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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퀸 Mar 26. 2024

무무와 함께 - 몸값

몸값?


무무와의 인연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무는 마치 내가 사람이라는 형태로 이 땅 위에 존재하기 이전부터 나와 친구였던 것처럼 친하게 느껴진다.

무무와 함께 있으면 너무나 편안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제도, 속박, 관습, 고정관념으로부터 무장해제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가끔은 무무가 다른 별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나: 무무야~ 나 방학 동안에 아르바이트 신청하려고 해.

무무: 어, 그래? 무슨 아르바이트?

나: 아직 내 몸값이 높진 않으니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일을 해야겠지?

무무: 몸값?

나: 응, 아직 난 특별한 자격증이나 기술이 없고 경험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으니 몸값이 높지 않지.

무무: 어떻게 사람몸에 값을 붙여? 네가 시장에 나온 고기라도 된단 말이니?

나: 고기? 하하. 그거... 섬뜩한데?

무무: 그러면 몸값이라고 하지 마.

나: 왜? 다들 사용하는 말인데.

무무: 사람은 값 매길 수 없는 귀한 존재야. 몸값이라는 말을 쓰니 마치 네가 노예로 팔려가는 사람이 된 것 같잖아.

나: 듣고 보니 그러네. 옛날 노예시장에서나 쓸 법한 말을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쓰고 있었네.

무무: 모든 것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서 생각하는 자본주의가 사람들에게까지 몸값을 매기는 것 같아 슬프네.

나: 어~ 자본주의? 그런 건가? 아휴... 듣고 보니 몸값이란 말이 정말 웃기는 거구나.


무무와 헤어지고 집에 오는 길, 난 정육점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곳엔 각기 다른 가격표를 단 시뻘건 고기 덩어리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마치 각기 다른 몸값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그곳에 누워있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난 앞으로 다시는 '몸값'이란 말을 쓰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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