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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퀸 Jun 25. 2024

떠난 그들과 남은 자들

그들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랐다.


그들은 아이들이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유명강사들을 통해 부모들을 교육시켰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자주 껴안아 주었다. 크리스마스와 생일 때는 어린아이들 품에 곰인형도 안겨주었다.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이 부모님 말씀만 잘 들으면 모든 것이 주어지는 삶을 살았다. 저출산으로 줄어든 아이들을 위해 정부는 모든 것을 다 제공해 주었다. 학교공부, 대학, 취업이 모든 학생들에게 보장되었다. 아이들은 행복했다.  


그들은 어른들이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TV 속 드라마를 통해 어른들을 교육시켰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즐기라'는 말에 어른들은 열심히 직장생활을 하며 그 돈으로 명품을 구입하고 여행을 했다. 어른들은 일하느라고 바빠서 생각할 겨를도 없었지만 브랜드 있는 상품구매와 멋진 휴가로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었다. 어른들은 행복했다.


그들은 노인들이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정부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들을 교육시켰다. 노인들은 건강해지기 위해 영양제를 먹었고, 병원에도 자주 가서 의사를 만났다. 부지런히 산과 들로 산책을 나갔고, 문화센터에서 노래도 부르며 춤도 추었다. 노인들은 행복했다.  


그들은 미래가 아닌 지금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드러내놓지 않고 철학자, 작가, 종교 지도자들에게 물질적인 후원을 했다. 철학자, 작가,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일관된 사상을 주입시켰다. 그들은 행복이 인류의 목적이니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라고 외치며 행복에 이르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가르쳤다. 그들은 정부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돈을 뿌렸다.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한 양의 돈을 매달 지급했다. 이제 사람들은 죽도록 일할 필요가 없었다. 적당히 슬슬 일하고 인생을 즐겼다. 워라밸을 즐기는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북극의 빙하가 엄청난 속도로 녹고 있습니다. 지구가 아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인류에게도 멸망이 다가올 것입니다!"

피켓을 든 환경 운동가들은 목에서 피가 나도록 열심히 외쳤다. 지금 행복한 사람들은 미래의 인류 멸망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이상하게도 목소리가 큰 환경운동가부터 한 명씩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치하는 세력이 있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행복한 사람들은 자신만 행복하면 그만이었기에 누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드디어 모두를 행복하게 했기에, 이제 그들 자신도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행복은 화성으로 가는 '노아의 방주'에 탑승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화성에는 이미 그들이 살 도시가 완성되어 있었고 그곳에 이주할 사람들은 그들로 한정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화성에 관심이 없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한번 가면 다시는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는 이주정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정부가 돈을 주고 필요한 것은 다 이 땅에 있는데 굳이 화성에 갔다가 거기서 평생 살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사람들의 조롱 속에 거대한 화성 우주선에 올랐다.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계획하고 착실히 준비해 왔던 프로젝트.

사람들은 '노아의 방주'에 올라탄 그들이 현재의 행복을 버리고 생고생하러 떠나는 망상가며 바보들이라고 속으로 비웃었다. 


그런데...


정부에 뒷돈을 대주고 있던 그들이 사라지자, 정부는 더 이상 국민들에게 돈을 줄 수 없었다. 갑자기 늘 받던 돈이 없어지자 사람들은 급속도로 불행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미디어는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빙하가 이미 거의 다 녹았으며, 삼림이 파괴되어 산소가 희박해지고 있음을. 토지와 해양오염으로 곧 식량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사실이 방송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미디어가 철저히 통제되고 있어서 예능 프로그램 같은 가볍고 웃기는 만 방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지구 곳곳에서 물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갑자기 높아진 탓에 낮은 곳들은 물에 잠다. 물난리와 함께 균형이 깨진 지구 곳곳에서 화산이 폭발했고 화산재가 지구를 덮었다. 섬나라 사람들은 육지에 있는 나라에 가서 살기 원했지만 가라앉는 섬 위의 희망 없는 사람들을 받아주는 인류애 넘치는 곳은 없었다. 살 곳과 먹을 것이 부족해진 탓에 사람들은 싸우기 시작했고, 나라와 나라는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전쟁은 유행처럼 퍼져나갔고 급기야 제3차 대전으로 번졌다. 핵폭발이 연달아 일어났고 지구는 지옥이 되었다. 더 이상 이 지구에 행복은 없었다.


그랬다.

 

그들은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걱정이 없고 의심이 없다. 왜 그들이 화성으로 영원히 이주하려 하는지, 다시는 지구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는지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지구종말이라는 중요한 정보를 소비생활과 오락거리로 교묘히 숨겨왔던 그들은 그 누구의 반대에도 부딪히지 않고 무사히 지구를 탈출했다.


한때 행복에 취해 비틀거렸던 남은 자들은 이 모든 것이 떠난 자들의 큰 그림이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벗어날 길 없는 절망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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