 활달하고, 목소리가 크고 말이 빠르며 많고,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현수님을 회화연습 파트너로 선택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현수님 에너지가 지나쳐서 같이 앉아있는 분들은 수업시간엔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호소하고, 수업이 끝나고 나면 혼이 쏙 빠진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나도 현수님이 이야기하는 부분을 적절히 조절해서 끊고 다른 분들 이야기할 때 '제발 들으시라'고 이야기하느라 진이 빠지곤 한다.
60세가 훌쩍 넘었는데 어쩜 이리 화산이 분출하는 것 같은 에너지가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현수님은 나름 본인이 항상 too much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제가 너무 말이 많지요? 죄송합니다. 영어가 너무 좋아 한 마디라도 더 연습하고 싶어 저도 모르게 막 말하고 있네요. 이거 드시고 제가 좀 정신없이 굴어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헤헤~. 저에겐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아까워서 정말 열심히 하고 싶거든요."
이내 곧 색깔도 화려하고 건강도 표방한 온갖 젤리가 그의 가방에서 쏟아져 나온다. 홍삼젤리, 생강젤리, 녹차젤리, 복분자 젤리, 호박젤리가 회원분들에게 고루고루 돌아가면 우리는 혀에 다가오는 달콤함에 마음이 스르르 녹아 현수님의 폭주에 잠시 눈을 감곤 한다. 그를 산타할아버지라 부르며 헤벌죽 미소까지 흘린다.
현수님의 스토리를 들은 건 한참 지나서였다.
그는 엄격한 군인 아버지 아래서 자랐다. 어찌나 무서운 아버지였는지 현수님은 말까지 더듬고, 나중에는 아예 말자체를 거의 안 했다. 이런 그를 안타깝게 생각한 어머니가 웅변학원에 보내봤지만, 웅변학원도 그의 입을 열 순 없었다. 그는 계속 위축된 상태로 아버님의 눈에 안 띄기 위해 몸마저도 웅크리고 살았다. 현수님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다행히도 팝송에서 도피처를 찾았다. 그의 어머니는 행복해하는 아들이 원하는 대로 기타를 사 주셨고 현수님은 늘 기타를 애인처럼 품에 안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기타 치는 그를 발견한 그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기타를 방바닥에 내리쳐서 부수어 버렸다. 현수님은 깊은 절망감에 우울증까지 앓게 되었고 사람들과의 교류는 아예 없이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의 아버지는 50세가 되기도 전에 갑자기 고혈압으로 쓰러졌고 다신 못 일어났다.
현수님은 그때부터 차차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서서히 입을 열 수 있었다.
후에 그는 사회생활에 잘 적응했고 자녀들을 잘 키웠다. 지금은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은퇴와 함께 꾹꾹 눌렸던 기질이 이제 아무 장벽 없이 막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억지로 본성을 눌러야 할 필요가 없으니 그동안 눌려왔던 것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그는 요즈음 너무나 행복하다.
비하인드 스토리(behind story)를 알게 된 나와 우리 S문화센터 회원분들 마음은 한 여름에 엿이 녹듯이 흐물흐물해졌다. 어쩌면 매번 들고 오는 온갖 젤리에 우리는 서서히 중독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현수님의 톡톡 튀는 발랄함에 우리 회원분들도 알게 모르게 모두 약간씩 붕 뜨게 된다.
현수님은 여전히 수업에 방해가 된다. 하지만 그의 아픈 과거를 알고 난 S문화센터 회원분들과 난 이전과 똑같을 수가 없다. Before와 After처럼 우리 눈은 달라졌다. 모두의 눈엔 '이해'와 '관용'의 꺼풀이 씌워졌다.
한 사람의 아픈 과거를 아는 것이 그 사람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이런 걸 보면 우리는 있는 척, 센 척, 잘난 척, 괜찮은 척 폼 잡을게 아니다. 오히려 없음도 약함도 어리석음도 아픔도 자랑해야 하지 않을까?
*** ~ For when I am weak, then I am strong. - 2 Corintians 12:10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