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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퀸 Mar 27. 2024

무무와 함께 - 사자성어

사자성어


무무와의 인연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무는 마치 내가 사람이라는 형태로 이 땅 위에 존재하기 이전부터 나와 친구였던 것처럼 친하게 느껴진다.

무무와 함께 있으면 너무나 편안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제도, 속박, 관습, 고정관념으로부터 무장해제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가끔은 무무가 다른 별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나: 무무야~ 나 오늘 형아 졸업식에 갔다 왔는데 교장쌤이 진짜 웃겼어.

무무: 왜? 무슨 일 있었니?

나: 글쎄~ 거기 교장쌤이 글쎄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한데. ㅋㅋ 심심하데~

무무: 거기서 심심(甚深)하다는 건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다는 뜻이야. 네가 생각하는 그 심심한 게 아니고.

나: 아~ 그래? 어쨌든 난 어찌나 웃기던지. 헤헤. 그나저나 형이 질풍요도의 시기를 거치고 무사히 졸업했으니 엄마, 아빠도 엄청 기뻐하시는 것 같았어.

무무: 질풍요도? 하하! 질풍노도(疾風怒濤)겠지~

나: 엉? 어! 그래~ 질풍노도~ 나도 알아, 안다고. 말실수야, 말실수! 나도 사자성어 꽤 잘 쓸 수 있다고.

무무:...

나: 어~ 예를 들어... 아, 맞다! 교장쌤 말씀이 점입가경이었다고. 어때 내 한자실력이.

무무: 점입가경?

나: 응, 교장쌤이 말씀이 너무 많으시더라고. 처음에는 학생들 이야기하더니 정치이야기, 경제 이야기, 결국엔 세계평화를 말씀하시더라고. 지루해 죽는 줄 알았어. 이게 바로 점입가경이라 이 말씀이지.

무무: 점입가경은 경치나 문장, 어떤 일의 상황이 갈수록 재미있게 전개된다는 뜻이라 네가 지루함을 느꼈다면 이 경우에는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는데.

나: 엥? 이거야 원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다 틀리네. 에구. 어쨌든 교장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한 어떤 학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그 학생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셨어.

무무: 타산지석은 원래 다른 산에서 나는 보잘것없는 돌도 자신의 옥(玉)을 연마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야. 실패나 좌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지 좋은 본보기를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아.

나: 뭐? 그럼 교장쌤도 틀렸단 말이야? 하하! 무무~ 그런데 너 오늘 사사건건 시비 거는 게 점입가경이구나!? 아~ 아닌가? 아~ 몰라, 몰라! 나 이제 사자성어 같은 거 안 쓸래.


무무는 대체 이런 걸 언제 다 배웠담? 혹시 전생에 서당 훈장님이었나?

그래도 무무가 오늘 너무 잘난척하니 기분이 쪼금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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