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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퀸 May 23. 2024

무무와 함께 - 영어와 운전

무무와의 인연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무는 마치 내가 사람이라는 형태로 이 땅 위에 존재하기 이전부터 나와 친구였던 것처럼 친하게 느껴진다.

무무와 함께 있으면 너무나 편안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제도, 속박, 관습, 고정관념으로부터 무장해제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가끔은 무무가 다른 별에서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나: 야, 무무! 너 영어 잘해?

무무: 응.

나: 에이, 짜증 나!

무무: 왜? 무슨 일 있었니?

나: 영어 배우는 거 너무 힘들어. 그런데 남의 나라 말을 우리가 꼭 배워야 해? 그리고 이제 곧 AI가 나와서 한국말로 이야기하면 동시에 영어로 통역해 준다던데. 뭐 하러 지금 영어를 머리에 쥐 나게 배워야 하냐고!

무무: 그 '곧'이라는 것이 언제가 될까?

나: 그야, 뭐. 말 그대로 '곧'이겠지.

무무: 일 년? 십 년? 삼십 년? 아님 오십 년?

나: 글쎄.

무무: 30년 전에 너와 비슷한 말을 한 청년이 있었어. 영어가 아니고 운전에 관한 이야기지만.

나: 운전? 왜? 그 사람이 나와 비슷한 어떤 말을 했는데?

무무: 이제 곧 자율주행자동차가 나와서 운전할 줄 몰라도 차가 알아서 저절로 갈 텐데 굳이 운전을 배울 필요가 있냐고. 자긴 그냥 힘들게 운전 안 배우고 버티겠다고.

나: 30년 전에?

무무: 응. 그리고 20년 전에도 여전히 안 배우고 있으면서 본인의 소원은 자동차로 여기저기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라고 하더라고. 그럼 지금이라도 운전을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더니 여태 기다린 세월이 아까워서 그냥 좀 더 기다리겠다고 하더라고.

나: 헐! 그러다가 죽을 때까지 계속 기다리기만 하는 거 아냐?

무무: 아마도. 10년 전에 만났을 때 아직도 운전해서 자유롭게 여행하는 게 꿈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자율주행차 이미 나왔으니 곧 상용화될 거라고 조금만 더 기다리겠다고.

나: 하하. 그 아저씨 그럼 지금 몇 살이 된 거야?

무무: 이제 오십 대 중반을 넘어 육십을 바라보고 있지.

나: 아, 뭐야. 그러다가 평생 운전 못 배우고 인생 끝나겠네. 너무 나이 들면 배우기도 힘들고 운전하기도 힘들 텐데.

무무: 그렇지. 처음부터 운전을 배웠으면 인생을 원하는 대로 더 즐겼을 텐데.

나:...

무무: 영어 동시 통역기가 완벽하게 나올 때까지 영어 안 배우고 기다릴 거니?

나:...


무무의 말은 왠지 설득력 있다. 안 되겠다. 당장 내일부터 영어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이러다가 나도 평생 영어 못하면 안 되지. 아이, 그런데 정말 한참 뒤에 내가 늙어서야 동시통역기가 나올까? 혹시 내년에 완벽한 기계가 나오는 거 아냐? 그럼 열심히 공부한 거 억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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